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용 ‘창원터널 긴급제동시설’ 진입 막은 드럼통
창원 방면 내리막 도로 옆 시설
지난 3월부터 드럼통 4개 설치돼
전문가 “긴급 시 순간적 판단 막아
차량 충돌로 2차 사고 유발할 수도”
시 “잘못 진입하는 차량 많아 비치”
취재 나서자 일부 옮겨 공간 만들어
창원시가 2017년 발생했던 ‘창원터널 앞 화물차 참사 사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설치한 ‘긴급제동시설’ 앞에 되레 도로 혼선 방지 차원으로 드럼통을 세워 근시안적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 담당부서는 “시설을 도로로 착각했다는 민원이 잇따르자 내린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전문가들은 시설 설치 취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비상 상황에서 오히려 2차 사고 등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6일 오전 9시께 창원터널 창원 방면 내리막 구간 도로 옆 ‘긴급제동시설’ 앞. 빨간 플라스틱 드럼통(PE드럼) 4개가 사선으로 비치돼 긴급제동시설 진입로를 막고 있었다. 드럼통은 내부에 모래주머니 2~3개가 들어가 있어 작은 충격에는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돼 있었다.
창원시에 따르면 해당 드럼통은 지난 3월 22일부터 현 상태로 비치됐다. 긴급제동시설은 지난 2017년 경남도의 창원터널 시설개선사업(총 사업비 80억원) 일환으로 추진돼 2020년 5월 완공했다. 길이 60m, 폭 10m의 인공 경사로로, 브레이크 파손 등으로 정상 제동이 불가한 차량의 안전한 정차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다. 경사로에 자갈과 모래를 함께 넣어 차량 무게로 바퀴가 빠지게 되는 구조로 시공돼 대형차량도 쉽게 제동이 가능하다. 시설은 도로·교통·터널 전문가 등 13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창원터널 안전대책마련 협의체’의 아이디어다.
당시 창원터널에 대한 대대적인 시설 개선을 진행한 이유는 2017년 11월 2일 발생한 ‘창원터널 앞 화물차 참사 사고’에 있다. 엔진오일통에 윤활유를 싣고 달리던 5t 트럭이 브레이크 고장으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고, 이때 충돌로 윤활유 통이 튕겨 나가 반대편 차로를 달리는 차량을 덮쳐 3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치는 대형사고로 이어졌다.
이처럼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설치한 긴급제동시설이지만, 창원시는 시설에 잘못 진입한 차량의 민원이 잇따라 드럼통을 비치했다고 해명했다.
창원시 성산구 안전건설과 관계자는 “야간에 창원터널에서 빠져나와 도청 방면으로 이동하는 운전자 중에 길을 착각해 긴급제동시설로 잘못 진입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시각적으로 도청 방향이 아니라는 걸 나타내려고 드럼통을 세워 놓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 상황에서 비상시 차량이 긴급제동시설을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전문가들은 의견이 달랐다. 시설 진입로에 드럼통을 둔 행위는 그 자제로 시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한 행위라는 지적이다.
황준승 교통과사람들연구소장은 “긴급제동시설의 원래 기본 목적을 생각하면 차량이 원활하게 시설로 진입할 수 있도록 입구에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며 “운전자들이 길을 헷갈려 한다면 헷갈리지 않도록 시설과 별개로 도로 유도 시설을 하는 것이 기본 원칙인데, 도로는 그대로 두고 엉뚱하게 시설 앞에다 드럼통을 갖다 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긴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진입로에 드럼통이 있으면 이게 제동시설인지 아니면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둔 건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안 돼 운전자가 핸들을 틀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드럼통이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연 한국교통안전공단 교수는 “차량 충돌로 드럼통이 도로에 널브러져 2차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며 (드럼통 설치가 아닌) 노면에 도색을 하는 등 차량 유도선으로 시인성을 높여 진입 실수가 없도록 안내하는 방식을 제언했다.
드럼통 비치에 문제가 없다던 창원시는 경남신문의 취재가 시작되자 이날 오후 드럼통을 양쪽으로 옮겼다.
창원시 성산구 관계자는 “아예 진입 자체가 안 되는 시설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긴급 상황이 발생한 차량은 통과할 수 있게끔 공간을 조정했다”고 했다.
김태형 기자 thkim@knnews.co.kr
#경남#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