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날 아니었는데".. 화마 덮인 아울렛서 나오지 못한 그들

강은선 2022. 9. 2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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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현대아울렛 화재 참사
유족 "최신 설비 불구 대형화재
제대로 설명조차 안 해줘" 분통
경찰·국과수 등 합동감식 진행
원인 규명까지 장기화 전망도
현대측, 유가족과 보상협의 나서
지자체도 심리상담 등 지원 예정

“그날 출근날도 아닌데 출근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지난 26일 대전 현대아울렛 화재 참사로 남편 이모(64)씨를 잃은 부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화재 발생 이튿날인 27일 다시 화재 현장을 찾은 이씨의 부인은 “출근날도 아니었다는데… 왜 …”라고 힘겹게 말을 꺼내며 황망해했다.
지난 26일 대전 현대아울렛에서 불이나 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화재 초기 검은 연기가 치솟는 모습. 연합뉴스
전날 오전 6시 50분 현대아울렛으로 출근한 이씨는 퇴근하지 못했다. 이씨는 이곳에서 물류작업을 담당한 용역 직원이었다. 3년 전 공무원 정년 퇴직 후 가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 매일 오전 6시 반이면 집을 나섰다. 아울렛 개장 시간인 오전 10시 30분 전에 맡은 물류를 모두 옮겨놔야 했다. 이씨는 전날 지하 1층 화물용 승강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이씨 가족과 현장에 함께 있던 이씨의 선배는 “같은 아파트에 살아 전날 오전 6시 50분쯤 아침 인사를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며 “자상하고 현명하고 주위를 챙길 줄 아는 친구였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씨의 친구 역시 “한 달에 연금 180만원을 받았지만 대학생 아들도 있으니 가정 형편에 도움이 되려고 뭐라도 하려 한 친구였다”고 고개를 돌렸다.

이번 화재에서도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하청노동자의 희생이 또다시 반복됐다.

화재로 사망한 노동자 7명과 중상을 입은 1명 등 사상자 8명은 모두 현대아울렛과 계약한 도급 노동자와 물품을 배송하려 방문한 ‘그림자 노동자’들이었다. 사상자 8명 중 6명은 아웃렛 협력업체 소속 직원들로 시설관리, 쓰레기 처리, 환경미화 등을 담당했다. 2명은 외부 물류택배 업체 종사자로 물건 배송·반품 업무 등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검게 타버린 주차장 입구 대전 유성구 현대아울렛 화재 이튿날인 27일 화마로 온통 검게 타버린 지하주차장 입구를 한 소방대원이 설명하고 있다. 이날 현장 감식반 관계자는 “지하 주차장 거의 모든 곳이 그을려서 칠흑같이 어두웠다”고 밝혔다. 대전=연합뉴스
또 다른 희생자인 채모(33)씨도 이씨처럼 물류를 담당하는 용역 직원이었다. 채씨는 최근 가족에게 “일이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고 한 것으로 전해져 비통함을 더하고 있다.

채씨의 작은아버지는 이날 화재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왜 최신식 소방설비가 설치된 현대아울렛에서 대형화재로 이어졌는지 누구 하나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며 “현대 관계자들은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을 통제만 하다 장례 절차를 상의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반은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1시간가량 1차 감식을 진행했다. 그러나 인화물질이나 방재시설 작동 여부 등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전 유성구 용산동 현대아울렛 화재 현장으로 합동현장감식 조사원들이 진입하고 있다. 뉴스1
김항수 대전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불이 처음 목격된 지하 1층 하역장 일대를 집중적으로 감식했는데, 인화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전기설비가 원인인지, 스프링클러나 옥내소화전 등 방재시설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등은 현재로서는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화재 초기 지하 주차장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차가 폭발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과 관련해서는 “1t 화물차는 연료통이 있는 것으로 봐서 내연기관 차량”이라며 “인근에 충전기도 없었다”고 말했다.

현대 측은 이날 희생자 유가족들과 보상 협의에 나섰다. 입점 상인에 대한 지원 의지도 대전시와 유성구에 전달했다.

대전시와 유성구는 기본적으로 현대아울렛 측이 먼저 나서서 피해자 보상에 나서도록 요청하되, 협의가 늦어지면 양측을 중재하는 것과 동시에 긴급구호자금 등을 우선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또 보상 협의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피해 가족들의 마음 치유를 위해 심리상담도 지원할 예정이다.
합동분향소 찾은 尹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전 유성구 현대아울렛 화재 현장을 27일 찾아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후 화재 현장을 찾아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를 조문한 뒤 유가족에게 “조속히 원인 규명에 나서는 한편 유족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지시했다”고 위로했다. 윤 대통령은 이에 앞서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는 “지하 주차장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면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화재 원인을 감식해 달라”고 강조했다고 이재명 부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한편 화재 당시 아웃렛 지하 1층 화물 승강기에서 발견된 이모(71)씨와 지하 1층에서 발견된 이모(33)씨, 지하 여자탈의실에서 발견된 이모(56)씨 유족은 28일 개별적으로 발인할 예정이다.

대전=강은선 기자, 이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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