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만큼 뜨거웠던 부동산 광풍, 어디에서 불어온 걸까
장현철씨(가명·38)는 울산광역시의 한 중견기업에서 13년 차 직장인으로 일한다. 최근 장씨는 집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몇 년 전 울산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살고 있지만, 집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 아파트를 매도하면 모기지 상환 후 차액이 3억원 정도 남는데, 이 돈으로 전세 낀 서울 아파트를 갭투자 하는 것이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주택정책에서 ‘자가 점유’, 1가구·1주택·실거주는 정부가 장려하고 확산해야 할 정책 방향으로 통한다. 그러나 장씨는 살고 있는 울산 아파트를 계속 보유하는 것에 대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당장 주택시장이 침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울산이라는 도시의 인구구조와 산업 경쟁력, 장기적인 집값 전망을 따져봤을 때 울산에 자신의 자산이 묶여 있는 것이 불안하다는 얘기다. 이미 주변 직장 선배들 역시 적극적으로 자산을 이동하고 있다. 장씨는 “나이가 지긋한 선배들 중 일부는 자녀가 수도권 대학에 진학할 때 아예 서울 부동산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울산에 남은 부부는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식이다.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자, 선배들이 오히려 ‘잘 생각했다’라며 격려하더라”고 말했다.
사람도, 돈도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은 개별 경제주체들의 자산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는 이런 인식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올여름 수도권 부동산 시장은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서울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확연히 늘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행정구역별 아파트매매 거래현황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올해 5월 5182건, 6월 6150건, 7월 9518건이 거래되었다. 특히 7월 통계는 1만6002건을 기록한 2020년 7월 이후 4년 만에 최고치다. 지난 수년간의 데이터와 비교해보면 이 수치가 얼마나 이례적인지 알 수 있다. 2021년 9월부터 2024년 3월까지 31개월 동안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총 7만1000여 건으로, 월평균 2293건에 불과했다.
거래량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가격도 점차 오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를 살펴보자. 2021년 6월28일을 100으로 놓고 비교한 이 지수는 올해 5월27일 93.36에서 9월9일 97.58까지 꾸준히 올랐다. 단순 지수 흐름만 놓고 보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저금리 시기(2020~2021년)를 떠올리게 한다(〈그림 1〉 참조).
부동산은 일종의 ‘시장 사이클’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거래가 늘고 매매가격도 상승한 이번 여름은 2년간의 조정을 마무리한 뒤 다시 ‘추세적 상승’으로 전환하는 국면일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겪은 ‘자산버블’이 재현되고,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에 몰아넣는 광풍이 다시 일어나는 것일까.
5~8월에 발생한 가격·거래량 증가 흐름을 보다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가장 큰 특징은 수도권, 특히 서울 내에서도 일부 지역이 자산 가격 상승의 흐름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그림 2〉를 살펴보자. 한국부동산원이 공개한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를 구 단위로 나누고, 비중이 높은 순으로 정렬했다. 부동산 광풍이 일었던 4년 전, 2020년 7월은 상대적으로 서민·중산층 거주지역의 거래 비중이 높았다. 노원구(9.56%), 강서구(8.11%), 성북구(5.72%), 도봉구(5.47%), 구로구(5.27%) 등이다. 그러나 올여름(2024년 7월)은 개별 부동산 가격이 비싼 서울 동남권 지역의 거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특히 강동구(7.51%)와 송파구(7.41%)의 거래 비중 증가가 눈에 띈다.
최근 부동산 상승을 견인하고 있는 곳은 서울에서도 강남과 인접하거나 상대적으로 주택 가격이 비싼 지역들이다. 이 때문에 떠오르는 논리가 바로 ‘부동산 양극화’다. 돈은 몰리는 곳에 몰리고, 상대적으로 비싼 주택이 가격 전고점을 회복하고 있다는 논리다. 언론에서 ‘래미안 원베일리’ 같은 특정 아파트의 언급 빈도가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 타입 주택은 8월2일 매매가 60억원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흔히 ‘국민평수’로 불리는 ‘34평대(전용면적 84㎡)’ 아파트의 거래가로는 최고치다. 고가 아파트 매매 거래가 상승세를 보일 경우 개별 거래 금액이 크기 때문에 서울 전체 지수 상승을 견인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이 ‘뜨겁다’고 전한 올여름 부동산 과열은, 실제로는 서울에서도 집값이 매우 비싼 지역이 주도한 흐름에 가깝다.
