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으니 잡음이 된 해녀의 가쁜 숨소리… 국내 1호 음성해설 작가의 20여 년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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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계적 흥행을 거둔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1화의 한 장면.
서수연 작가는 시각장애인이 영상 매체 앞에서 겪는 어려움을 일찍이 포착한 국내 1호 음성해설 작가다.
-같은 음성해설이라도 선천적 전맹과 저시력자를 위한 내용엔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음성해설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별 지침은 있을 수 있지만 표준 가이드라인은 없다. 그렇다 보니 오류와 비문이 생기기도 한다. 학술적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정부 주도하에 연구자들과 실무자들이 함께 만들어야 한다. 또 연구가 자리 잡을수록 직업의 위상도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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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로 음성해설 입문
국내 음성해설 서비스 안착에 씨름하며 해외 유학도
"음성해설도 '번역'... 학계·실무 손잡은 지침서 필요"

지난해 세계적 흥행을 거둔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1화의 한 장면. 제주 앞바다에서 늦게까지 물질하던 광례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휘파람 같은 높은 숨비소리를 낸다. 그만 나오라는 어린 딸 애순의 애타는 외침에 '저리 가라'고 손짓하는데, 손목에 찬 쇠도구 빗창이 흔들거린다.
대다수 시청자에겐 이해에 큰 어려움 없는 대목일 터다. 그러나 화면을 보지 않은 채 소리만 듣게 되면,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고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소녀의 앳된 목소리뿐이다. 아이의 부름에 엄마가 왜 말을 하지 않는지, '삐익' '짤랑짤랑' 소리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다.
서수연 작가는 시각장애인이 영상 매체 앞에서 겪는 어려움을 일찍이 포착한 국내 1호 음성해설 작가다. 24년 전,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성우 지망생으로서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낭독 봉사를 하던 중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음성해설 대본 작업을 제안받은 게 그 길의 시작이었다.
보지 않고도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대사와 대사 사이 빈 공간에 말로 상황을 묘사하는 일은 그 자체도 낯설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참고할 만한 국내 사례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극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선 지문과도 달라야 했고, 정보를 전달하는 타이밍도 정교해야 했다.
"덕분에 즐거웠다"는 후기를 접할 때마다 더 나은 기법을 찾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고군분투하길 20여 년. 그동안 두 번의 유학을 다녀왔고, 참여 작품 수는 7,800건이 넘었다. 이제는 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그를 7일 만나 신간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에 대한 이모저모를 물었다.

-책 표지에 제목이 점자로 들어가 있고, 책 날개엔 표지 해설을 들을 수 있는 QR코드가 있다.
"점자는 종종 시도된 적 있지만, 표지를 음성으로 설명하는 QR코드를 넣은 건 이 책이 처음일 거다. 본문 내용 못지않게 디자인도 책을 고르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인데 시각장애인은 이를 접하기 어려우니 표지 설명을 반드시 넣어야겠다는 의견을 출판사와 나눴다."
-일반적으로 익숙한 '화면해설'이란 용어가 아닌 '음성해설'이란 표현을 고집한다.
"화면해설이라고 하면 자막 서비스와 혼동이 생긴다. 국제 표준 명칭도 음성해설이다. 그런데도 국내 법령과 방송국 등에선 관행적으로 화면해설로 쓰고 있어, 강의를 나갈 때면 용어의 차이를 꼭 짚고 넘어간다. 공연예술 분야에선 어느 정도 음성해설이란 표현이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국내 음성해설 서비스는 어떻게 시작된 건가.
"음성해설의 역사는 1980년대 초 미국에서 출발했다. 이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벤치마킹해 2000년부터 몇몇 영화와 연속극 일부 회차를 시범 제작했다. 이후 한국방송공사(KBS)가 2003년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 음성해설을 선보인 이래 현재까지 중단 없이 제공되고 있다."
-같은 음성해설이라도 선천적 전맹과 저시력자를 위한 내용엔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있지만, 상상력이 이해의 폭을 넓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세포'의 형태를 다 아는 건 아니지 않나. 시각장애인도 학습을 통해 개념과 원리를 배운다. 이해의 방식이 다른 거다. 책에서 '음성해설에 색상 묘사를 결코 배제해선 안 된다'고 쓴 것도 마찬가지다."
-가이드라인은 있나.
"음성해설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별 지침은 있을 수 있지만 표준 가이드라인은 없다. 그렇다 보니 오류와 비문이 생기기도 한다. 학술적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정부 주도하에 연구자들과 실무자들이 함께 만들어야 한다. 또 연구가 자리 잡을수록 직업의 위상도 올라간다."

-음성해설은 시청각 기호를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인공지능(AI)이 미치는 영향은.
"포스터 같은 단순 이미지 설명은 가능하지만,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펼쳐지는 영상 설명엔 아직까지 인간의 축적된 경험과 분석력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번역학 중에서도 음성해설은 AI가 당장 대체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반응이 나온다. 연구할 주제가 많은 블루오션이다."
-책에선 넷플릭스가 미디어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고 평가했다. 국내 사정은 어떤가.
"한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정부 지원을 받아 일부 콘텐츠에만 음성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더빙이 줄면서 시각장애인의 선택지는 더더욱 좁아진 상황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을 비장애인도 많이 이용하는 것처럼, 음성해설이 모두에게 유용하다는 것을 알리는 게 필요하다."
-후배 음성해설 작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한 번이라도 대본 작업을 해 본 사람까지 포함하면 약 100명 정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음성해설 작업은 보수도 낮고, 영상 콘텐츠의 구조와 스토리가 점점 복잡해지는 탓에 일의 난도도 올라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 길을 계속 걷고자 한다면, 다독을 통해 '어휘 근력'을 키우라고 조언하고 싶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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