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는 좋겠네…사모펀드 덕에 백만장자 된 배관공들[딥다이브]
혹시 사업으로 큰돈을 벌고 싶은 기업가적 야망을 가지고 있나요. 그렇다면 미국·유럽 사모펀드가 주목하는 최신 인기 산업을 한번 눈여겨 보는 건 어떨까요. 바로 배관공입니다.
팬데믹 이후 지난 몇 년 사이 내로라하는 사모펀드들이 북미와 유럽에서 주택 배관·공조·전기 기술 관련 소규모 기업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사모펀드에 수백억 원을 받고 기업을 팔아 단번에 벼락부자가 된 배관공 스토리가 언론의 주목을 받죠. 도대체 배관기술자와 관련 기업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뭘까요. 오늘은 사모펀드가 배관기업을 좋아하는 이유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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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의 최고 인기 투자 분야
혹시 영국인 기업가 찰리 멀린스(Charlie Mullins)를 아시나요. 팝스타를 연상케 하는 뾰족한 탈색 금발 머리와 보수적이면서 과격한 정치적 발언으로 유명한 인물인데요. 그의 별명은 이겁니다.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배관공’.
런던 1위 배관기업(엔지니어 약 250명) ‘핌리코 플러머(Pimlico Plumbers)’의 오너였던 멀린스는 2021년 미국 홈 서비스 플랫폼 네이버리(Neighborly)에 기업을 팔았죠. 매각 금액은 무려 1억4000만 파운드(2479억원). 15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배관 견습생이 됐던 흙수저 출신 기업가의 화려한 엑시트 소식이 큰 관심을 끌었는데요.
KKR만이 아니죠. 모건스탠리 사모펀드 부문, 제너럴 아틀란틱, 카터튼 파트너스, TSG컨슈머파트너스, 워터랜드 등. 사모펀드들 사이에 주택관리 소기업을 인수하는 투자 붐이 일어난 지는 이미 3~4년 됐습니다. 이 분야 M&A는 지금도 엄청나게 활발하죠. KPMG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홈 서비스 부문의 M&A는 102건, 113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73건, 29억 달러)보다 크게 늘었는데요. (단, 이는 언론과 전문기관에 포착된 굵직한 거래만 취합한 수치이긴 합니다. 미국엔 이런 소기업이 수십만 곳이나 있죠.)
새로운 백만장자 계층의 탄생
잘 나가는 미국과 유럽 사모펀드들이 왜 집 고치는 소기업을 사들일까, 궁금하시죠. 그 전에 KKR 같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가 어떤 기업에 투자하는지를 생각해 볼까요. 당연히 인수 뒤 그 가치를 크게 높여서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만한 곳에 투자하겠죠. ①잠재 가치보다 더 싼 값에 살 수 있으면서도 ②구조조정 또는 추가 투자를 통해 더 크고 효율적인 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 보여야 할 텐데요. 지금 동네마다 운영 중인 작은 배관(또는 공조, 전기기술, 해충구제 등등) 기업이 딱 그에 해당하는 겁니다.
일단 작은 개인 소유 기업은 수익 대비 좀 저렴한 경향이 있어요(①번). 그리고 극도로 분산돼 있다 보니 이를 통합해서 시너지를 낼 여지가 충분히 있죠(②번). 예컨대 ‘변기 막힘’이나 ‘싱크대 막힘’으로 네이버에서 한번 검색해 보세요. 정말 많은 배관 기업 광고가 뜨는데, 보통 홈페이지도 좀 엉성하고 썩 믿음이 안 가죠. 대부분 전화 예약만 가능하고요. 그런데 수십 개 기업을 사들여 하나로 통합해 운영하면 더 멋진 홈페이지, 더 효과적인 광고는 물론 온라인 예약 시스템과 세련된 앱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 기업을 모아 더 큰 플레이어로 만들어서 경쟁력을 키우는 거죠.
바로 이런 이유로 과거 미국에선 치과나 동물병원, 유럽에선 요양원 같은 소규모로 분산된 기업 여러 곳을 사모펀드가 인수하곤 했는데요. 팬데믹 이후엔 주택 관리 쪽이 가장 각광받고 있습니다. 왜? 코로나가 닥치면서 확인된 거죠. 이 분야가 경기침체에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매우 안정적인 산업이란 결요. 사람들은 소득이 줄면 새 차를 사지 않고 외식을 줄이지만, 그래도 고장 난 보일러는 고치거든요.
금리가 높아서 사람들이 새집을 사지 않고 이사를 안 가면? 오래된 집을 고치면서 살아야 하니까 집수리 수요는 계속 커집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영향? 아무리 걸어 다니는 AI 청소 로봇이 발명된다 해도, 내 집 싱크대 배관 뚫는 일을 맡기긴 어렵지 않을까요.
여기에 더해 배관과 공조(냉방·난방·환기) 산업에 ‘탈탄소화’ 바람이 불면서 새로운 기회도 커져 갑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이나 유럽도 주택 난방엔 가스 또는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대부분 이용하는데요. 이를 전기를 이용한 히트펌프(heat pump)로 바꾸는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죠. 미국이나 유럽 각국에선 기존 주택이 가스 보일러를 히트펌프로 바꾸도록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주는데요. 사모펀드들이 새로 열릴 이 시장을 잡기 위해 앞다퉈 뛰어드는 겁니다.
그래서 승리자는 누구?
여기까지만 보면 모두 행복한 윈윈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고생해서 사업을 일궈온 배관공은 부자가 되고, 사모펀드는 돈이 되는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과연 소비자도 더 행복해질까요?
사실 사모펀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질 텐데요. 한쪽에선 서비스 품질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니 고객 입장에서 결과적으로 이익이라고 보고요. 반대편에선 소규모 업체가 통합되면서 경쟁이 줄어서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이 올라갈 거라고 지적하죠. 보통 사모펀드는 이런 기업을 인수 뒤 엔지니어 임금을 올려주고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데요. 혹시 그 비용이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되는 건 아닐까요? 아직은 평가가 엇갈리지만, 이런 의구심도 있는 건 사실입니다.
배관공이란 직업이 뜨는 건 AI 시대에 대학 학위가 주는 효용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죠. 한국에도 이런 블루칼라 대성공 스토리가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미국과 유럽 사모펀드 업계에 배관, 공조, 전기기술 같은 주택관리 소기업 인수 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모펀드에 기업을 팔아 백만장자가 된 배관공들이 늘어만 갑니다.
-주택관리 관련 소기업은 극도로 분산돼있기 때문에, 이를 통합하면 IT기술과 마케팅 수준을 끌어올릴 여지가 큽니다. 경기침체나 AI 시대에도 강하죠. 마침 ‘히트펌프’ 보급 정책까지 맞물리면서 사모펀드들이 이 산업에 눈독을 들입니다.
-하지만 소비자에도 좋은 일일까요. 서비스 수준은 높아지겠지만 비용 부담도 따라서 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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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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