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춘기가 3솟는 반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6. 3. 1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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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 | 초등교사·동화작가

새 학기가 시작됐다. 나는 5년 만에 담임을 맡았다. 그동안 교과 전담 교사를 했고, 대학원과 휴직으로 3년간 학교를 비웠다. 오랜만에 담임을 맡았더니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다.

개학 첫 주에는 1년 동안 생활하는 데 필요한 시스템을 정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 일단 출석 번호와 앉을 자리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선생님인지 소개한 뒤 학급 규칙과 1인 1역을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해가며 같이 정했다. 그런 다음엔 아이들 한명 한명 자기소개를 했다. 각자 자신에 대한 오엑스(OX) 퀴즈를 두 문제씩 내고, 같이 풀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반엔 어떤 친구들이 있는지 파악할 시간을 가졌다. 여기까지 하니 첫 주가 다 갔다.

주말 동안 빠진 것이 없나 짚어보니 학급 이름을 안 지은 게 생각났다. 올해는 재미있는 학급 이름을 꼭 지어서 써보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학급 이름을 지어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처음에 “4학년 3반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또 이름을 지을 필요가 있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전날 고심해서 만든 이름을 전자칠판에 띄웠다. ‘4랑이 3솟는 반’ ‘4이 좋은 3반’ ‘4랑의 3반핑’.

그러자 아이들이 의욕적으로 이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4이가 3삼한 반’ ‘4춘기가 3솟는 반’ ‘4랑해 3반’처럼 양호한 이름들이 나오다가 갑자기 물꼬가 먹는 쪽으로 트였다. ‘4발면과 3겹살’ ‘4이다와 3겹살’ ‘4랑해 3양라면’ ‘4인분 같은 3인분’ 등등. 전부 세어보니 18개였다. 나는 먹을 것으로 반 이름을 지으면 장난처럼 느껴져서 곤란할 것 같으니 정식 이름은 먹을 것이 안 들어간 이름으로 하자고 한 뒤, 내가 내놓은 3개의 이름과 함께 투표에 부쳤다. 그러자 ‘4춘기가 3솟는 반’이 제일 많은 표를 받았다. 난 ‘4랑의 3반핑’을 원했지만,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아이디어가 아까워 먹을 것이 들어간 이름을 별명으로 짓자고 하고 투표했더니 ‘4인분 3겹살’이 제일 많은 표를 받았다. 아이들이 신나서 인사 구호도 정했다. 만날 때는 “주문할게요”, 헤어질 때는 “결제할게요”라고.

그래서 나도 한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내가 “3겹살은!”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손 하트, 볼 하트 등 내가 하는 하트 손 모양을 따라 하면서 “사랑입니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 반은 학교 끝나고 교문 앞에서 헤어질 때 “3겹살은 사랑입니다!”를 외친다. 아이들은 수줍게 손 하트, 볼 하트를 만든 뒤 다른 반이 볼세라 얼른 뛰어나간다.

초임 때 몇년간 학급 이름을 만들어 썼다. 그때는 아이들과 같이 정하지 않고 내가 혼자 멋있는 이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기수를 표시해서 몇기라고 불렀다. 경력이 쌓일수록 기수가 올라갔고, 나도 베테랑 선생님이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해에 새로 옮긴 학교의 특수학급 이름이 내가 만든 학급 이름과 같았다. 처음엔 그동안 잘 써온 이름을 못 쓰게 된 것이 속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름은 부르는 사람 것이 아니라 불리는 사람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매년 다른 아이들을 만나면서, 매년 똑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일에 대한 고민을 처음 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학급 이름을 그냥 몇학년 몇반이라고 썼다. 좀 재미가 없긴 했다. 그래서 올해는 학급 이름을 다시 만든 것이다. 이번엔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과 같이 학급 이름과 구호를 만들고, 그것을 존중하니까 아이들이 학급 이름과 구호를 너무 좋아한다. 결국은 바르게 앉아 선생님 보라는 뜻인데, “4춘기가!” 하고 부르면 “3솟는 반!” 하고 손을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다음 모두 나를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헤어지는 날까지 이렇게 유쾌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스스로를 ‘4춘기’라고 정의한 아이들 마음의 꿈틀거림을 잊지 말고, ‘3겹살’이라고 이름 붙인 아이들의 유머 감각을 배워가며 명랑하게 생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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