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보험 재정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는 보편적 의료보장(UHC)을 채택한 국가들의 공통된 과제다. '내는 사람'은 줄고 '쓰는 사람'은 늘면서 건보 제도의 기본 원리인 상부상조의 균형이 흔들리는 국가가 적지 않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재원 조달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며 위기 돌파에 나섰다. 독일은 혜택을 깎고 부담을 키우는 '뼈를 깎는 개혁'을, 프랑스는 모든 소득에 분담금을 물리는 '재원 다변화'를 택하며 건보 재정 고갈에 맞서고 있다.
'보장 줄이고 보험료 올리는' 독일식 고육책

국내 건강보험 재정 구조는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보험료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전체 재원의 80% 이상을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가 떠받치고 나머지는 국고와 건강증진기금 등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실제 작년 건강보험 총수입 105조3428억원 중 보험료 수입은 87조7586억원으로 전체의 약 83.3%를 차지했다.
우리와 비슷한 재정 체계를 가진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건강보험 제도의 종주국인 독일 역시 가입자와 고용주가 절반씩 부담하는 보험료와 국고 지원이 재원의 80~90%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노동 인구가 줄어들면 재정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독일은 보험료 의존 구조의 취약성이 현실화한 대표 사례다. 노동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재정 불안이 상시화하고 있다. 독일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11년 20.4%를 넘어선 뒤 지난해 23.7%까지 상승했다. 독일 보건부(BMG)에 따르면 2024년 법정건강보험(GKV) 질병금고의 최종 적자는 66억유로(한화 약 11조4806억원)에 달했다.
독일이 재정 절벽 앞에서 택한 해결책은 '보장은 낮추고 보험료는 올리는' 정공법이었다. 1989년 건강제도구조개혁법 이후 약 30년간 재정 건정성에 초점을 맞춘 체질 개선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일반 감기약처럼 의학적 필요성이 낮은 비처방(OTC) 의약품은 2004년부터 급여 대상에서 빠졌고, 이듬해엔 치과 보철치료가 정액보조 방식으로 개편되면서 환자 본인부담을 확대했다.
최근에는 수십 년간 유지돼 온 가족보험 제도 손질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지금까지는 소득이 없거나 일정 기준 이하인 배우자가 별도 보험료 없이 피부양자로 등록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일부 배우자에게 월 225유로(39만원)안팎의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무상 공동가입 범위를 좁혀 재정 부담을 덜려는 시도다.
보험료 인상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GKV 운영기관인 질병금고(Krankenkasse)가 재정 사정에 따라 추가보험료율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면서다. 기본 보험료율은 2015년 이후 14.6%로 유지되고 있지만 실제 보험료 부담은 추가보험료를 통해 높아지는 방식이다. 지난 5년간 추가보험료율은 △2022년 1.3% △2023년 1.6% △2024년 1.7% △2025년 2.5% △2026년 2.9% 등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보험료 의존 낮춘 '사회보장세' 도입 제언도

보험료 비중이 낮은 국가는 재원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프랑스는 건강보험료가 전체 재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6.8%(2022년 기준)에 에 그친다. 대신 사회보장분담금(CSG)과 사회보장목적세(ITAF) 등 조세 성격의 재원을 폭넓게 활용해 나머지를 충당하고 있다. 노동 인구가 줄어들더라도 보험료 수입 감소가 곧바로 재정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재원 구조 자체를 다변화한 셈이다.
프랑스의 CSG는 근로소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퇴직연금, 실업급여, 재산소득, 이자소득 등 사실상 대부분의 소득 원천에 부과된다. '소득이 있는 곳에 분담(세금)이 있다'는 원칙 아래 재정 기반 자체를 넓혔다.
전문가들은 국내도 이 같은 방식의 재원 다변화를 단계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법률상 규정된 국고지원 20%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한 뒤 이후 사회보장세 도입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건강보험 건강보험연구원은 "사회보장세는 국민 수용성, 재정 확보에 따른 위험 완화, 재정 운영의 유연성 측면에서 건강보험 재원 확보 방안으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 재원 부담에 대한 저항을 줄이려면 지출 용도를 명확히 해야 하는데, 사회보장세는 사회보장을 위한 재원 확보 방안이라는 점에서 지출 목적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은 또 "건강보험료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특정 소득계층에만 부담을 지우기보다 다양한 소득과 조세에 폭넓게 부과해 재정 부담의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며 "하나의 재원에만 기대기보다 여러 재원을 함께 운용하는 구조가 재정 운영의 유연성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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