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는 빠르지만, 무겁다. 테슬라 모델 S, 기아 EV6 등 대부분의 전기차가 1.8톤을 훌쩍 넘기며 ‘중량급’ 이미지를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직 테슬라 엔지니어들이 뭉쳐 만든 영국 스타트업 롱보우(Longbow)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가벼움’이라는 정반대의 철학으로 전기 스포츠카 시장의 균형을 뒤흔들고 있다.
롱보우는 최근 영국 런던에서 ‘스피드스터(Speedster)’라는 이름의 전기 스포츠카 시제품을 공개했다. 이 차량은 차체 무게가 단 895kg에 불과하다. 이는 일반 전기 SUV의 절반 수준이다. 단순히 가볍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3.5초만에 도달하며, 1회 충전 주행거리 약 440km(WLTP 기준)를 확보했다.
스피드스터의 가격은 약 1억1천만 원(부가세 포함)부터 시작하며, 지붕이 달린 ‘로드스터(Roadster)’ 버전은 약 8천5백만 원수준에서 출발할 예정이다. 롱보우 측은 2026년부터 본격 고객 인도에 돌입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불과 6개월 만에 시제품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업계는 “속도의 미학을 실현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무게를 줄이면 감각이 살아난다”

롱보우는 자신들이 만든 스피드스터를 ‘세계 최초의 초경량 전기차(Featherweight Electric Vehicle)’라고 정의했다. 그 말 그대로, 전통 스포츠카의 정신을 전기차에 이식했다. 알루미늄 섀시, 모듈 일체형 배터리 구조, 컴팩트 전기 모터등 모든 요소를 새로 설계했다. 단순히 기존 플랫폼을 개조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시작된 결과물이다.
창립자 다니엘 데이비(Daniel Davey)는 “무게는 복잡성을 부르고, 민첩성을 죽이며, 운전의 감각을 무디게 한다”며 “우리는 이 원칙을 정반대로 돌려놨다”고 밝혔다. 실제로 스피드스터는 지붕도, 창문도 없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주행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한 ‘순수 드라이빙 머신’의 방향을 고수한 셈이다.
롱보우의 철학은 영국 자동차 역사에서 전설로 남은 로터스 창립자 콜린 채프먼의 ‘단순화하고 가볍게 하라(Simplify and add lightness)’를 계승한다. 그들은 테슬라가 만들지 못한 ‘감성 있는 전기차’를 목표로 하고 있다.
“테슬라보다 먼저, 더 가볍게”

흥미로운 점은, 롱보우가 개발 중인 또 다른 모델의 이름이 ‘로드스터(Roadster)’라는 사실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일론 머스크가 2017년부터 예고해온 테슬라 로드스터는 여전히 출시되지 않았다. 반면, 롱보우는 단 6개월 만에 주행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업계에서는 “테슬라보다 먼저 로드스터를 내놓겠다는 공개 도발”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롱보우는 시제품을 ‘Aesthetic Dynamic Demonstrator’라는 이름으로 런던에서 공개하며, 실제 주행 테스트까지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초기 예약 고객과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이게 진짜 전기 스포츠카”라며 열띤 반응을 보였다.
롱보우의 행보에는 업계 베테랑들도 가세했다. 전 맥라렌 CEO 마이크 플루잇, 전 로터스 유럽 총괄 댄 발머, 루시드·재규어·알피느를 거친 마이클 반 더 산데등이 자문위원으로 합류했다. 그야말로 ‘자동차 명가’ 출신 인재들이 총집결한 셈이다.
“가벼움이 만든 새로운 전기차 공식”

롱보우가 던진 메시지는 단순하다. ‘전기차도 가볍고, 순수하고, 운전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전기차 시장은 배터리 용량과 주행거리 경쟁에 치중해왔다. 하지만 롱보우는 무게를 줄이고 감각을 되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들은 스피드스터를 시작으로, 향후 경량 전기 로드스터, 트랙 전용 차량 등으로 라인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또한 소량 생산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맞춤형 튜닝 서비스를 제공해 ‘전기차계의 로터스’로 자리 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테슬라 로드스터의 재등장은 한층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 이미 “일론 머스크보다 먼저 가볍게 달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롱보우는 단순히 전기차 한 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전기차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속도

테슬라가 ‘스펙의 시대’를 열었다면, 롱보우는 ‘감각의 시대’를 열려 한다. 엔지니어 출신 창업자들이 만든 이 초경량 전기 스포츠카는 자동차 산업이 잃어버린 ‘운전의 재미’를 되찾고 있다.
롱보우는 내년 중 완성차 테스트를 거쳐, 2026년 하반기부터 본격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글로벌 주문도 이미 시작됐으며, 유럽 고성능 시장에서 초기 물량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펙 경쟁에 지친 전기차 시장에서 롱보우의 등장은 일종의 반란”이라고 평가한다. 일론 머스크가 수년째 약속만 해온 로드스터를 기다리는 사이, 전직 테슬라 엔지니어들은 이미 새로운 길을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