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바람이 머무는 편안한 주택정원

조회 1,3782024. 11. 21.
보타니컬 스튜디오 삼의 정원이야기 (1)

주택 정원은 일반적으로 기존 정원을 재조성하는 경우와 새로 조성하는 경우로 나뉘는데 이번 프로젝트는 후자의 경우였다. 신축은 빈 도화지에 새로운 형태를 그리다 보니 창의적이고 다양한 디자인을 제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건물의 향과 형태에 따른 일조량, 배수구 위치, 전기 인입, 수도시설 유무, 정원이 보이는 각도, 외부 시선 차폐, 타 공정과의 협의 등 현장 조사를 통해 땅이 가진 특성과 작업 여건을 꼼꼼하게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행 남두진 기자│글 자료 보타니컬 스튜디오 삼

이번에 소개할 파주시 문발동 단독주택은 경주의 ‘소여정’이라는 스테이 프로젝트가 소개된 잡지를 보고 클라이언트가 직접 연락을 줘 진행한 사업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작업한 정원 분위기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건축주는 소여정과 같이 차분하고 편안한 정원을 바랐다. 자연스럽게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설계에서 시공까지 원활하게 소통하며 진행할 수 있었다. 건물은 2층 규모의 2개 동으로 이뤄졌으며, 건물 사이에 긴 형태로 정원을 조성할 땅이 있었다. 2층에는 각각 테라스도 존재했다.

주방에서 보이는 중정 정원. 크고 작은 나무들이 중첩돼 보이도록 의도했다.
이른 아침 자연 채광이 부드럽게 스민 중정 정원

두 건물 사이에 길게 자리한 1층 정원
1층 정원은 건물로 둘러싸인 소위 ‘중정’ 형태를 띠며 실내의 거의 모든 창을 통해 바라보이는 곳이었다. 주택 생활에서 특히 중요한, 주방에서 정원이 잘 들여다보였으므로 설계 초기부터 창문 위치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먼저, 긴 형태였기에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까지 거닐 수 있는 동선을 확보했다. 이어 그 주변에 선이 자연스러운 크고 작은 나무, 무심하게 놓인 돌, 돌 틈에서 자라난 반음지성 초화 등을 배치했고 이끼와 자갈로 흙을 덮어 설계를 마무리했다.
정원 조성의 기본은 식물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모든 프로젝트에서 흙과 배수에 가장 신경을 쓰는데, 이번 주택 역시 첫 작업은 물 빠짐이 좋은 굵은 마사와 모래로 정원 내부를 채우는 것이었다. 우수 집수정으로 물이 고여 잘 빠질 수 있도록 땅의 높낮이를 다듬어 가며 진행했다. 이때 최소한의 토양 보습제와 부엽토도 섞어 가며 식재 기반을 만들었다. 과영양화된 흙보다는 다소 척박하지만 물 빠짐이 좋은 흙에서 식물이 더 건강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식물들이 사는 집을 마무리하고 나서 화강석 디딤석과 자연석을 배치했다. 이후 큰 나무부터 작은 나무, 풀(꽃), 이끼 순서대로 식재했다. 작업을 하면서 ‘공간감’과 ‘계절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특히 이번 주택의 경우에는 실내 창문에서 보이는 뷰가 중요했기에 각각의 나무와 풀(꽃)을 중첩해 깊이감을 주거나 단독으로 식재가 돋보이게 하는 등 많은 고민이 따랐다.
큰 나무(교목)로는 이른 봄 노랑색 꽃이 피는 산수유와 여름에 흰색 꽃이 피는 함박꽃나무, 가을에 붉은 단풍이 드는 당단풍나무를 선택했다. 작은 나무(관목)로는 백당나무, 콤팩트화살나무, 자엽중산국수, 산수국 등을 선택했다. 나무는 정원이 만들어질 공간의 생육 환경에 맞는 수종을 우선으로 고르되 면적에 맞는 크기와 형태, 각 나무의 잎이 가진 특성, 꽃이 피는 시기, 열매 여부 등도 함께 고려했다. 나무 아래와 돌 틈에는 풍지초, 에베레스트 사초, 휴케라, 호스타, 은방울수선화 등 반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수종을 선택했다.
정원 한쪽 끝에는 앉아서 정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툇마루 형태의 야외 가구를 제작했다. 그곳에 앉아 있을 때만큼은 정원을 바라보며 편안함을 느끼길 바랐다.

2층 테라스 정원에서는 바람이 불면 풀과 꽃이 살랑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쪽에 반려묘를 위해 준비한 통목 캣타워. 추후 철제 화롯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처분할 수도 있다.

성격 다른 두 테라스에 조성한 2층 정원
2층에는 작은 거실(작업 공간) 앞 큰 테라스와 복도와 방 2개로 둘러싸인 작은 테라스에 총 2개의 정원을 조성했다. 큰 테라스는 반려묘와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부터 특별히 신경 썼으며 작은 테라스는 클라이언트 요청에 따라 부부가 캠핑 의자를 놓고 불멍할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성했다.
큰 테라스에는 캣닢, 털수염풀, 수크령, 딜, 오레가노 등 고양이가 좋아하는 질감과 향을 가진 식물로 채웠고 통목을 사용해 캣타워도 설치했다. 캣타워는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추후 작은 테라스에 설치한 철제 화롯대에서 불멍을 통해 자연스럽게 처분하는 방향으로 제안했다.
지붕이 없는 곳에 식재 기반을 조성할 때에는 바닥면 위에 배수판을 설치한 후 흙의 유실을 막는 부직포(천)를 덮어 경량토로 채운다. 이때 적절한 양의 부염토를 섞어 흙에 영양분을 보충하며, 행여 물 주는 시기를 놓치더라도 흙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수분을 머금을 수 있도록 토양 보습제도 함께 넣는다. 이곳 주택의 테라스 역시 지붕이 없어 이와 같은 작업을 진행했다.
길이 되는 부분은 평평하게, 식재 공간은 살짝 복토해 작은 언덕을 만들었다. 토심이 아주 깊지는 않았기에 큰 나무보다는 콤팩트화살나무, 좀작살나무, 설유화 등 작은 나무와 다양한 종류의 그라스(억새, 새풀 등) 그리고 사계절 다양한 색과 질감으로 피고 지는 초화 등을 선택했다. 식물들이 앞으로 자랄 것을 고려해 적절한 간격을 두고 식재했다.
작은 테라스는 물 빠짐을 고려해 쇄석으로 바닥을 마감한 후 주변에 철제 화단을 만들어 그 내부에 식물을 심었다. 중앙에는 날씨 좋은 날 색다른 정원을 즐길 수 있도록 철제 화롯대를 배치했다.

작은 테라스는 철제 화롯대를 마련해 불멍을 즐길 수 있는 아담한 휴게 공간으로 기능한다.

모든 작업을 마친 후 완성된 정원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던 순간 중정 가운데로 빛 한줄기가 부드럽게 스몄다. 2층 큰 테라스에서는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작은 풀들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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