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따르면 정연주 인공뇌융합연구단 선임연구원(박사)이 이끄는 연구팀은 최근 고성능·고신뢰성 뉴로모픽 컴퓨팅이 가능한 인공 시냅스 반도체 소자를 개발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국내 연구진의 성과지만, 의미를 알기 위해선 약간의 배경지식이 더 필요하다.
정 박사팀의 성과를 알아보기에 앞서 ‘1+2=?’란 질문의 답을 생각해보자. 3이란 답을 내기까지 우리 뇌는 ‘1, 2, 더하기’를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통해서도 3이란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연산 과정은 우리 뇌에서 이뤄지는 단계와 완전히 다르다. 컴퓨터는 연산하는 부품(CPU)과 저장하는 장치(메모리)가 분리돼있기 때문이다. 1과 2를 저장하는 곳과 더하기를 처리하는 곳이 나뉘어 있단 뜻이다.
현재 우리가 흔히 쓰는 컴퓨터는 우리 뇌의 정보 처리 방식과 달리 각 기능을 분리해 작동한다. 이 같은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이가 헝가리 출신의 미국 수학자인 폰노이만이라, 폰노이만 컴퓨팅 구조라고 불린다.
폰노이만 컴퓨터는 디지털 반도체 기술의 △공정 미세화 △신소재 적용 △회로·알고리즘 최적화 등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고성능화·고집적화를 위한 기술적 수요가 충족되면서 컴퓨터의 기능도 높아졌다. 그러나 현재 디지털 반도체의 추가적인 발전 난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컴퓨터 기능은 이에 따라 점차 발전 속도가 느려지는 추세다.
무엇보다 폰노이만 컴퓨터는 △CPU △메모리 △프로그램 등을 각각 동작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크다. 메모리-CPU 간 정보 이동이 많아 성능이 높아질수록 필요 전력도 커지는 구조다.
반면 우리 뇌는 적은 에너지로도 연산이 가능하다. 정 박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 뇌는 햄버거만 먹어도 매우 복잡한 연산이 가능한데 컴퓨터는 그렇지 않다”며 “이를 모방하면 에너지를 적게 쓰는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개발되고 있는 분야가 뉴로모픽 컴퓨팅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만약 뇌의 정보 처리 방식을 모방한 반도체가 개발된다면 현재 폰노이만 컴퓨터에서 이뤄지는 정보 처리 과정을 대폭 줄여 전력 소모를 혁신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뉴로모픽 컴퓨팅 시스템 분야는 우리 뇌에서 정보를 처리하고 연산하는 과정을 컴퓨터에 적용, 현재 마주하고 있는데 폰노이만 컴퓨팅 관련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뇌의 구조를 컴퓨터에 적용하려면 뉴런(신경계의 기본 단위로 자극과 흥분을 전달)이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따라가야 한다. 스파이크 신호(짧은 전기적 신호)는 시냅스(한 뉴런의 말단과 다음 뉴런의 사이의 연접 부위)를 통해 다른 뉴런으로 전달된다. 우리 뇌는 수많은 뉴런과 시냅스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
이 방식을 반도체 소자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냅스의 다양한 연결 강도를 표현할 수 있는 ‘고성능 아날로그 인공 시냅스 소자’가 필요하다. 0과 1로 정보를 처리하는 디지털과 다른 방식이 필요한 셈이다. 0·1과 같이 2개의 저항 상태만을 갖지 않고, 다양한 상태가 점진적으로 변하는 것을 아날로그 동작이라 부른다.
