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AI 반도체 시장이 주목받는 가운데 전자부품을 제조하는 삼성전기가 관련 시장 진출을 확정하고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기가 노리는 분야는 AI 반도체를 패키징하는데 사용하는 유리 기판으로, 아직 양산에 성공한 사례가 없는 '무주공산'이다. 삼성전기가 시장을 선점하게 되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AI 반도체 사업을 키우는 삼성전자 역시 든든한 우군을 얻게 될 전망이다.
삼성전기가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유리 기판은 AI 반도체의 등장과 함께 차세대 반도체용 패키지 기판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품이다. 반도체 패키지 기판은 반도체 칩과 기판을 전기적으로 연결하며,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웨이퍼(반도체 원판)에 회로를 형성하는 전공정 이후, 각 칩을 완제품으로 조립(패키징)하는 후공정에서 활용되는 부품이다. 칩을 패키지 기판에 붙인 다음 메인보드와 납땜을 하는 식으로 연결한다.
한 번에 수많은 정보를 다루는 AI 반도체는 칩의 면적이 크고, 회로가 미세한 만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고집적 패키지 기판이 필요하다. 더욱 많은 데이터 처리와 고속 연산 기능을 갖춘 반도체가 많아질수록 덩달아 고성능 패키지 기판 수요도 증가한다.
주로 서버나 개인용컴퓨터(PC)에 들어가는 중앙처리장치(CPU), AI 연산용 그래픽처리장치(GPU)는 패키지 기판의 한 종류인 '플립 팁 볼 그리드 어레이(FC-BGA)'로 패키징된다. 반도체 칩을 뒤집어서 구 형태의 볼(Ball)로 연결한 구조다. 엔비디아의 주력 AI용 반도체는 GPU 칩 하나와 6개 이상의 HBM 칩을 실리콘 인터포저라는 칩과 칩을 연결하기 위한 기판에 올린 다음, 이를 다시 FC-BGA에 실장 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칩을 실리콘 인터포저를 통해 하나의 칩처럼 만들고 고성능 패키지 기판을 활용해 완성하는 기술을 '2.5D 패키징'이라고 부른다.
삼성전기가 준비하는 유리 기판은 말 그대로 패키지 기판의 소재를 플라스틱에서 유리로 바꾼 기술이다. 플라스틱을 사용할 때와 견줘 신호 전달력과 전력 소비량, 열 방출, 수명 등 여러 측면에서 우수하다.
플라스틱 패키징 기판은 2.5D 패키징과 같은 대면적화 흐름과 뜨거운 열로 인한 외형 변화가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유리로 소재를 바꾸면 전반적인 성능과 안정성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전기를 저장했다가 일정량씩 내보내는 부품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를 유리 안에 내장해 더 얇게 패키징된다는 점도 장점이다.

삼성전기는 2024년 국내 세종사업장에서 유리 기판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개발에 돌입할 계획이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이달 초 미국에서 열린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onsumer Electronics Show) 2024’에서 "(유리 기판은)고성능 컴퓨팅 서버용 CPU, AI용, 전장이나 에너지, 로봇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지원하는 기판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기의 유리 기판 시장 참전으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미 일본의 이비덴, 국내 SKC의 자회사인 앱솔릭스 등이 선점에 나선 상황이다. 인텔이 2030년까지 유리 기판을 활용한 반도체 양산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시장 확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앱솔릭스는 2024년 말 출하를 앞둔 상태로 미국에서 공격적으로 생산능력을 확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양산 시점만 놓고 보면 삼성전기보다 2년 이상 빠르다.
삼성전기는 삼성전자에 더해 AI 반도체 업체, 전장용 반도체 기업 등 다양한 고객과 협의를 거쳐 필요한 시점에 양산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인 개발과 양산 계획이 나오지 않았지만, 내년 시제품을 완성하고 이르면 2026년, 늦어도 2027년까지는 양산 체제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텔을 제외하고 아직 유리 기판 도입이 반도체 시장에서 활발히 전개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2024년을 시점으로 도입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아직 상용화와 양산에 성공한 업체가 없기 때문에 시장이 열리는 시점은 인텔이 발표한 2030년 전후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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