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고차를 구매할 때 필수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성능 보증 보험’. 언뜻 보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인 제도로 들린다. 차량 구매 후 일정 기간 내 엔진이나 미션 등 주요 부품에 문제가 생기면 보험사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 제도가 소비자 보호가 아닌 딜러 보호용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성능 보증 보험은 의무 가입 사항이다. 문제는 이 보험료를 판매 딜러가 아닌 소비자가 전액 부담한다는 점이다. 중고차를 고르며 가격을 따지던 소비자들은 차량 구매가 확정되는 순간, 보험료 부담까지 떠안게 된다. 게다가 이 보험 덕분에 판매 딜러는 차량 판매 후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여기에 더해, 중고차 매매 상사들은 ‘매도비’라는 명목으로 또 다른 비용을 부과하고 있다. 수도권 기준 44만 원, 지방은 약 35만 원에 달하는 매도비는 사실상 소비자와 무관한 항목임에도 “의무 비용”으로 포장되어 있다. 차량 가격과는 별개로 부대비용이 쌓이면서, 중고차를 ‘저렴하게’ 산다는 전제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보험료는 소비자가, 책임은 딜러가 면제받는 구조”

성능 보증 보험 제도의 본래 취지는 명확하다. 차량 인수 후 일정 기간 내 고장이 발생했을 때 소비자가 불이익을 보지 않도록 보상하는 장치다. 그러나 현재 운영 방식은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작동한다. 차량 판매 후 문제 발생 시, 딜러는 “보험사에 접수하라”는 말 한마디로 책임을 전가한다. 과거에는 딜러가 직접 수리나 보상에 나서야 했지만, 제도 도입 이후 그 부담이 사라졌다. 결국 보험료는 소비자가 내지만, 그 혜택은 딜러가 누리는 꼴이다.
이로 인해 중고차 구매자들은 이중의 피해를 입는다. ‘무사고 차량’으로 소개받은 차가 나중에 사고 이력이 드러나도, 딜러는 “보험으로 처리하라”며 발뺌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소비자가 심리적·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진다는 점이다. 차량 이상이 생기면 보험 처리에 시간과 절차가 걸리고, 그 사이 교통편이 마비되는 사례도 많다. 소비자는 돈을 내고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성능 보증 보험료를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해야만 판매자에게도 일정 수준의 책임 의식이 생기고, 무책임한 거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능장과 딜러 간의 유착 문제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구조에서는 딜러가 성능 보증 보험을 악용해 차량 상태를 부풀리거나, 문제 있는 차량을 은폐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매도비’라는 이름의 또 다른 함정

성능 보증 보험 외에도 소비자들을 분노하게 하는 대표적 항목이 바로 ‘매도비’다. 중고차 매매 상사들은 매도비를 “차량 관리비, 사무장 월급, 이전 대행비 등”으로 설명하지만, 실상은 소비자와 전혀 관계없는 비용을 포함하고 있다. 수도권 기준으로 평균 44만 원에 달하는 이 금액은 차량 가격이 얼마든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청구된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한 딜러는 “차값이 200만 원이어도 매도비 44만 원, 성능 보증 보험 10만 원은 무조건 내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알선 수수료 2%까지 더하면, 차량 가격의 30%에 육박하는 부대비용이 발생한다. 저가 차량을 구매하려는 소비자일수록 타격이 크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이 매도비가 판매 딜러에게 돌아가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매도비는 상사 대표가 전액 가져간다. 즉, 소비자 돈으로 상사 운영비와 직원 인건비를 충당하는 구조다. 상사 대표는 차량이 한 대 팔릴 때마다 앉아서 수십만 원의 ‘이익’을 챙기는 셈이다. 이 같은 관행은 명백히 불공정 거래에 해당한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매도비는 사실상 상사 운영비 명목으로 굳어져 왔고, 오랜 기간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문제는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매도비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아, 소비자가 항의해도 “관행상 부과되는 비용”이라는 답변만 돌아오는 실정이다.
“소비자 보호 제도, 진짜 보호하려면 구조부터 바꿔야”

중고차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용 구조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성능 보증 보험료와 매도비를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가 부담하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렇게 되면 판매자 또한 차량 상태에 책임을 지게 되고,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국토교통부와 지자체는 중고차 매매 관련 법령을 재검토해야 한다. 현재처럼 관행에 의존한 모호한 규정은 소비자 피해만 양산할 뿐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위반 시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구조로의 개편이 필요하다.
결국, 중고차 시장의 신뢰는 ‘책임의 무게’를 누가 지느냐에 달려 있다. 제도가 소비자 보호라는 이름 아래 딜러들의 면죄부로 작동하는 한, 시장은 결코 투명해질 수 없다. 소비자를 보호하려면, 먼저 불공정한 비용 구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