인공 시냅스로 흔히 저항 변화 메모리 소자가 쓰인다. 저항값에 따라 연결의 정도를 가늠하는 시스템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정 박사는 “사과와 빨갛다는 서로 연결이 강한 뉴런으로 비유할 수 있는데, 이 같은 구조는 저항값을 통해 흉내 낼 수 있다”며 “저항값이 높으면 연관이 없는 정보, 저항값이 낮으면 연결성이 강한 정보로 인식하는 시스템을 구현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저항 변화 메모리 소자에는 필라멘트를 흔히 사용한다. 저항 변화를 위해 필라멘트를 성장시킴에 따라 전계(대전된 물체의 주변에 존재하며 그 전하에 작용하는 힘이 존재하는 영역)의 크기가 커지고, 이는 다시 급격한 필라멘트 성장을 만드는 피드백 현상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필라멘트 타입에서는 아날로그 방식을 구현하는 점진적인 저항 변화를 유지하고 큰 가소성을 구현하기 어렵다. 여기서 ‘가소성’은 스냅스의 역할을 얼마나 더 잘 흉내 낼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는 자극의 정도에 따라 강하거나 약하게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시냅스 가소성이라고 부른다.
정 박사팀은 필라멘트 기반 저항 변화 메모리 소자에서 나타난 한계를 극복하는 뉴로모픽 반도체 소자를 개발했다. 정 박사팀은 기존 뉴로모픽 반도체 소자의 성능을 저해하는 작은 시냅스 가소성을 해결하기 위해 ‘활성 전극 이온의 산화환원 특성’을 미세 조절했다. 활성 전극은 전극 반응에 직접 참여, 용해 또는 석출할 수 있는 전극을 말한다. 이 과정 후 다양한 전이 금속들을 시냅스 소자에 도핑(결정 및 재료의 물성을 변화시키기 위해 소량의 불순물을 첨가하는 공정)해 ‘활성 전극 이온의 환원 확률’을 조절했다. 그 결과 이온의 높은 환원 확률이 고성능 인공 시냅스 소자를 개발할 수 있는 핵심 변수 중 하나임을 발견했다.
정 박사팀은 이를 바탕으로 이온의 환원 확률이 높은 티타늄 전이 금속을 기존 인공 시냅스 소자에 도입했다. 시냅스의 아날로그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소자의 가소성이 생물학적 뇌의 시냅스(고저항과 저저항의 차이 약 5배) 대비 약 50배 향상된 고성능 뉴로모픽 반도체를 개발하는 성과를 냈다.
도핑된 티타늄 전이 금속은 높은 합금 형성 반응을 지녔다. 이에 따라 기존 인공 시냅스 소자 대비 정보 보존성이 최대 63배 이상 증가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시냅스 장기 강화(long-term potentiation)·장기 약화(long-term depression)와 같은 뇌 기능을 더욱 정밀 모사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정 박사팀은 개발한 소자를 통해 인공신경망 학습패턴도 구현했다. 구현된 장치는 에러율이 기존 인공 시냅스 소자 대비 60% 이상 감소했고, 손글씨 이미지 패턴(MNIST) 인식 정확도 또한 69% 이상 증가했다.

정 박사는 “기존 시냅스 모방 소자의 가장 큰 기술적 장벽이었던 시냅스 동작 범위와 정보 보존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연구”라며 “개발된 인공 시냅스 소자에서는 시냅스의 다양한 연결 강도를 표현하기 위한 소자의 아날로그 동작 영역이 극대화됐기 때문에 뇌 모사 기반 인공지능 컴퓨팅 성능이 한 차원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박사팀의 이번 연구는 KIST 주요사업과 한국연구재단 차세대지능형반도체기술개발사업으로 수행됐다. 해당 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으로 운영된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IF 17.694) 최신 호에 게재됐다. 논문명은 ’Cluster-type analogue memristor by engineering redox dynamics for high-performance neuromorphic computing‘이다.
정 박사는 “이번 연구는 비교적 메모리에 치중된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서 나온 지능형 반도체 기술 개발 성과이고, 우리나라의 메모리 기술력을 토대로 비메모리 분야를 강화할 수 있는 유망한 기술 분야”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개발한 인공 시냅스 소자는 단일 소자에서 얻은 결과인 만큼 해당 소자를 더욱 소형화시켜 동일한 성능의 소자를 대량 생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집적화된 반도체 어레이를 제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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