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욕설·삿대질·동행명령장 남발…행정부 견제 아닌 ‘낙제’
사실상 막내린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
26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국정감사를 평가해온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모니터단)은 이번 국감에 ‘D 마이너스(D-) 학점’을 매겼다.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국감을 보이콧한 2016년의 ‘F 학점’ 이후 가장 낮다. 몇 장면만 되짚어봐도 차라리 국감 보이콧 때가 더 낫지 않았나 싶을 지경이다.
#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국정감사장.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직원이 실신하며 국감이 정회하자 참석자들 사이에선 이런 대화가 오갔다.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 사람 죽이네.”
▶김우영 민주당 의원=“저 자는 도대체.”
▶김 대행=“저 자라니요!”
▶김 의원=“저 자가 아니면 뭐야 인마. 얻다 대고 욕설이야, 이 새×야.”
최민희 방통위원장 등 야당 주도로 김 대행을 국회 모욕죄로 고발하는 안건을 통과시키자 국민의힘에선 “우리가 독재국가냐”(박정훈)라는 반발이 나왔다.
막말은 국감 때마다 지탄의 대상이었지만, 이번엔 의원이나 피감기관장이나 할 것 없었다. 몇 개만 뽑아보자면 이렇다.
“국회의원이 김영철 검사의 아랫도리를 비호한다. 나쁜 손버릇을 가진 김건희 여사를 비호하는 것도 한심하다.”(11일 장경태 민주당 의원)
“(청와대에서 4월 국악인 연주가 있었던 걸 언급한 뒤) 기생집으로 만들어 놨나. 대통령 부인이 왔다고 공연 상납한 것 아닌가.”(10일 양문석 민주당 의원)
“유체이탈 화법 스킬을 보고 뽑느냐.” (8일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
“할 얘기 못 하고 가만히 있는 건 더 병×.” (8일 김용현 국방부 장관)
올해 국감이 유독 왜 이랬을까. 여나 야나 애초부터 작심한 듯 상대 진영을 향한 공격에만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야당은 처음부터 김건희 여사만 노렸고, 여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맞불을 놨다. 그러다 보니 국감의 본래 목적인 정책 질의엔 관심이 없다시피 했다. 16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가 대표적이다.
의료 공백에 대한 국민의 불편함과 두려움이 누적되고 있지만, 갑자기 ‘명태균 비선 의혹’이 툭 튀어나왔다. 서영석 민주당 의원은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에게 “명태균씨와 김 여사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속 주인공인 ‘철없고 무식한 오빠’가 윤석열 대통령이냐는 논란이 있다. 이 정도면 용산을 둘러싼 여러 증상이 감염병보다 더 큰 병이라 생각하는데 어떠냐”라고 질의했다. 정 이사장은 현 정부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도 맡고 있다.
과거엔 찾아보기 어렵던 ‘초식’도 등장했다. 동행명령장이다. 야당은 다수결로 증인 선정을 밀어붙였다. 16일 운영위가 채택한 일반증인 30명 가운데 김 여사 관련 증인은 26명이었다. 법사위 일반증인 85명 중 40여 명, 행안위 일반증인 85명 중 38명도 그랬다. 이들 중 다수는 이런저런 핑계로 불출석했다.
그럴 때면 민주당은 어김없이 동행명령장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매년 국회에서 연평균 2.6건이었던 게 지난 3주 동안 10배가 넘는 27건이 발부됐다. 동행명령의 대상도 제한이 없었다. 21일 법사위에선 현직 대통령 부인에 대해 사상 최초로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야당 법사위원들 일부는 이를 직접 집행하겠다며 국감 도중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했다가 경찰과 대치 후 철수했다.
국민은 눈살을 찌푸리지만, 이러는 사이 흐뭇해하는 곳도 있었다. 김 여사 이슈나 이 대표 사법리스크와 별 관계 없는 정부부처들이 그렇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의원들에게 질책당하는 기관장은 좀 힘들 수 있겠지만, 부처 입장에선 여사 문제와 관련만 없다면 여느 때보다 할 만한 ‘럭키 국감’이었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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