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반의 죽음

김태옥 충북대학교 러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2026. 1. 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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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레프 톨스토이는 평생에 걸쳐 삶과 죽음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한 작가다. 그의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은 이러한 사유가 가장 응축된 형태로 제시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에서 톨스토이는 죽음을 앞둔 관료의 내면 의식을 면밀히 추적함으로써, 인간이 죽음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회피하는지, 그리고 죽음의 자각이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재평가하게 만드는 과정을 정교하게 제시한다.

법관 출신 관료였던 이반 일리치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으로, 그의 형상은 특정 개인을 넘어 하나의 세대, 더 나아가 인간 일반을 대표한다. 작품 속 인물들이 종종 살아 있는 인간이라기보다 기계적이고 유형화된 존재로 묘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반 일리치는 물질적 세계와 사회적 성공에 철저히 몰두한 인물로, 정신적 가치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의 삶은 관직과 체면, 규범에 의해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결혼 역시 사랑이 아닌 사회적 요구에 따른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질서정연한 삶은 불치의 병 앞에서 급격히 붕괴된다. 주인공의 병은 표면적으로는 사소한 일상적 사고에서 비롯된다. 그는 새 아파트를 정리하던 중 창가에서 미끄러져 옆구리를 부딪힌다. 이 우연한 낙상은 병을 촉발한 외적 계기에 지나지 않으며, 그 근본적 원인은 그가 선택해 온 삶의 방식과 구조 전반에 놓여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처음 그는 병과 죽음을 부정하며 기존의 삶을 유지하려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면서 이전의 가치들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 직장과 사회, 가족 관계에서도 위안을 얻지 못한 채, 그는 자신의 삶 전체가 근본적으로 옳지 않았음을 인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돈과 지위, 사회적 인정은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제공하지 못한다.

이반 일리치가 진정한 가치에 도달하게 되는 계기는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죽음을 앞두고 겪는 극도의 고독이다. 이 고독은 그에게 외부 세계의 가치 체계가 근본적으로 허위였음을 직면하게 하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병세가 악화될수록 그는 가족과 동료, 사회로부터 점점 단절되며, 이전에 자신을 지탱하던 인간관계와 사회적 역할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함을 인식하게 된다. 이반 일리치가 신뢰와 위안을 느끼는 유일한 대상은 사회적 위계의 최하층에 속한 농부 게라심이다. 이는 기존의 사회적 관계가 이해관계와 형식에 의해 유지되었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진정한 인간적 교감이 사회적 지위와 무관함을 보여준다. 죽음 직전 그는 돈과 지위의 허상, 자신을 둘러싼 삶의 거짓을 인식하며, 삶 전체에 대한 근본적인 각성에 도달한다.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핵심 사건은 작품의 결말이 아니라 서두에 제시된다. 이에 따라 독자는 처음부터 인물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이러한 선행적 결말 제시는 서사의 긴장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향해 수렴해 가는 삶의 과정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그 결과 작품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초반에 형성되었던 인물에 대한 인식이 수정되고, 그의 삶 전체가 새로운 해석의 틀 속에서 다시 조명된다.

작품에서 '이반'이라는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 문화에서 이반은 가장 흔한 이름으로, 거의 보통명사에 가깝다. 톨스토이는 이 이름을 통해 특정한 한 개인이 아니라 보통 인간 일반을 그리고자 했다. 따라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한 관료 개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국적과 시대, 사회적 지위를 초월한 모든 인간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이반 일리치는 곧 '누구나 될 수 있는 사람', '우리 모두'를 상징한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죽음에 대한 사유를 회피하는지, 사회가 죽음을 앞둔 개인에게 얼마나 위선적이고 냉담한지를 드러내며, 죽음에 대한 자각이 비로소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로 여기에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지니는 보편성과 철학적 깊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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