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지역 소멸 현장에 서 있는 2030 언론인

윤유경 기자 2023. 5. 27. 18: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오늘 28주년 창간기획] 풀뿌리 지역언론 바른지역언론연대의 2030 언론인들의 이야기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언론의 권력은 독자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권력은 독자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언론이 만든 상품인 기사에 돈을 지불하는 이들이 평범한 다수 독자가 아니라 주로 자본권력이거나 정치·행정권력이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 위기의 본질이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라면 언론의 혁신은 무너진 언론과 독자의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독자와 밀착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취재와 경영을 주민들로 매개한 건강한 지역신문은 혁신의 한 모델이다. 지역신문의 고민과 노력을 담아봤다. - 편집자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니 “예끼 이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약 40%를 차지하는 전북 진안 지역을 취재하는 정도영 기자는 진안신문 입사 한 달차인 20대 신입 기자다. 서울은 대부분 취재원이 경제생활인구인 것과 다르게 고령화로 인해 취재원과의 세대차이가 큰 지역의 청년 기자들은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다.

“고령화로 인해 지역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는 진안에는 면 단위 중에는 올해 태어난 신생아 숫자가 0인 곳도 있다. 현장에 나가면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현장취재나 인터뷰를 할 때 소통이 잘 안돼 이런 당황스러움이 있다. (웃음)” 지난 13일 대전에서 진행된 바른지역언론연대 2030모임에서 만난 정도영 기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 5월13일 대전에서 진행된 바른지역언론연대 2030 언론인 모임 현장. 사진=윤유경 기자.

청년 없는 지역에서, 청년 언론인들은 더 귀하다. 젊은층의 이탈은 지역소멸의 원인 중 하나다. 지역언론에 사람이 부족한 이유는 서울 중심주의와 맞닿아 있다. 소규모 지역언론에서 큰 전국단위 언론사로 이직하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전국단위 언론사 이직도 해당 지역의 지역 주재기자로 갈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이 느끼는 한계였다. 이직이 어려워 보이니까 새로운 젊은 인력은 더더욱 유입되지 않는다.

“우리 신문사에 대학교 인턴들도 온다. 기자를 꿈꾸는 친구들이지만 우리 신문사에는 지원하지 않는다. 취업이 안되더라도, 여기서 일한 경력으로 다른 곳을 못 갈거 같아서다.” (박윤경 평택시민신문 기자) “경력에 관련해 고민되는 부분들이 많다. '더 큰 회사로 가기 위한 발판이 되는가'라는 고민이 항상 따라다닌다. 이 일을 하면서 '취업 적령기 20대 후반을 날리는 건 아닌지' 현실적인 부분에서 고민하기도 한다.” (김민주 용인시민신문 PD)

이는 신문사 인력 부족으로도 이어진다. 코로나19가 확산될 때 지역언론 기자들은 '신문을 발행할 수 있느냐'의 갈림길에 서야 했다. “인원이 부족해 한 명이 코로나에 걸리면 재택으로 마감을 쳐낼 수밖에 없다. 두 세명이 걸려버리면, '그럼 다음주 지면 못 나오나? 그럼 우리 신문은?' 부터 걱정해야 한다.” (김혜진 평택시민신문 대리) “코로나 때 운좋게 신문을 냈다. 코로나에 걸려 하루 이틀 몸져 누워있으면 신문이 나왔을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용한 것 같다.” (정민구 은평시민신문 기자)

▲ 5월13일 대전에서 진행된 바른지역언론연대 2030 언론인 모임 현장. 사진=바른지역언론연대 제공.

'귀한' 젊은 20~30대 언론인들은 그래서 더 '지역의 청년'에 주목한다. 고령인구가 압도적인 지역이지만, 그만큼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 이야기는 반갑다. 정도영 기자의 첫 기사는 진안 지역 산꼭대기 풋살장에 매주 모여 풋살을 하는 진안 청년들의 이야기였다. “'우리 진안의 얼마 안 되는 청년들이 풋살을 하고있었구나!' 이거다. 독자들 반응이 너무 좋았다. 지금은 선배들이 '청년 이야기 계속 더 써보자!'라고 말한다.” 정도영 기자의 말이다.

경남 함양 지역을 취재하는 '주간함양'의 최학수 PD는 인구가 3만7000명인 함양에서 지난해 '사소하지만 소중하다'는 뜻을 담은 청년 모임 '이소함양'을 만들었다. 한 달에 한번 함양의 청년들이 모여 그들의 취미나 고민 등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최학수 PD의 청년 모임은 지난 19일 EBS '고향민국-슬기로운 함양 생활'에 소개되기도 했다.

▲ 함양 청년 네트워크 '이소함양' 포스터. 사진=이소함양 제공.

