[아침을 열며]책을 읽어드립니다
부모님과의 나들이, 따뜻한 밥 한 끼 그리고 함께 나눈 다정한 이야기 등 어린 시절 경험한 따뜻한 돌봄의 기억은 우리 삶을 평생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런 순간의 충만감은 삶의 굽이굽이 다가오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우산이 되고,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찬바람을 막아줄 외투가 되기도 한다.
몇 년 전 마산도서관의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 강사로 참여했다. 많은 성인이 참여했는데 그중 아주 눈에 띄는 한 수강생이 있었다. 책 구절구절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눈물까지 보이며 몰입하는 모습에 강사인 내가 감동할 정도였다. 낭독을 마치고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느냐"고 물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엄마가 책 읽어주셨던 기억이 없습니다. 언제나 책 읽어주는 엄마를 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 안내를 보고 주저 없이 참여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어린 시절의 결핍감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책 읽기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부모 대상 강의를 할 때 언제나 어린 시절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내가 독서 선생으로 가르쳐왔던 것들이 실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 초로의 수강생이 60여 년의 세월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 잠자리에서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보며 졸린 눈을 비비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오랫동안 책 읽기를 가르치며 많은 수강생을 만났다. 그중에는 물론 어린이, 학부모들도 있었지만 시각장애인·노인·이주민·발달장애인 등 독서 소외 계층이 많았다. 책에 접근하고 싶었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했던 사람들이 내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기뻐하고 감동하고 재미있어하는 모습은 기쁨이고 보람이었다. 책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아직도 독서 소외계층이 이토록 많음이 놀라웠다.
지금은 꽤 많은 오디오북이 나오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각장애인이 책을 접할 방법은 점자가 유일했다. 비장애인들은 시각장애인이 우리가 글을 읽듯이 점자를 줄줄 읽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은 그리 많지 않다. 선천적 장애인은 어린 시절 감각이 예민한 때에 맹학교 정규 교육을 받으면 점자를 쉽게 익힌다. 하지만 병과 사고로 후천적 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감각 퇴화와 교육기회 부족으로 점자 학습 자체가 어렵다. 이런 장애인들과 '듣는 책, 느끼는 책'이라는 주제로 일주일에 한두 번 독서로 소통하는 시간은 즐거움이고 보람이었다.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이 이번에 문화체육관광부 국비 사업인 '24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 경상지역 주관처로 선정됐다. 국비 사업 회계 처리가 까다로워서 부담이 느껴지지만 굳이 이 일에 나선 것은 내가 읽어주는 책으로 행복해했던 많은 분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독서 소외계층에게는 책을 접할 기회를, 또 참여 봉사자들에겐 사회봉사 기회와 적으나마 활동비도 드리니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 여겨진다. 이 기회가 마음속에 울고 있는 아이를 다독이고 차오르는 충만감으로 행복을 찾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당분간 나는 이렇게 외치고 다닐 생각이다.
"여러분께 책을 읽어드립니다."
/윤은주 수필가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