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사람들이 자주 화를 내는 이유

과시욕과 오만함은 똑똑한 엘리트 집단에서 쉽게 발견되는 고질병이다. '병'인 이유는 이같은 오만함으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예컨대 직원의 사소한 실수에도 폭언을 퍼붓고 인격적인 모욕을 하는 것에 주하지 않는다. 본인은 그런 실수를 해본적이 없기에 그런 실수를 하는 직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상대방에게 쉽게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분노가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사회적으로 성공했는데도 마음의 분노가 가시지 않는 것일까? DBR  170호에 실린 기사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자세히 살펴보자.


❏ 시민들에게 추방당한 조국의 영웅

로마의 전설적인 장군 코리올라누스(Coriolanus, BC 5세기)는 로마를 전쟁 위기에서 구한 탁월한 장군이었지만 로마 시민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불같은 성격을 억누를 수 있는 자제력이 없었고 평민들 앞에서 자신의 오만함을 숨기지 않았던 정치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소년 시절부터 용맹함으로 명성을 떨쳤다.  소년 코리올라누스는 로마의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가 몰락하던 시기에 처음으로 전쟁에 참가했다. 부상당한 전우를 보호하기 위해 전투 현장을 끝까지 지키며 싸웠던 소년 코리올라누스는 로마 시민의 목숨을 구한 영웅에게 주는 상인 떡갈나무 잎으로 된 관을 받는 명예를 얻었다.

코리올라누스는 로마의 귀족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을 뿐 아니라 권력을 시민들에게 양보하는 귀족 세력을 질책하던 초강경 보수파였다. 그는 “귀족이 할 일은 나라의 번영을 위한 경쟁에서 민중과 겨뤄 이기는 일이라고” 늘 주장했다. 이기적인 판단이 앞서고 집단 심리에 사로잡혀 있는 무지한 대중들에게 로마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코리올라누스는 로마 시민들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도 않았고 격정적이고 분쟁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을 마음껏 드러냈다. 플루타르코스는 코리올라누스의 행동을 이렇게 분석했다.

“그는 정치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즉 이성과 수양을 통해 얻어지는 위엄과 관용을 갖고 있지 못했다. 플라톤이 ‘고독의 동지’라고 불렀던 독선을 피해야만 하는데도 이를 알지 못했다. 남들과 어울릴 줄 알아야 하는데도 코리올라누스는 그러지 못했다. 직선적이고 고집스러웠던 그는 만물을 항상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마음이 용기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15절)
‘코리올라누스의 진군을 막는 어머니’ 콜드웰이 그린 동판화로 셰익스피어의 동명 극본 ‘코리올라누스’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 셰익스피어는 <영웅전>을 바탕으로 ‘코리올라누스’라는 연극 대본을 썼는데 이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다ㅣ출처=DBR

코리올라누스는 로마 시민들 앞에서 ‘오만한 행동’을 거침없이 자행했다. “그의 연설은 드러내놓고 시민에 대한 공격적인 어휘로 시작되었으며 그들에 대한 뚜렷한 비난으로 끝을 맺었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다. 결국 분통을 터트리던 로마 시민들은 부족별로 투표를 통해 영구추방이라는 처벌을 코리올라누스에게 내렸다. 투표를 마친 로마 시민들은 “그 어느 적과 싸워 이겼을 때보다 크게 환호하고 기뻐하며 흩어졌다”고 한다.

❏ 복수자가 된 코리올라누스의 최후

오만한 성격을 숨기지 않았던 코리올라누스에게 로마에서의 영구 추방은 말할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를 남겼다. 플루타르코스는 오만한 코리올라누스가 영구 추방이라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분노라는 숨겨진 본성을 드러냈다고 기록했다. 수양과 자기 통제 때문에, 혹은 제도의 엄격성과 성공을 위한 본인 스스로의 조심성 때문에 본성이 일정기간 숨겨질 수 있지만 극심한 고통이나 스트레스는 그 사람이 본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도록 한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분노가 고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통은 숨겨져 있던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도록 만든다. 따라서 분노에 찬 사람은 고열에 달아오른 사람처럼 흥분한다.” (21절)

