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이식 통해 ‘제2의 삶’... 가수 유열이 밝힌 ‘선물’은
서울대병원 박샘이나·박지명 교수, 가수 유열 씨
2017년 폐섬유증 의심 소견…7년새 급격히 악화
생사 기로서 뇌사자 폐이식 받아 ‘제2의 삶’ 시작

“하루하루가 새롭고 기적 같아요. 저 하나를 살린 게 아니라 우리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신 겁니다. 다 이름 모를 그분이 주신 선물이죠.”
가수 유열(64) 씨는 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폐 이식 수술 후 되찾은 일상을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1986년 데뷔 이후 30여 년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유 씨의 방송 활동이 뜸해진 건 2017년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다. 폐 조직이 점차 딱딱하게 굳는 폐 섬유화가 진행됐고 폐렴을 혹독하게 앓은 뒤로는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졌다. 폐섬유증은 평균 생존율이 3∼4년 남짓에 불과하다. 유 씨의 경우 그보다 드문 ‘흉막폐실질 탄력섬유증’이 겹쳐 어떠한 약을 써도 듣질 않았다. 폐렴을 앓고 난 뒤로는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했고 몸은 더욱 쇠약해져 갔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던 그는 어느새 노래는커녕 혼자서 숨쉬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폐 이식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의료진은 “폐 이식을 감당하기 버거운 상태”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아내는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시한부 환자에 대한 사망 선고와 다름없었다.
유 씨는 2024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지인이 2년 전 똑같은 폐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방문한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선뜻 치료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 유 씨는 폐 이식 대상자 선정 기준인 응급도(0~7등급) 지표 중 사망 위험도가 높은 1등급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에크모(ECMO)나 인공호흡기 같은 기계적 보조 장치 없이는 생명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즉각적인 이식이 필요한 대상으로 분류됐다. 국내 폐 이식 평균 대기기간이 10개월 내외임을 고려하면 수술 대상이 되는 것조차 도박처럼 보였다. 그러나 의료진은 그의 단단한 마음가짐에서 가능성을 보고, 즉시 뇌사자 폐 이식 대기자 명단에 추가했다. 박지명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폐는 외부 공기와 직접 맞닿는 장기라 이식 후 거부반응과 감염 예방을 위한 관리가 매우 까다롭다”며 “유 씨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이었고 치료 의지가 강했다”고 회상했다.

그 간절함이 닿았을까. 그해 7월 뇌사자 장기가 확보됐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예상치 못한 변수로 두 차례나 기증이 불발됐다. 건강한 폐가 확보돼 수술대에 오르기까진 꼬박 2개월 8일이 걸렸다. 유 씨는 “기증받기가 가장 수월한 AB형도 평균 3개월은 걸린다고 들었다”며 “기적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편으로는 어느 누군가가 가족을 잃고 마음이 미어졌다고 생각하니 그저 죄송하고 먹먹하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의료진의 지시를 철저히 따른 덕분에 회복도 빨랐다. 수술 후 9일 만에 호흡보조장치를 뗐고 2주일 만에 산소 콧줄까지 제거하며 온전한 자신의 숨을 되찾았다. 퇴원 이후 운동을 거르지 않고 재활에 매진한 결과, 40㎏까지 줄었던 체중은 58kg까지 늘어났다. 유 씨는 현재 중학생 아들과 함께 축구를 즐길 정도로 체력을 회복했다. 그는 “숭고한 나눔을 해주신 가정과 의료진에게 너무 큰 은혜를 입었다”며 “아내와 함께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한 뒤로는 건강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언급했다.
유 씨의 극적인 회복은 기약 없이 폐 이식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그의 수술을 집도한 박샘이나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유열 씨가 다시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투병 중인 환자들에게는 그 어떤 약보다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라며 “폐 이식 후 건강하게 사회로 복귀해 훌륭한 롤 모델이 돼줘 감사하다”고 전했다. 현재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5만 명을 넘어섰다. 장기기증을 기다리다 사망한 인원도 최근 5년 새 1000명 가까이 늘었다. 박 교수는 “이식 대기자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장기 기증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환자의 상태가 최악에 달해서야 겨우 이식 순위가 돌아오는 실정“이라며 “더 많은 환자가 새 삶을 얻을 수 있도록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 개선과 법률 개정이 절실하다”고 언급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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