‘그들만의 리그’가 ‘전국 리그’ 될 때
더 큰 ‘양극화’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이다. KB국민은행에서 발표하는 ‘주간 KB아파트매매 가격지수’를 살펴보자. 이 지수는 2022년 1월10일 가격을 100으로 놓고 현재 시세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비교한다. 올해 9월9일 기준 부산 해운대구의 주간 매매 가격지수는 81.41로 매주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다. 대구 수성구 지수 역시 80.59로 여전히 하락 추세인데, 두 지역 모두 부동산 버블이 정점이었던 때에 비해 매매가가 20%가량 하락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부산 해운대구와 대구 수성구는 각 도시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그러나 막상 지역 내 대표 주거지역에서 ‘서울 강남’과 같은 현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수도권만, 수도권에서도 서울만, 서울에서도 특정 지역에서만 매수세가 집중되는 경향이다.
부동산 양극화는 어째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어차피 대다수 서민·중산층은 앞서 설명한 지역과 무관한 곳에서 살아간다. 어쩌면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너무 호들갑 떠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올여름 발생한 부동산 열풍은 두 가지 우려가 뒤따른다. 우선 ‘그들만의 리그’가 ‘전국적인 리그’로 확대될 우려다. 2020~2021년 버블과 같이 서울 특정 지역에서 시작된 부동산 광풍이 ‘서울 외곽지역→서울 인근 경기도 지역→경기도 외곽과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정책 당국에서 이 같은 과열을 크게 경계한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경험한 것처럼 부동산 과열로 인해 주거가 불안정해지는 환경은 정권 유지에 악영향을 끼친다.
또 다른 우려는 자산 쏠림으로 인한 양극화 심화다. 전국적인 과열도 문제지만 특정 지역의 자산 가격만 상승하는 추세가 고착화될 경우, 장기적으로 자산과 인구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앞서 소개한 장현철씨 사례처럼 개인이 ‘지방 소멸’이라는 현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여기에 따른 최적의 판단을 내리는 합리적 의사 결정이 더 많이 발생할수록, 결과적으로 해당 지역의 쇠퇴와 소멸을 가속화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부동산의 온기’가 지방으로 퍼져도 문제고, 그렇지 않아도 문제인 상황이다.
국지적인 흐름을 서둘러 차단하기 위해 정부는 수도권을 대상으로 한 공급 확대와 수요 억제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공급 측면은 8월8일 국토교통부 발표가 대표적이다. 향후 6년간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주택 42만7000호 이상을 공급하겠다는 목표인데, 이를 위해 그린벨트 일부를 해제해 택지지구로 바꾸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수요 측면에서는 금융 당국이 ‘대출 축소’를 유도하는 중이다. 7월부터 시작된 시중은행의 대출 축소는 다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제한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1주택자까지 확대되었다(무주택자는 해당 없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메시지 혼란’ 논란이 있었으나, 금융 당국은 수도권 부동산 매수세를 꺾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시기가 늦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수도권 부동산 상승을 두고 본질적으로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왜 하필 총선이 끝난 뒤, 올여름에 이렇게 단기간에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올랐을까?’ 부동산 시장 원리에 충실한 이들은 은행권에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았고, 향후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수요를 촉진했다고 설명한다. 〈그림 3〉을 살펴보자.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1월 4.56% 수준이던 주택담보대출 금리(신규 대출 건)는 2024년 들어 3%대에 접어들었고, 올해 7월까지 점진적으로 낮아져 3.5%를 기록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와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사실상 맞닿는 수준이다. 시장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021년 11월 수준(3.51%)까지 내려왔는데, 당시 기준금리는 1%에 불과했다.