“지역은 다양성이 부족한 공간이다. 정주여건과 문화생활, 일자리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해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시골일수록 기성세대가 편견에 갇히기 쉬운 환경이다. ��은 청년이 지역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것을 실패한 삶처럼 바라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젊은 사람이라면 서울로 올라가서 번듯하게 직장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최학수 PD의 말이다.

이처럼 지역에서 청년들의 삶은 끊임없이 스스로 증명해야만 한다. '고향민국' 방송에서 한 청년은 “적응해야하는 것도, 힘든 것도 많은데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없어 힘들었다. 서울로 돌아가고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모임에) 나와서 얘기해보니까 다 같은 슬픔을 가지고 있었다. 다 같이 너무 외로웠고, 얘기할 사람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지역신문은 이러한 지역의 청년들을 모이게 하는 허브역할을 자처했다. 청년 인력 유출을 방지하고,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지역신문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 EBS '고향민국, 슬기로운 함양 생활' 방송화면 갈무리. 방송에는 '이소함양'의 이야기가 담겼다.

최학수 PD는 “지역 언론사 차원에서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민구 기자도 “지역 소멸을 지역언론을 통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세대가 직면해 있는 문제다. 먼 미래가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재능으로 지역 소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던져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은평시민신문은 '서울구경'이란 뉴스레터에서 은평뿐 아니라 서울 지역 청년의 다양한 삶에 대해서도 다룬다.

▲ 은평시민신문의 '서울구경' 뉴스레터.

20~30대가 나 하나뿐인 직장에서 일하는 건 어떤 경험일까. 이날 '바지연 2030 모임'도 지역 청년들의 '외로움' 때문에 만들어졌다. 박윤경 기자는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희귀한데, 지역신문 기자는 더 희귀하고, 20~30대 기자는 더 희귀한 거다.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 꼭 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모임만큼은 자발적으로 지원해서 왔다는 기자, PD들이 대부분이었다. 모임 기획에 함께한 정민구 기자는 “신문사 총 인원이 3명이고, 내 나이 또래가 부족하다 보니 나눌 수 있는 얘기가 적었다. 지역신문에 종사하는 청년 노동자의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문사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하는 지역 청년 언론인들

지역의 청년 언론인들에게 가장 불안한 지점은 '지속가능성'이다. 대표, 편집장, 선배들이 약 10년 후 은퇴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선배들이 그만두고 나면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내가 지금 지역언론의 형태를 이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올해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선지원대상사에 선정되지 못한 은평시민신문의 경우는 더욱 불안하다. “서울이라는 도시 특성도 있어 구독자를 모으기도 어렵다. '서울에서 지역언론을 하는 게 맞을까'라는 고민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언론을 고민해야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매일 한다. 나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고, 이 직장이 유지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젊은 청년들이 들어와서 같이 일을 하고 싶다. 10년 뒤에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 정민구 기자의 말이다.

“지역신문이 겪는 위기는 지역소멸과 연관돼 있다. 인구가 줄면 당연히 구독자 수도 줄어든다. 구독자수 하락→경영악화→신규인원 채용 감소의 사이클이다. 젊은 인력을 채용하고 싶지만 여건이 힘들다. 언제까지나 대표가 발행인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가 과연 바로 발행인을 하면서 기자로서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다.” 김혜진 평택시민신문 대리의 말이다.

▲ 평택시민신문 4월26일 1면 갈무리.

지역언론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게 하는 다른 요인은 지역언론에 대한 편견이다. 전국단위 언론에선 비수도권에 주재기자 몇 명 할당하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기사도 별로 없고 인구도 적으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각 지역사회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다. 많은 이야기가 있고, 면적이 넓어 소수 기자의 업무강도는 훨씬 높아진다. '지역'이라는 개념자체도 희박한 서울에 있는 지역언론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서울에 있는 '메이저 언론'을 꿈꾸는 이는 많지만 서울 '지역언론'은 누구도 상상하지 않는다. 지역언론 구성원들이 과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충남 당진지역을 취재하는 당진시대의 유수아 기자는 “한 기자당 두 가지 이상의 분야·지면을 담당한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상의해서 다른 기자 분야도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지역단체로부터 기자교육 등을 제공하기도 하고, 다른 사업들을 진행하는 등 기자 업무 외의 기타적인 업무들이 있다보니 업무 분배와 인력 부족에 대한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바지연 소속사는 주로 신문사이기 때문에 영상콘텐츠를 담당하는 PD들의 고민은 더 깊다. 김민주 용인시민신문 PD는 “인력은 언제나 부족하다. PD 1인의 미디어와 다름없다. 1주일에 영상을 3개 이상 올리고 싶지만 영상 길이도 제각각이고 편집하는 인력은 없다.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할 때마다 새로 만들어야 하는 자막 디자인, 인트로 그리고 편집 스타일이 다 달라야 하는데 PD 혼자 모든 걸 감당하기에는 버겁다고 말했다.

