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는 좋겠네…사모펀드 덕에 백만장자 된 배관공들[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4. 10. 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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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사업으로 큰돈을 벌고 싶은 기업가적 야망을 가지고 있나요. 그렇다면 미국·유럽 사모펀드가 주목하는 최신 인기 산업을 한번 눈여겨 보는 건 어떨까요. 바로 배관공입니다.

팬데믹 이후 지난 몇 년 사이 내로라하는 사모펀드들이 북미와 유럽에서 주택 배관·공조·전기 기술 관련 소규모 기업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사모펀드에 수백억 원을 받고 기업을 팔아 단번에 벼락부자가 된 배관공 스토리가 언론의 주목을 받죠. 도대체 배관기술자와 관련 기업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뭘까요. 오늘은 사모펀드가 배관기업을 좋아하는 이유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고장난 보일러를 고치고 막힌 싱크대를 뚫는 일은 사업적으로 볼 때 웬만한 기술 스타트업 못지 않게 비전이 있다.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1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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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의 최고 인기 투자 분야

혹시 영국인 기업가 찰리 멀린스(Charlie Mullins)를 아시나요. 팝스타를 연상케 하는 뾰족한 탈색 금발 머리와 보수적이면서 과격한 정치적 발언으로 유명한 인물인데요. 그의 별명은 이겁니다.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배관공’.

런던 1위 배관기업(엔지니어 약 250명) ‘핌리코 플러머(Pimlico Plumbers)’의 오너였던 멀린스는 2021년 미국 홈 서비스 플랫폼 네이버리(Neighborly)에 기업을 팔았죠. 매각 금액은 무려 1억4000만 파운드(2479억원). 15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배관 견습생이 됐던 흙수저 출신 기업가의 화려한 엑시트 소식이 큰 관심을 끌었는데요.

흙수저 배관공 출신 기업인인 71세 찰리 멀린스는 이제 템즈강변 펜트하우스에 사는 억만장자이자 미디어가 주목하는 인물이 됐다. 최근엔 노동당 정부의 세금 인상 정책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런던을 떠나 스페인과 두바이에서 살겠다고 선언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 속 1000만 파운드(177억원)짜리 펜트하우스도 이미 매물로 내놨다고. 찰리 멀린스 인스타그램
멀린스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겠고요.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세계 최대 규모의 홈 서비스 기업’으로 통하는 네이버리 주인이 세계적 사모펀드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이란 점입니다. 2021년 인수했죠. 즉, KKR은 네이버리를 통해 미국·영국·독일·오스트리아·포르투갈·아일랜드 등에서 운영 중인 5500개 주택 관리 서비스 프랜차이즈를 거느립니다. 지난해 매출은 41억 달러(약 5조5800억원). 막힌 변기를 뚫고, 보일러를 고치고, 에어컨을 설치하거나 집안 해충을 없애는 사업과 세계 3대 사모펀드의 조합이라. 왠지 좀 어색하기도 한데요.

KKR만이 아니죠. 모건스탠리 사모펀드 부문, 제너럴 아틀란틱, 카터튼 파트너스, TSG컨슈머파트너스, 워터랜드 등. 사모펀드들 사이에 주택관리 소기업을 인수하는 투자 붐이 일어난 지는 이미 3~4년 됐습니다. 이 분야 M&A는 지금도 엄청나게 활발하죠. KPMG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홈 서비스 부문의 M&A는 102건, 113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73건, 29억 달러)보다 크게 늘었는데요. (단, 이는 언론과 전문기관에 포착된 굵직한 거래만 취합한 수치이긴 합니다. 미국엔 이런 소기업이 수십만 곳이나 있죠.)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모펀드들이 소규모 주택 관리 기업 인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관련 M&A가 부쩍 늘었다. 올해 2분기에도 홈 서비스 관련 글로벌 M&A가 공개된 것만 62건에 달한다. KPMG 보고서
EY파르테논의 수석 파트너 신 레비 말대로 “이 사업은 사모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미국 사모펀드 알파인인베스터 설립자 그레이엄 위버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렇게 말하죠. “당신은 1000만~3000만 달러 가치가 있는 사업을 구축할 수 있고, 그걸 인수할 구매자 리스트도 준비돼 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사줄 사람이 없었는데 말이죠.”

