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이자 위스키 애호가, 정보연 작가 인터뷰

Q. 위스키 책 집필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나요?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책을 내는 거였어요. 이미 엄청난 돈을 위스키 마시는 데 썼잖아요. 그러고 나서 작업실을 구하고 스터디를 하고, 이 과정에서도 계속 비용이 발생했고요. 결국 이 공부가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되는 게 맞는 것 같았어요. 작업실 구할 때부터 목표는 이 모든 게 끝나면 위스키 관련 책을 쓰자는 것이었어요.

2019년 『하루 끝, 위스키』라는 책이 나왔는데, 그때도 전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책을 냈다고 저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고요. 신기하다, 책이 나왔네 하는 정도였지요. 북토크를 할 때는 마치 제가 대단한 작가가 된 것 같은 즐거움에 빠지기도 했지만 다시 직장 생활을 하며 정신이 없어졌어요.

정보연 작가

그러다 팬데믹이 왔어요. 위스키 인기가 엄청나게 올라가기 시작했고, 많은 매체나 회사에서 위스키 관련 기획 기사, 클래스를 의뢰해 왔어요. 당시는 무신사에 근무하던 때였는데 무신사도 전쟁터 같이 바빴어요. 외형 매출도 키우면서 마케팅도 많이 하던 때여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어쩔 수 없이 고사하고 고사하다가 이 정도로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면 이 일을 시작으로 독립을 할 수도 있겠다, 자리 잡을 때까지 이 일을 하면서 나중에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저만의 확신이 들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행보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보연정 2층 공간

Q. 작가, 마케터, 강연자, 기획자 등이 작가님 안에서 각각 어느 정도 지분으로 구성되어 있나요?

일을 하는 시기에 따라 그 지분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아요. 마케팅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시기면 마케팅이 80%로 커졌다가 위스키 세션을 진행하는 일이 생기면 위스키가 좀 더 커졌다가, 그때그때 달라지는데, 기본적으로 저는 제 DNA가 마케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마케터이자 위스키 칼럼니스트, 또는 위스키 애호가라고 저를 소개하고 있어요.

마케터로서의 자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지금 현재도 한국의 발효과학을 주제로 영주시에서 무량수라는 발효 식품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이 제품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지 카피라이팅부터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고 있어요.

글을 쓰는 작가라는 자아를 정말 사랑하지만 이제 막 두 권의 저작물을 낸 초보라서 아직은  이것을 크게 내세우기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글을 쓰는 행위라든지 뭔가를 정리하고 소개하는 재구성의 행위가 정말 즐거워서 시간을 두고 준비하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중이에요.

수익의 관점에서 보자면, 위스키 관련 일이 가장 많은 것 같아요. 마케팅 일은 저 혼자 하다 보니 한꺼번에 여러 일을 진행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외부 마케팅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위스키 관련 외부 행사들을 줄일 수밖에 없지요.

Q. 외부 일이 늘어나면 작가로서의 자아가 작아지지 않을까 조바심은 없나요?

처음 독립하고 나서는 마케팅 프로젝트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월급을 받다가 스스로 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니 조급했던 거지요. 그래서 제 경력과 상관없이 들어오거나 소개받은 일은 일단 했어요. 사실 제가 기업에 남아 있었다면 훨씬 더 큰 연봉으로 마케터 경력을 꽃 피우고 있을 텐데 독립까지 한 의미가 퇴색하는 것 같았어요.

1년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용기를 내서 외부 프로젝트를 다 끊었어요. 당장은 불안한 마음이 컸지만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고, 이후 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나 마케팅 이외 일과 시너지가 생길 수 있는 분야로 한정시켰어요.

최근에는 한 전통주 브랜드의 상품 상세 페이지와 제품 소개서 작업을 했어요. 술 관련한 마케팅은 제 강점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커리어를 확장할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되기도 하지요.