▲ 지난 12일 용인시민신문 유튜브채널 '용인시민방송YSB' 영상 갈무리.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후보지 선정 문제를 다뤘다.

10~15년 정도 경력의 소위 '허리라인' 선배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이직 등 유출 인력이 많아 '허리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신입 기자들이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 기자들 사이에서 '나이 양극화'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20~30대 기자들 바로 위가 50~60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입사를 했는데, 편하게 배울 선배가 없다. 완전 고참 아니면 20대다. 기자들은 더 많은 걸 배우고 좋은 기사를 쓰고싶은데, 하는 방법을 모른다. 보도자료 정리하다 끝날 순 없고, 기자 입장에서는 내가 심층 기획취재를 하고 싶은데 기획취재는 대표님이나 발행인 부장님들급 이야기 영역같기도 하다.” 김혜진 대리의 말이다.

▲ 영주시민신문 4월20일 1면 갈무리.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보다, 회사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20~30대 기자들을 바라보는 선배의 심정도 안타깝다. 30대인 이현경 옥천신문 편집국장은 “20대 기자들은 내가 당장 다음주에 무슨 좋은 기사를 써볼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고, 던진 의제가 지역에서 해결점으로 나타나 변화를 보며 성취를 쌓아야할 때인데, 너무 신문사의 어려움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후배들이 저널리스트로서의 고민보다 신문사 먹고사는 것 때문에 걱정을 더 많이 하고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 옥천신문 5월19일 1면 갈무리.

모소영 바지연 사무국장도 “20~30대 지역 언론인들이 이곳의 경험이 다른 곳에서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과, 내가 10년 후에도 제대로 된 근로조건 내에서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한 생각들 때문에 신문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총무는 떠나가는 기자들을 보며 '다닐 수 있는 지역언론'을 만들기로 했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왜 지역언론에서 일할까?

총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혜진 평택시민신문 대리는 떠나가는 기자들을 지켜보며 '같이 일할 기자를 내가 붙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지역에 필요한 지역언론을, 다닐 수 있는 환경의 회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나도 처음엔 시키는 일만 했다. 근데 내가 입사한 지 1년 반만에 다섯 명의 기자가 떠났다. 정 붙였는데 계속 사람이 들어왔다 나가니까, 내가 너무 다니고 싶은 회사인데 사람들이 다닐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리는 게 힘들었다. 나는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실무를 보는데, 나도 지치더라. 내가 지치지 않고 이 회사를 같이 다니려면, 내가 기자를 붙잡아야겠다,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을 붙잡아 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혜진 대리의 말이다.

▲ 5월13일 대전에서 진행된 바른지역언론연대 2030 언론인 모임 현장. 사진=바른지역언론연대 제공.

김 대리는 “지역신문 정말 필요하지않나. 나도 근무하기 전까진 지역신문이 이렇게까지 중요한지 몰랐다. 근데 우리가 이 기사를 싣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도 지역 이야기를 실어주지 않는다. 기자들이 떠나가는 걸 그냥 지켜만 보지 말고, 이제 오지랖도 부리고 싶었다. 내 직군이 아닌 사람한테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최학수 PD는 뉴미디어 담당 PD의 역할 중 하나가 '기자들이 쓴 좋은 기사에 더 힘을 보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기사들이 묻히는 게 너무 안타깝다. 주간함양은 지역사회에 공헌하려 매번 노력하고, 좋은 기사를 쓰려고 노력하는데도 지역민들 대부분은 잘 모른다. 우리의 노력이 지역사회에 안 닿을 때 가장 힘들다. 뉴미디어 담당자로서 어떻게 닿을 수 있게할까 고민한다”고 말했다. 주간함양은 올해부터는 비용을 들여 기사 링크를 카카오톡으로 보내주는 카카오 채널도 시도해보고 있다.

▲ 지난해 12월16일 주간함양 유튜브채널 '함양방송' 영상 갈무리.함양으로 귀촌을 한 청년 김민선씨를 인터뷰했다.

“먹어본 사람만 안다고, 지역언론을 해본 사람이 지역언론의 중요성을 아는 것 같다. (웃음) 지역언론을 경험해본 사람만큼은 '지역언론이 없어지면 안되는데, 우리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인데, 계속 하고싶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앞으로도 20~30대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하고 싶다.” 정민구 기자의 말이다.

[미디어오늘 바로가기][미디어오늘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