새로운 백만장자 계층의 탄생

잘 나가는 미국과 유럽 사모펀드들이 왜 집 고치는 소기업을 사들일까, 궁금하시죠. 그 전에 KKR 같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가 어떤 기업에 투자하는지를 생각해 볼까요. 당연히 인수 뒤 그 가치를 크게 높여서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만한 곳에 투자하겠죠. ①잠재 가치보다 더 싼 값에 살 수 있으면서도 ②구조조정 또는 추가 투자를 통해 더 크고 효율적인 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 보여야 할 텐데요. 지금 동네마다 운영 중인 작은 배관(또는 공조, 전기기술, 해충구제 등등) 기업이 딱 그에 해당하는 겁니다.

일단 작은 개인 소유 기업은 수익 대비 좀 저렴한 경향이 있어요(①번). 그리고 극도로 분산돼 있다 보니 이를 통합해서 시너지를 낼 여지가 충분히 있죠(②번). 예컨대 ‘변기 막힘’이나 ‘싱크대 막힘’으로 네이버에서 한번 검색해 보세요. 정말 많은 배관 기업 광고가 뜨는데, 보통 홈페이지도 좀 엉성하고 썩 믿음이 안 가죠. 대부분 전화 예약만 가능하고요. 그런데 수십 개 기업을 사들여 하나로 통합해 운영하면 더 멋진 홈페이지, 더 효과적인 광고는 물론 온라인 예약 시스템과 세련된 앱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 기업을 모아 더 큰 플레이어로 만들어서 경쟁력을 키우는 거죠.

‘세계 최대 홈 서비스 플랫폼’이라고 불리는 미국 네이버리의 광고 이미지. 세계 3대 사모펀드인 KKR이 소유한 네이버리는 배관, 공조를 포함한 모든 주택관리 분야를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전 세계에 5500개의 프랜차이즈를 운영 중이다. ‘신뢰할 만한 전문가를 네이버리에선 찾을 수 있다’는 컨셉으로 어필한다. 네이버리 홈페이지
노스캐롤라이나의 배관 기업 모리스-젠킨은 2021년 사모펀드가 주인인 홈 서비스 플랫폼 렌치 그룹(Wrench Group)에 매각됐는데요. 이 회사 관계자는 M&A 이후 고객서비스가 “우버화”했다고 설명합니다. “고객은 우리 홈페이지에 접속해 기술자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고객이 오후 3시 7분에 오길 원한다면 우린 3시 7분에 도착할 거예요.”

바로 이런 이유로 과거 미국에선 치과나 동물병원, 유럽에선 요양원 같은 소규모로 분산된 기업 여러 곳을 사모펀드가 인수하곤 했는데요. 팬데믹 이후엔 주택 관리 쪽이 가장 각광받고 있습니다. 왜? 코로나가 닥치면서 확인된 거죠. 이 분야가 경기침체에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매우 안정적인 산업이란 결요. 사람들은 소득이 줄면 새 차를 사지 않고 외식을 줄이지만, 그래도 고장 난 보일러는 고치거든요.

금리가 높아서 사람들이 새집을 사지 않고 이사를 안 가면? 오래된 집을 고치면서 살아야 하니까 집수리 수요는 계속 커집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영향? 아무리 걸어 다니는 AI 청소 로봇이 발명된다 해도, 내 집 싱크대 배관 뚫는 일을 맡기긴 어렵지 않을까요.

여기에 더해 배관과 공조(냉방·난방·환기) 산업에 ‘탈탄소화’ 바람이 불면서 새로운 기회도 커져 갑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이나 유럽도 주택 난방엔 가스 또는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대부분 이용하는데요. 이를 전기를 이용한 히트펌프(heat pump)로 바꾸는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죠. 미국이나 유럽 각국에선 기존 주택이 가스 보일러를 히트펌프로 바꾸도록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주는데요. 사모펀드들이 새로 열릴 이 시장을 잡기 위해 앞다퉈 뛰어드는 겁니다.