〈그림 3〉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금리인상 기간에 기준금리와 시장 주담대 금리의 ‘격차’는 상당히 억눌려 있었다. 2021년 7월 금리 차는 2.31%포인트였지만, 이 격차는 2024년 7월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졌다. 주담대 금리가 가장 높았던 시기는 금리인상이 한창이던 2022년 10월(4.82%)인데, 이후 시장금리(주담대)가 점점 낮아지는 반면 기준금리는 제자리를 유지하는 모습이 계속됐다. 통상 시장금리는 기준금리와 달리, 앞으로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다. 올해 갑작스럽게 늘어난 수도권 부동산 매매량과 높아진 가격은 시장금리의 영향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향후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매수세에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가계부채 증가세 심상치 않다
시장금리 변화뿐만 아니라 개별 경제주체들의 ‘향후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과 기대감’ 역시 거래량 증가의 원인이 된다. 예를 들어 ‘앞으로 서울로 사람과 돈이 몰려들고, 자연스럽게 공급은 부족할 것이다’라는 추정과 기대감은 특정 지역에 대한 수요를 높인다. 이런 분위기에 정부의 특정 정책이 ‘서둘러 거래해야 한다’는 시그널을 주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바로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유예’다.
원래 ‘스트레스 DSR 2단계’는 7월1일에 도입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부동산 PF 사태를 진정시키고, 부채 문제에 시달리는 중소상공인들을 위해서라며 이를 9월1일로 2개월 연장한 바 있다. 스트레스 DSR은 소득 대비 대출 가능액을 제한하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에 일종의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추가로 반영해 계산한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만 규제 대상이던 ‘스트레스 DSR’은 ‘2단계’에 접어들면서 은행권 신용대출, 제2금융권 주담대까지 확대되었고, 가산되는 금리의 폭도 더 커졌다. 이는 개인이 빌릴 수 있는 대출 총액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7월로 예정된 정책을 2개월 미룬 것만으로도 ‘9월 이후에는 대출받기 어렵다’는 시그널이 되었고, 이 때문에 급하게 대출을 일으켜 부동산을 매수하려는 수요가 늘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논리대로라면, 정부의 느슨한 대응이 오히려 가계부채 문제를 더 키운 셈이다.
금융위, 금감원 등 금융 당국이 수도권 부동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고착화되는 내수 침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가계부채 증가세를 안정시켜야 한다.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뜨거운 여름을 맞는 동안, 한국 경제는 침체를 겪었다. 한국은행이 9월5일 발표한 ‘2024년 2분기 국민소득’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실질GDP는 1분기 대비 –0.2% 역성장했다. 실질GDP 1.3% 성장을 기록한 1분기에 비해, 2분기는 내수 부문에서 상당한 침체를 기록했다. 민간소비(-0.2%), 건설투자(-1.1%), 설비투자(-2.1%) 등 주요 내수 부문이 역성장했다. 정부소비가 그나마 0.7% 증가했지만 내수를 견인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면 가계부채는 증가세가 심상찮다. 9월11일 금융 당국이 발표한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올해 8월 한 달 동안에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약 9조8000억원이 증가했다. 특히 이 가운데 약 8조5000억원이 주택담보대출인데, 금융 당국은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부동산 상승세 등에 따라 주담대의 증가 폭이 확대됐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 사이에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약 28조6000억원이 증가했다. 2022년에는 가계대출이 8조8000억원 감소했고, 2023년에는 10조1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증가 폭이다.
한국은행으로서는 딜레마다. 내수 소비를 진작하기 위한 금리인하 압력은 강해지지만, 자칫 금리인하 결정이 부동산 시장을 더 자극해서 가계부채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행은 ‘금리인하를 통한 내수 회복보다 부동산 가격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이 같은 고민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자리가 8월22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였다. 이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금리를 높게 유지함으로써 내수 부진을 더 가속할 위험이 있지만,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 증가의 위험신호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금리 동결이 결정된 이날,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금통위의 결정에 “아쉽다”라는 반응을 보여 논란을 자초했다. 그만큼 정부는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 회복을 원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한국은행의 기조가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 정부 차원에서도 가계부채 증가세를 꺾지 않고서는 내수 회복을 위한 완화적 통화 환경(금리인하)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창용 총재는 8월27일에도 “왜 금리인하를 망설여야 할 만큼 높은 가계부채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빠지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해 보인다”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구조개혁을 요구했다.
인구와 자산의 서울 쏠림 현상, 가계부채로 인한 가처분소득 부족 문제, 이에 따른 소비경기 위축과 실질소득 및 자산 불평등 심화까지. 여름 내내 뜨거웠던 부동산 시장은 현재 한국 경제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를 관통하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가 다소 과열되었다고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불어나는 자산은 ‘그들’의 것이지만, 이로 인한 한국 경제 전반의 충격에는 모두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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