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진, 능욕 멘트 주면 들여보내 줄게” 여전히 활개 치는 딥페이크방

문영훈 기자 2024. 9. 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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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까지 대상으로 하는 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폭로가 잇따르면서 경찰이 집중 단속을 하는 등 적극적인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범죄자들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어차피 처벌받지 않는다”며 비웃고 있다. 딥페이크 범죄의 뿌리를 뽑기 위해 필요한 법 제도를 살펴봤다.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딥페이크 성범죄가 연령·지역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누구나 딥페이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철저한 실태 파악과 수사를 통해 디지털성범죄를 뿌리 뽑아달라"고 주문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사 방법과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수많은 딥페이크 성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나자 경찰청은 7개월간 딥페이크 성범죄 특별 집중 단속 실시 계획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9월 10일 기준 518건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은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 4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능욕방’이라고 이름 붙여진 텔레그램방에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이용자가 들어왔다. 한 텔레그램방에는 "전 지역 '겹지방’(겹지인방) 딥페방 인원을 모집한다"는 글이 수시로 올라왔다. 기자가 해당 채팅을 올린 이에게 접촉하자 "지인 SNS 프로필 사진과 능욕할 멘트를 주면 들여보내 주겠다"고 말했다. 텔레그램방 이용자들은 '어차피 못 잡는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위장 수사 도입 필요성 대두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딥페이크방 가입 홍보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딥페이크 가해자들이 수사 당국의 적극적인 태도를 비웃는 것은 실제로 경찰 수사에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인하대 딥페이크 사건에서도 피해자가 직접 대화방에 잠입해 증거를 수집해 30대 남성을 특정했다.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에서도 'N번방 사건’을 세상에 폭로한 '불꽃’ 원은지 씨의 조력으로 경찰이 범인을 체포할 수 있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아동청소년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혜진 변호사는 "피해자가 경찰에 찾아가도 '해외 서버라 잡을 수 없다’고 사건 접수를 말리거나 접수가 되더라도 수사 진행 상황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등 피해자가 무력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현재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피해자와 피의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9월 2일 대구의 한 고등학교 등굣길에서 찍은 카카오톡 프로필. 딥페이크 피해가 늘며 메신저 프로필을 삭제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경찰 처지에서도 수사 인력이 부족한 애로 사항이 있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6월 5일 기준 전국 18개 시도 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팀 인력은 모두 131명(26개 팀)이다. 사이버성폭력 수사팀은 딥페이크 사건을 포함해 사이버상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를 전담 수사하는데, 지난해 디지털성범죄 발생 건수만 2만127건에 달한다.

이 때문에 위장 수사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9월 10일 발표한 '딥페이크 성범죄 수사·처벌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통상적인 수사 방법으로는 폐쇄된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수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위장 수사 도입을 제안했다. 위장 수사는 경찰이 신분을 숨기거나 위장한 채 범인에게 접근해 증거를 수집하는 방식이다. 현재 위장 수사는 마약이나 아동·청소년 관련 성범죄에 한해 가능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해자들은 수시로 텔레그램방을 폭파하고 다시 개설해 경찰이 증거를 찾기가 어렵다"며 "위장 수사를 확대해야 경찰이 잡지 못한 범죄자들을 검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SNS상에서 직접 대화방을 만들어 디지털성범죄 가해자를 유인해 체포하기도 한다"며 "다만 수사 윤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법을 정비해 위장 수사를 해야 실효성 있는 범죄 근절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잡기도 힘든 범죄자, 40%는 집유로 풀려나

8월 30일 대전경찰청에서 경찰, 대전시, 대전시교육청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딥페이크 성 착취물 관련 범죄 집중단속 회의를 하고 있다.
딥페이크 범죄 피의자에 대한 처벌 수위도 도마에 올랐다. 현재 딥페이크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제2항 단 하나로, 2019년 텔레그램 내 불법 성 착취물이 유포된 이른바 'N번방 사건’이 터진 뒤 만들어진 것이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유포한 사실이 있거나 유포할 목적으로 사람의 얼굴, 신체 또는 음성 촬영 및 영상물을 음란하게 편집·합성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딥페이크 소지, 구입, 저장한 행위로는 처벌받지 못하는 것이 현 실정이다. 불법 촬영물의 경우에는 소지, 구입, 저장 또는 시청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실제로 힘든 수사 끝에 특정한 피의자를 재판정에 세워도 대부분 가벼운 처벌에 그쳤다.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을 통해 지난 4년간(2020년 6월 25일~2024년 6월 30일) 딥페이크 성 착취물 제작 · 유포 등으로 처벌받은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기소된 87명 중 집행유예가 34명(39%)으로 가장 많았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24명(27.5%), 벌금형은 14명(16%)이었다. 선고유예와 무죄도 각각 2명(2.2%)이었다. 제작과 유포가 일상적으로 이뤄진 경우에도 집행유예를 받은 사례가 있다. 딥페이크 합성물을 만들어 45차례 판매한 경우나 피해자 사진과 이름,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성인 사이트에 54회 게시한 경우에도 합성물이 정교하지 않다거나 초범이라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았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행법으로는 '유포 목적이 아니었다’고 항변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제작, 소지, 시청 등을 할 경우에도 처벌하고, 유포한 때는 최저 형량 기준을 만들어 엄히 처벌하는 등의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수정 교수는 "다수의 피의자가 10대로 밝혀지고 있는데, 딥페이크물을 일종의 놀이처럼 생각하는 것"이라며 "딥페이크물을 소지·시청한 소년범들의 경우 보호관찰처분 등의 조치를 내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심각한 일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이미 딥페이크 처벌 강화에 힘쓰고 있다. 영국 법무부는 4월 딥페이크로 성 착취물을 제작하기만 해도 공유·유포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피해자가 민사 재판을 통해 딥페이크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제작·소지하거나 이를 알고도 수신한 경우 최대 25만 달러(약 3억30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디피언스법’이 지난 달 상원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수사 및 법적 공백이 '딥페이크는 가짜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의 태도에서 기인했다고 지적한다. 서혜진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겪는 공포는 가짜가 아니다"라며 "딥페이크의 모욕 정도가 오히려 불법 촬영물보다 더 강해 피해자들이 느끼는 고통이 더욱 심한데도 불구하고 불법 촬영물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호기심에 해봤다’ 같은 피의자의 말이 법정에서 통하는 것만 봐도 사법 당국이 이 사건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시각에서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며 "엄격한 법 집행 없이는 가해자들이 '아무도 안 잡힌다’며 시시덕거리는 상황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딥페이크 #여성동아

‌사진 뉴스1 게티이미지 
‌자료제공 서울경찰청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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