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류문명의 여정] 인류 역사에서 가장 풍족했던 수렵·채집 사회

인류의 시간을 길게 펼쳐보면, 농경은 뒤늦게 선택된 삶에 가깝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래, 오랜 세월은 들과 숲, 강과 초원을 오가며 사냥과 채집으로 이어졌다. 이를 우리는 흔히 '원시적'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가장 오래 지속된 삶의 방식이자 깊이 축적된 생존의 지혜였다..
더욱 주목할 점은 수렵. 채집 방식이 까마득한 구석기시대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20세기 중반까지도 이러한 삶이 이어졌다. 인류학자들이 만난 그들의 일상은 과거를 재현한 전시물이 아니라, 현재 속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시간이었다. 마치 역사책의 첫 장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채 오늘과 나란히 놓여 있는 듯한 살아있는 박물관을 보여주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수렵·채집 사회 사람들은 계절에 따라 먹이를 찾아 이동하며 대체로 20~50명 규모의 무리를 이루어 살았다. 먹거리가 풍부한 시기에는 집단이 커졌고, 환경이 나빠지면 흩어졌다. 이들이 사용한 움집은 짓기 쉽고 이동에 적합한 구조였지만, 생태 환경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비교적 영구적인 정착지도 형성되었다. 서울 암사동 초기 신석기시대 주민이나, 도토리와 연어 같은 풍부한 자연 자원을 활용해 농사 없이도 정주생활을 했던 일부 캘리포니아의 근대 원주민 사회가 그 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분업이 비교적 분명했다. 여성은 채집을, 남성은 사냥을 맡았다. 이러한 분업은 생물학적 본성이라 기보다 환경과 생존 전략에 따라 형성된 사회적 선택에 가까웠다. 계절과 식생의 변화를 정확히 이해해야 했던 채집은 고도의 지식과 경험을 요구하는 일이었으며, 여성들은 세대를 거쳐 언제, 어디서 어떤 식물을 채집하는 지식을 축적해 왔다. 반면 사냥은 성공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활동이었다. 특히 온대 지역에서는 군집을 이루는 동물이 드물었고, 사냥감 대부분이 빠르고 민첩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수렵·채집 사회에서 여성의 경제적 기여도가 남성보다 더 컸다고 본다. 여성들이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했기에 공동체는 유지될 수 있었다. 남성과 여성이 바깥활동을 하는 동안, 노년층은 아이들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돌보며 집단을 지탱했다.
수렵·채집 사회에는 사유재산이나 계급이 거의 없었다. 사냥과 채집의 산물은 공동체가 함께 나누었고, 자연환경이 넉넉한 지역에서는 하루 6시간, 주 이틀 정도의 노동만으로도 충분한 식량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굶주림에 시달릴 가능성도 비교적 드물었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경제적·건강 상태는 주변의 화전 농경 사회보다 오히려 안정적이었고, 평균 수명도 더 길었다. 풍부한 식량으로 영양 상태가 좋았고, 낮은 인구 밀집도로 전염병 확산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수렵·채집 사회는 인구가 늘어나는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동체의 규모를 자연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유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때로는 새로운 집단을 형성해 갈라지기도 했으며, 일부 사회에서는 여영아 살해 풍습이 존재했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잦은 이동과 높은 노동 강도로 인해 출산율이 낮게 유지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혹독한 한대 지역에 적응해 살아온 일부 집단을 제외하면 수렵·채집 사회는 근대 이전 인류 역사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삶을 누렸던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서 말하는 '풍요로움'은 축적된 재산의 규모나 잉여 생산의 크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여가와 휴식을 누릴 수 있었던 삶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가난했을 것이라 짐작해 온 사회가, 실은 근대 이전까지 가장 풍요로운 사회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불편하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