덕분에 운영하던 배관기업을 사모펀드에 팔아 부자가 된 배관공 스토리가 늘어만 갑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미국의 새로운 백만장자 계층: 배관공과 공조기업’이란 기사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전했죠. 마약 범죄로 감옥생활을 한 뒤 나와서 차린 직원 18명짜리 기업을 10년 만에 사모펀드에 매각한 배관기업 설립자, 100건 넘게 쏟아져 들어온 인수 제안을 두고 고민하다 16년 만에 직원 100명짜리 회사를 사모펀드에 넘기고 휴가를 즐기는 공조회사 대표 사례를 소개하는데요. 사모펀드 휴론캐피탈 파트너 브라이언 라셀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공적인 커리어와 창업의 기회를 얻기 위해 실리콘밸리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뜬금없지만 닌텐도 게임 캐릭터 마리오의 직업도 배관공이다. 동생 루이지와 함께 차린 회사 이름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플러밍’. 유니버셜 픽처스
이와 함께 배관공이나 에어컨 설치 기사 같은 블루칼라 직업의 인기도 점점 커지는 추세입니다. 미국에선 상위 10%의 배관기술자는 연봉이 10만3140달러(약 1억4000만원)에 달한다는 정부 통계가 있는데요(중간 연봉은 6만1550달러, 약 8373만원). 대학 학위가 필요 없으면서도 안정적이고 벌이가 괜찮은 직업인 데다, 나중에 창업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단 인식 덕분에 배관공이 되려는 Z세대 지원자가 늘어납니다. 미국 배관공 평균 연령(41세)은 7년 전보다 2살 이상 낮아졌죠.

그래서 승리자는 누구?

여기까지만 보면 모두 행복한 윈윈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고생해서 사업을 일궈온 배관공은 부자가 되고, 사모펀드는 돈이 되는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과연 소비자도 더 행복해질까요?

사실 사모펀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질 텐데요. 한쪽에선 서비스 품질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니 고객 입장에서 결과적으로 이익이라고 보고요. 반대편에선 소규모 업체가 통합되면서 경쟁이 줄어서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이 올라갈 거라고 지적하죠. 보통 사모펀드는 이런 기업을 인수 뒤 엔지니어 임금을 올려주고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데요. 혹시 그 비용이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되는 건 아닐까요? 아직은 평가가 엇갈리지만, 이런 의구심도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한편 앞에서 소개한 영국 배관공 신화의 주인공 찰리 멀린스는 자신의 회사를 팔고 나서 불과 몇 주 만에 후회했다고 블룸버그에 말합니다. 애초에 회사 경영진으로 남아 있기로 했던 그의 아들과 손자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죠. 비용 절감 압박과 너무 많은 내부 회의 등, 기존과는 전혀 다른 경영 스타일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미국식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것은 영국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많은 소규모 배관기업이 사모펀드 우산 아래 들어가는 가운데, 찰리 멀린스는 ‘가족 기업의 장점이 있다’면서 지난달 ‘위픽스’라는 새로운 배관기업을 창립해 다시 업계로 돌아왔다. 대신 기존보다 시급을 올리고(현장 출동시 시간당 최저 180파운드, 즉 32만원) 더 고급화를 지향한다. 위픽스 SNS
그리고 이 멀린스 3대의 스토리엔 반전이 있습니다. 기업을 매각한 지 3년이 된 지난달, 비경쟁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배관회사 ‘위픽스(WeFix)’를 차린 거죠. 파란색 밴과 ‘WEF 7X’ 처럼 회사 특징을 살린 차량 번호판이 그들의 이전 기업 컨셉과 너무 똑같은데요. 떠났던 억만장자마저 다시 돌아올 정도로 이 시장의 미래가 여전히 밝다는 뜻 아닐까요. By.딥다이브

배관공이란 직업이 뜨는 건 AI 시대에 대학 학위가 주는 효용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죠. 한국에도 이런 블루칼라 대성공 스토리가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미국과 유럽 사모펀드 업계에 배관, 공조, 전기기술 같은 주택관리 소기업 인수 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모펀드에 기업을 팔아 백만장자가 된 배관공들이 늘어만 갑니다.

-주택관리 관련 소기업은 극도로 분산돼있기 때문에, 이를 통합하면 IT기술과 마케팅 수준을 끌어올릴 여지가 큽니다. 경기침체나 AI 시대에도 강하죠. 마침 ‘히트펌프’ 보급 정책까지 맞물리면서 사모펀드들이 이 산업에 눈독을 들입니다.

-하지만 소비자에도 좋은 일일까요. 서비스 수준은 높아지겠지만 비용 부담도 따라서 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기사는 1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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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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