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침묵’이 전하는 회복과 치유의 여정

정유진 기자 2025. 9. 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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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일천 기획초대전 ‘Phenomenon Space’
9일까지 드영미술관…현상학적 사진 세계
공간·시간·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
감각의 울림 담은 매개체, 체험의 장 기능
리일천 作 'Phenomenon Space III(현상공간 3)'(115x182㎝, Canvas on Digital Inkjet Print, 2023)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리일천 작가가 공간의 감각과 존재를 탐구하며, 치유의 경험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전시를 선보인다.

드영미술관은 올해 두 번째 기획초대전으로 리일천의 'Phenomenon Space-Chaosmos of Healing'을 오는 9일까지 1~3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탐구해온 공간과 시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응축된 작품들을 통해 관람자에게 감각의 회복과 내적 치유의 여정을 제안한다.

리일천은 도시와 인간의 흔적을 담은 사진으로 주목받아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간이 부재한 공간을 흑백 모노크롬으로 포착해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친 장소의 정서적 울림을 되살린다. 문, 계단, 벽과 바닥의 경계 등 건축적 요소들은 연출 없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으며, 그 안에는 침묵과 존재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리일천 作 'The windows of the Future'(80x 120㎝, Digital C Print, 2015)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문득' 마주치는 순간의 공간이다. 삶의 궤적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장소를 지나지만, 모든 공간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예기치 않은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으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리일천은 바로 이러한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하며, 관람자가 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이끈다.

리일천의 작품은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지각현상학'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메를로-퐁티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이 단순한 시각적 관찰이 아니라 몸 전체로 느끼고 경험하며 세계와 관계를 맺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리일천의 사진은 이러한 '살아 있는 지각'의 순간을 담아 관람자가 공간과 직접 관계를 맺도록 유도한다.
리일천 作 'Absence(부재)'(115x182㎝, Canvas on Digital Inkjet Print, 2023)

흑백의 미묘한 빛과 그림자의 흐름, 천장의 창으로 들어오는 구름의 움직임, 날카로운 계단 단면 등은 관람자로 하여금 공간 속을 걷는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질서와 혼돈, 존재와 부재가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사진은 감각을 회복하고 세계와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리일천은 "사진에 담긴 시간의 흔적은 순간성과 영원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관람자가 우주와 자신과의 관계를 사색하도록 한다"며 "사진을 통해 '카오스모스'를 인식하고, 일상 속 상처와 피로를 치유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