Q. 술 관련해서 또 어떤 일들을 하시나요?

외국 위스키 브랜드의 한국 런칭 행사 때 진행을 맡게 되는 경우, 다른 분들이라면 스피치 정도로 끝나지만 저는 행사 전반 마케팅 컨설팅을 하기도 해요.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에서 시작해서 그 브랜드에 가장 관심을 가져 줄 만한 타켓을 정해 청중을 섭외하지요. 이런 일들은 기존의 커리어를 이어가면서 새로 갖게 된 위스키 페르소나와 결합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Q. 브랜드 마케팅부터 플랫폼 마케팅까지 전부 하시는 건가요?

제가 회사에 다닐 때는 플랫폼 마케터로 일을 했어요. 플랫폼 마케터는 브랜드 마케터랑 업무가 완전히 달라요. 오직 매출이 목적이라 당장의 구매 전환율에 집착하고, 소위 사람들이 생각하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마케팅보다는 퍼포먼스 위주의 마케팅을 하게 되지요. 그래서 저한테는 늘 브랜딩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e커머스 특성상 시즌에 맞는 아이템을 보여주고 적절한 프로모션을 통해서 구매를 진작시키는 게 보통의 일이고 아주 빠르게 변화해요. 온라인 트렌드의 속도에 맞춰서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 계속 소비를 하라고 부추겨야 하지요. 그렇게 몇 시즌이 지나니 저 스스로가 제가 만든 이야기에 설득이 안 되는 거예요. 소비를 통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은데 계속 사라고만 외치는 게 제 가치관과 맞지 않았고, 그런 피로가 엄청나게 누적되어 있었어요.

위스키도 물론 상업적이고 엄청난 사치재지만 이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좋아요. 그들이 쌓은 헤리티지, 그러니까 발효라든지 숙성 이런 것들이 결국 시간이 쌓이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제가 거기에 매료됐던 것 같아요. 제가 보통 예술, 술, 음식을 결합을 해서 소개하는데 이 방식이 이전에 제가 안 해 본, 그리고 못 해 본 마케팅 방식이다 보니까 너무나 즐거워요.

Q. 마케터로서 바라본 스코틀랜드 증류소 여행기라는 콘셉트의 『여행의 끝 위스키』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지요?

처음 기획은 마케터로 바라본 스코틀랜드 증류소가 아니었어요. 위스키 책도 쓰고 위스키 강연도 많이 했지만, 정작 스코틀랜드를 안 가 봤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우연찮게 기회가 닿아서 여러 지원을 받고 스코틀랜드를 가게 됐어요. 증류소에 갈 때마다 제조 과정이라든지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나 분위기가 너무나 새롭고 좋았어요.

여행을 다녀와서 정리한 글을 출판사 편집자 분께 보냈더니 제 글이 에세이가 아니라 마케팅 홍보물 같다 하더라고요. 제가 상품 판매하는 글쓰기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까 마치 위스키 팸플릿 같이 써 버렸던 것 같아요. 이야기가 좀 담백했으면 좋겠고 본인의 생각이 더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있었어요. 그런 요구에 맞춰 수정을 했지만 저도 모르게 경험 마케팅적인 부분이라든지 아니면 상품 기획에 대한 부분이 디테일하게 서술되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1차 교정을 보고 나서 편집장님이 마케터로서의 시선이 오히려 제 장점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물론 마케팅 교본은 아니니까 여행기의 톤 앤 매너는 유지하되 동선에 따른 구성보다는 상품 기획이라든지 제조 방식 같은 주제별로 증류소들의 이야기를 다시 묶어 구성하게 된 거지요.

Q. 『여행의 끝 위스키』가 블랙, 브룩라디, 화이트 에디션으로 나와 있지요. 각 에디션에는 어떤 의미가 있고, 다음 에디션이 따로 있나요?

저는 처음부터 책을 어떻게 팔면 좋겠다는 계획이 있었어요. 거기에 맞춰 수많은 레퍼런스를 준비해 두었고요. 양장의 예시라든지 폰트 스타일, 스코틀랜드 국화인 엉겅퀴의 모티브를 표지에 넣는다든지 하는 제 의견을 전부 출판사에 전달했어요. 제가 가장 하고 싶었던 건 타탄체크를 쓰는 거였고, 제목의 금박도 증류기 색에 가까운 금박이어야 했어요.

