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역사 지닌 밀레니엄 서울 힐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돼
호텔 허물고 들어서게 될 것들은?
1983년부터 40년간 남산 기슭에 자리 잡으며 서울 도심의 대표 특급호텔로 이름을 날렸던 호텔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어떤 이유고, 무엇이 들어설까. 최근 밀레니엄 서울 힐튼은 홈페이지 등을 통해 12월 31일에 영업을 종료한다고 안내했다.
지난 1983년 지하 1층‧지상 22층 규모로 지어진 5성급 호텔인 밀레니엄 서울 힐튼이 4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한국에는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밀레니엄 서울 힐튼, 경주시 보문 관광단지에 경주 힐튼, 부산 기장군에 부산 아난티 코브 힐튼 호텔이 있는데, 밀레니엄 서울 힐튼이 영업을 종료한다.
밀레니엄 서울 힐튼과 경주 힐튼은 원래 대우그룹 계열 대우개발(현 우양산업개발)이 운영했다. 과거 22층 펜트하우스에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시절 사용했던 집무실이 있었다고. 사옥이 바로 옆 건물이라 집무실로 삼을 정도로 애착이 있었다고. 이후 소규모 웨딩홀로 용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밀레니엄 서울 힐튼은 1999년 싱가포르 기업인 훙릉의 자회사 CDL에 매각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매각된 것이다. 밀레니엄 서울 힐튼은 1977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건축학과에 있던 김종성 교수에게 직접 찾아가서 세계적 호텔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해 만든 건물이다.
김종성 교수는 김 회장의 부탁을 받고 1978년 귀국, 한국 건축계에 선진 건축을 전파한 선구자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는 서울역사박물관, 서울 서린동 SK 사옥, 경주 우양미술관, 서울 올림픽 공원 내 역도경기장,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등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밀레니엄 서울 힐튼은 엄격한 절제미를 보여주는 건축물로 손꼽힌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인이 세계 건축계의 중심에서 학습한 결과가 설계와 구현 양 측면에서 높은 수준으로 이뤄진 사례”, “정교하고 우아한 비례로 세월이 지나도 기품을 잃지 않는 명작” 등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았다.
밀레니엄 서울 힐튼은 서울역 바로 앞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오래됐으나, 높은 룸레이트를 유지했다고. 남산뷰 객실을 선택하면 서울타워 관람도 가능했다. 밀레니엄 서울 힐튼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로비에 힐튼 서울의 역사 등을 소개하는 소규모 전시관 등을 운영했다. 많은 사람이 찾았다”고 밝혔다.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의 최대 주주 CDL호텔코리아는 지난해 이지스자산운용에 호텔을 매각하려고 시도했다. 건물을 헐고 오피스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보도가 잇따랐으나, 이후 밀레니엄 서울 힐튼 측에서 CDL호텔코리아와 힐튼과의 장기 계약에 따라 호텔 운영을 지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따라 매각은 철회되는 것처럼 보였고, 호텔로서 운영을 지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매각이 성사돼 2022년 연말을 끝으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주된 원인은 수익성 악화다. CDL호텔코리아는 이지스자산운용과 매매가 1조 원 수준의 호텔 인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렇다면 해당 호텔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지스자산운용은 2027년까지 밀레니엄 서울 힐튼은 허물로 오피스, 호텔 등으로 구성된 복합시설로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기존의 밀레니엄 서울 힐튼 부지가 용적률을 최대화하면서 오피스와 호텔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올 예정이라, 다시 한번 힐튼 브랜드의 호텔이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고 점치고 있다. 건축계에서는 건물의 건축사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철거 반대 목소리를 냈다.
김종성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부동산 투자 회사야 이익을 최대로 내는 게 목적이니 대수롭지 않은 일일 것이다. 부지만 보면 허용 용적률 600% 중 350%만 써서 호텔을 지었기 때문에 철거하고 600%를 다 채우면 엄청난 이익이 생긴다는 셈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뭐든 철거하면 돈 많이 버는 거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힐튼은 내가 설계했다는 사실을 떠나서, 1980년대 한국 건축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건물’이 아닌 ‘건축’이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철거 후 다시 짓는 것일지라도 뒤따르는 ‘사회적 손실’을 피하면서 최적의 개발 전략을 모색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430여 명의 호텔 직원들 중 80%가량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제시한 보상안을 받고 퇴직한다. 나머지는 2027년 준공 예정인 복합시설에서 근무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지스자산운용은 호텔 임직원 고용 승계 문제와 관련, 상생안과 보상안을 제시한 바 있다. 상생안은 5년간 새 단장 후 복직을 원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78%의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규직이 아닌 다른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보상안의 경우 퇴직금과 함께 40개월 치 급여 수준의 위로금 제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