오만한 성격의 밑바닥에는 내면의 분노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성격이 오만한 사람은 비록 냉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마음속에는 뜨거운 분노가 숨겨져 있는 법이다. 상대방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로 나타나는데 사실 그 이유는 본인의 내면에 잠재돼 있는 마음속 분노 때문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분노가 크면 클수록 감정의 폭발은 더욱 거칠게 나타난다. 분노의 열기를 주체할 수 없었던 코리올라누스는 볼스키족의 장군인 툴루스에게 제 발로 걸어 찾아갔다. 코리올라누스는 볼스키족에게 투항하며 로마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적장 툴루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탄원자로서 그대에게 온 것은 내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가 아니오. 죽음이 두려웠다면 왜 여기 왔겠소? 나는 나를 내친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왔으며, 내가 그대의 부하가 되는 순간 복수는 시작되오. 로마라는 적을 쳐부수고 싶다면 내 재앙을 이용하시오. 내 개인의 불행을 볼스키족 전체의 행운으로 바꾸시오.” (23절)
플루타르코스가 쓴 <코리올라누스>는 셰익스피어의 동명 작품에 영감을 줬다. 사진은 랄프 파인즈 감독이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를 대본으로 만든 영화의 한 장면.

그 다음 펼쳐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예상하는 그대로다. 볼스키족의 장군이 된 코리올라누스는 파죽지세로 로마를 몰아붙였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죽자고 덤비는 인간이다. 불타는 복수의 일념에 분노의 기름을 끼얹었으니 코리올라누스의 앞길을 막을 자,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코리올라누스가 이끄는 볼스키족의 로마 도심 공격이 임박했을 때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어머니 볼룸니아가 코리올라누스의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찾아 온 것이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네 아내와 자식들은 나라를 잃든가, 너를 잃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전쟁이 결정해 줄 때까지 살 마음이 없다. 네가 만약 양국의 은인이 되기보다 한 나라를 파괴하는 자가 된다면 널 낳아준 여인을 짓밟고 가야 할 것이다.” (35절)

그토록 오만한 성격을 가졌고 치를 떨며 복수의 시간을 기다리던 코리올라누스도 어머니의 눈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감정에 북받쳐” 어머니를 끌어안고 놓지 않았으며 아내와 아들을 껴안고는 “눈물을 아끼지 않은 채 감정의 홍수에 떠내려가는 자신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고 합니다(34절). 결국 이렇게 전쟁이 끝나고 볼스키족의 장군 툴루스가 코리올라누스를 살해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코리올라누스가 전쟁을 중단했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로마 시민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코리올라누스라는 명예로웠던 그의 이름은 로마 민중들의 기억 속에서 곧 잊혀졌다.

❏ 오만함은 존경에 대한 '갈망'때문?

코리올라누스는 탁월한 장군이었고 한때는 조국의 수호자였지만 이후 배신자가 됐다. 플루타르코스는 코리올라누스가 존경을 받지도 못했고, 사랑도 받지 못한 일생을 살았다고 분석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코리올라누스가 비사교적이고, 몹시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은 그 자체로도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것인데 야심과 결합하면 극도로 잔악하고 견딜 수 없게 된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나 대중의 존경을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대중이 존경을 표하지 않으면 불쾌해 하는 경향이 있다.” (비교 편)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명석한 머리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결국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된 엘리트 중에는 지나칠 정도의 과시욕과 오만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에게 큰 고통이 닥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그동안 숨겨져 있던 분노의 본성이 드러나게 된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욕설을 퍼붓거나 파괴적인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런 사람이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켰을 때, 주위의 약자들은 쩔쩔매면서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하게 되고 결국 이들의 분노는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를 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분노의 학습효과’에 길들여지면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격렬하게 내면의 분노를 표출시킨다. 습관적인 분노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결국 ‘분노의 중독증’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분노의 중독증에 걸렸던 코리올라누스를 소개하면서 그 분노의 심연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왜 코리올라누스는 분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을까? 그가 진정으로 로마 시민들의 무지함과 짧은 생각을 경멸했다면 그들의 추방령도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어차피 민중이란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괘념치 말아야 했다. 그러나 코리올라누스는 본성 깊은 곳에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강렬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지나친 오만과 거친 분노의 표현은 사실 “존경심에 대한 지나친 갈망의 감정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마음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겠으면 자신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지금 존경에 대한 지나친 갈망을 내면에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지금 다른 사람들의 더 많은 인정을 받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논어>의 학이(學而) 편 끝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인부지불온(人不知不溫)이라도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라!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70호
필자 김상근
정리 인터비즈 조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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