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동 내일은 오락, 일본 '노인 유치원'은 골라간다

2024. 10. 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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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령자 시설, 전문가가 가보니
일본은 이미 20여 년 전인 2005년 ‘초고령 사회’ 시대를 열었다. 65세를 넘는 고령자가 전체 인구에서 20%를 넘었다는 뜻이다. 올해 고령화율은 29.3%를 기록해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다. 그러다 보니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거주 시설과 돌봄(가이고) 서비스, 복지용품 산업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고령자의 건강 관리와 여가 활동을 지원하는 각종 민간 시설도 성업 중이다. 10월 초 찾은 도쿄 등 수도권에서 노인 안심 사회를 추구하는 ‘초고령 사회 일본’의 풍경을 곳곳에서 마주쳤다.

일본 고령화율 29%, 주요 선진국 1위
‘노인 유치원’인 ‘폴라리스 데이 서비스센터’ 운동시설. [사진 최인한]
지난 4일 도쿄 에도가와구의 ‘폴라리스(polaris) 데이 서비스센터’를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80대로 보이는 고령자가 각종 운동 기구로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운동기구는 고령자가 사고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재질로 만들었고, 걷기 기구의 경우 천정에서 늘어진 안전벨트를 매도록 했다. 폴라리스는 최근 고령자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건강 증진형 데이 서비스센터다. 고령자가 등·하교를 하며 이용할 수 있어 ‘노인 유치원’으로 불린다.

일본의 데이 서비스센터가 한국과 다른 건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 증진형 외에 오락 중심의 ‘라스베가스형’, 맛있는 음식 중심의 ‘레스토랑형’, 커피·차 등 음료 중심의 ‘카페형’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 중이다. 특히 이 같은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데이 서비스센터는 2007년 2만748개에서 2022년 4만3392개로 늘었다.

폴라리스 데이 서비스센터는 평일 오전 9시에서 12시, 오후 1시에서 4시까지 하루 두 차례 문을 연다. 본인의 건강과 체력에 따라 편한 날, 편한 시간대에 이용하면 된다. 1회 이용 요금은 500~1500엔 정도다. 이 회사는 고베에 본사를 둔 민간 기업으로 전국에 56개 직영점과 가맹점 20개를 운영 중이다. 나카타 부장은 “가맹점의 경우 시설 투자비(99㎡ 기준)로 3000만 엔(2억7000만원) 정도 들어가고, 월평균 매출 600만 엔에 250만 엔 정도의 이익을 낸다”고 설명했다.

폴라리스의 고령자 등·하교용 차량. [사진 최인한]
일본에서 가장 비싼 노인홈으로 알려진 도쿄의 ‘B사’를 방문했다. 1970년대에 등장한 유료 노인홈은 우리나라의 ‘실버타운’과 유사하지만, 고령자가 자립 상태에서 입주해 사망할 때까지 간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거주 시설이라는 게 다르다. 입주민에게 식사·목욕·세탁·가사·건강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유료 노인홈은 가이고(노인 돌봄)형, 주택형, 건강형 등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이날 찾은 노인홈은 고급 전원주택처럼 보였다. 입구 간판은 ‘B사 OO점’으로만 표시돼 고령자 주택인지, 고급 일반 주택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입주민이 생활하는 룸은 공개하지 않고 부대 시설인 목욕실이나 교류 공간인 리빙룸·식당·독서실·미용실·목욕실·파티룸 등을 보여줬다. 층마다 간호사가 24시간 상주하며 입주자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지원한다. 주택 안팎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져 초특급 호텔이나 별장 같았다. 이곳의 차별화 서비스는 음식이다. 일식·양식은 물론 호텔식 코스 요리를 제공해 입주민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한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월평균 이용료가 100만 엔(900만원)이라고 하는데, 이용자들이 누구일지 궁금했다. 입주민 가운데 한국말을 하는 할머니가 있다고 해서 기다린 끝에 면담 기회를 얻었다. 대구가 고향인 김모씨(90)는 일본인과 결혼해 70년 전에 일본으로 왔다. 입주 시설에 대해 만족하냐고 묻자 “직원들이 친철하고, 혼자서 못하는 일은 다 도와주기 때문에 너무 편리하다”고 말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집에 있기가 쓸쓸해 시설에 들어와 입주민들과 교류하며 지내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B사 노인홈은 도쿄 등 대도시 고급 주택지 중심가에 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보증금은 없고, 월 단위로 자유롭게 계약이 가능해 재산이 있는 고령자가 주로 이용한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입주민은 평소 진료받는 주치의 또는 제휴한 의료기관에서 바로 진찰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갖췄다. 회사 관계자는 “입주를 기다리는 수요자들이 많아 도쿄 도심을 중심으로 시설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4층짜리 주택을 재건축한 각켄 코코펌. [사진 최인한]
도쿄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가와사키 다카쓰(川崎高津)에 위치한 중산층 고령자 대상 임대 주택 ‘코코펌(Cocofump)’. 이곳은 2005년까지 가와사키시의 4층짜리 낡은 시영 주택이 있던 자리다. 4층짜리 건물 1층에 들어서니 한쪽에 있는 교실의 열린 문틈으로 초등학생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각켄(學硏)그룹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각켄교실이다. 산수·국어(일본어)·영어 중심 초등학생 대상 학원이다. 고령자 주택 1층에 아이들 학원이 있다는 게 신선했다.
중산층 대상 임대 주택인 ‘각켄 코코펌’의 실내. [사진 최인한]
2~4층은 서비스 지원이 가능한 고령자 주택이다. 룸 크기는 18~55㎡ 5개 타입으로, 단신 또는 부부가 사용할 수 있다. 입주자들의 공유 시설로는 식당·세탁실·라운지·목욕탕 등이 있다. 월 임대료는 지역과 크기에 따라 10만~25만 엔 선이다. 각켄 코코펌은 전국에 걸쳐 229개가 영업 중이다. 가격 대비 품질이 좋고, 신뢰도가 높아 평균 입실률이 98.5%에 달한다. 모치쓰키 홍보실장은 “오는 2040년까지는 고령자 숫자가 계속 늘어날 전망이어서 연 20개씩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30년 후기고령자 급증, 한국도 대비를
각켄은 사실 1946년 교육 사업으로 출발했다.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학습 교실과 교재 출판으로 기업을 키워 1984년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하지만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 감소 시대를 맞아 2008년에 고령자 주택 건설을 시작으로 간병 서비스 등 고령자 관련 사업으로 주력 업종으로 바꿨다.

2000년대 초반 언론사 특파원으로 일본 근무를 했다. 당시만 해도 국가 경제력이나 개인 소득에서 한·일 간 격차가 컸다. 노인과 반려견이 많았다는 게 특히 인상적이었다. 20년 전 일본 사회의 모습을 지금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너무나도 비슷하다. 한국은 인구 구조상 2030년께부터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가 급격히 증가한다. 오는 2037년에는 후기 고령자가 811만 명으로 전기 고령자(806만 명)를 넘어설 전망이다. 고령화에서 훨씬 앞서간 일본의 사회 구조를 잘 분석하고,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한국경제신문에서 도쿄 특파원, 한경일본경제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일본유통과학대·경희사이버대(일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시사아카데미에서 학생·일반인을 대상으로 일본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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