그런 의견이 반영이 된 게 첫 번째 블랙 에디션이에요. 이 에디션 표지에 증류소 이미지가 있어요. 그 부분을 특정 증류소 사진으로 바꾸고 책 뒤에는 그 증류소를 소개하는 식으로 마케팅 포인트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책이 나오고 바로 영업을 시작했어요. 증류소 사진과 로고를 바꿔주고 내지에도 광고 페이지를 넣어 주겠다, 그런 제안에 관심을 가져 주는 증류소가 몇 군데 있었는데, 그중 브룩라디에서 가장 큰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브룩라디가 표방하는 메시지가 프로그래시브 디스틸러스예요. 진보적이고 새로운 실험에 아주 적극적인 증류소지요. 그렇게 오랜 논의 끝에 브룩라디 에디션이 나오게 되었지요. 판매처도 브룩라디 에디션은 교보문고에서만 살 수 있게끔 판매 채널도 고정시켰어요. 사실 출판사 업무에 대한 월권일 수도 있는데, 저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열심히 영업하는 엄청 극성인 저자예요.

브룩라디 증류소와 협업한 『여행의 끝 위스키』 브룩라디 에디션

Q. 다음 책은 일본 술에 대한 내용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작업이 진행됐나요?

드링크 포켓 가이드 형태를 생각하고 있어요, 위스키, 사케, 맥주, 와인 등 일본의 다양한 술을 소개할 생각이에요. 와인을 공부하면 위스키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정말 많은 와인 양조장, 사케 양조장을 탐방했고, 생산자 분들도 만났어요. 결국 모든 주종에는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장르 불문, 모든 술을 다루기로 한 거지요.

20% 정도 진행된 것 같고, 도시별 시리즈물로 출간할 생각이에요. 첫 번째 편은 홋카이도인데, 그곳에서 만난 생산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결국엔 주조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생산자의 철학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술 자체의 만듦새,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술이 나오기까지 역사적인 배경이라든지, 그 생산자가 살아온 삶, 철학에 더 비중을 두게 됐어요. 이전 출간한 두 권보다 공책처럼 가지고 다니면서 여행하기 좋은 크기로 만들려고요.

Q. 마지막으로 가까운 시기 보연정에서 진행될 프로그램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9월 28일에 가구 감정사 이지은 선생님과 오픈 스튜디오를 열어요. 프랑스에서 25년간 거주하신 경험을 바탕으로 본인의 삶과 요리와 현지 시장 이야기를 담은 『메르시 크루아상』이라는 책을 내셨어요. 그 책을 주제로 하되 이제까지 장식 미술가로서 집필하신 책들을 다 같이 소개하는 행사에요.

10월 중에는 커피 관련 그림을 그리는 김예슬 작가와 북토크를 열어요. 다양한 카페에 가서 카페 공간과 커피를 그리는 분인데, 이번에 도쿄 킷사텐에 관한 그림책이 출간됐어요 또, 포트투갈에 계신 최경화 작가님이 내한하시는데요, 명화 속 등장하는 개 이야기를 풀어낸 ‘그림을 삼킨 개’ 북토크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재즈와 위스키가 함께 흐르는 <향기를 듣다> 프로그램이 10월 18일 진행됩니다.

11월 마지막 주에서 12월 첫 번째 주까지는 기존 <향기를 듣다>라는 재즈 해설 프로그램을 확장하여 문화역 서울284 RTO라는 공간에서 6회 공연과 두 번의 워크숍으로 진행해요. 지금 한국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재즈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경계, 차이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장르 간의 결합을 보여 주시는 아티스트 분들을 섭외했어요. 스탠다드 재즈와 아티스트들의 자작곡을 함께 선보일 예정인데, 이곳이 문화재 공간이라 위스키는 마실 수가 없어서 대신 오감을 자극해 줄 다른 형태의 수단을 찾고 있답니다.

인터뷰 | 이주호, 신태진
사진 |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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