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회사 생활을 마치고, 오랫동안 방치된 ‘폐가’를 산 이유

사색과 영감, 회복의 공간이 된 '맨끝집'

안녕하세요, 저는 오랜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최근 목공방을 창업한 목작가이자 목수입니다. 평일에는 서울에서 목공방을 운영하면서 공간을 디자인하고 가구를 만들어요. 그러다 주말이 되면 멀리 충남의 시골 마을로 떠나 자연 속에서 충분히 휴식하고 영감을 얻는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생활을 오도이촌(5일은 도시, 2일은 시골) 생활이라고 부른대요. 저는 이제 막 3개월 차가 된 초보 오도이촌러입니다. 집을 고치고 또 돌보며 공간에 필요한 가구를 제작하는 과정을 인스타그램(@the.last.house)에 업데이트하고 있어요.

도면 및 시공 계획

시골집을 고치게 된 계기

서울에 살면서 왜 그렇게 먼 곳에 폐가를 찾아 고쳤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이맘때 저는 20여 년 간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독립해서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결정했는데요. 휴식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어요. 평화롭고 고요하며, 오롯이 독립된 공간을 찾다 보니 멀리 충남 금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2022년 여름, 저는 맨끝집을 만났습니다. 작은 마을 길이 끝나는 곳에 위치해서 '맨끝집'이라 이름 붙였어요. 정리와 보수가 필요해 보였지만, 제 눈에는 너무 멋졌어요. 빨간 함석지붕을 얹은 벽돌집과 집을 품고 있는 듯이 푸르고 너른 산세가 마치 동화 같았어요.

처음부터 맨끝집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지만, 그래도 계약 전에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꼼꼼히 확인했어요. 다른 집들도 더 보러 다녔고요. 여러 곳을 비교하다 보니 명확한 기준점이 필요할 것 같아서, 우선순위 조건을 3가지로 추렸습니다.

✅ 시골집 매매 시 고려한 조건
1. 집에 구조적인 결함이 없고 수도, 전기와 같은 기본 설비가 되어 있는가(비용, 시간 절감)
2. 마을 안에 속해 있으면서(치안) 다른 집과 적당한 거리가 있는가 (프라이버시)
3. 집 안팎에서 충분히 자연을 느낄 수 있는가 (시골집을 매매하는 근본적인 이유)

리모델링 계획

맨끝집은 위 조건에 부합하는 집이었어요. 그래서 서둘러 계약을 진행하고,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처럼 기획안을 작성하고 도면을 그렸습니다. (퇴사했지만 뼛속에 새겨진 회사원 바이브..) 기획안은 맨끝집을 고치는 컨셉, 지향점, 예산 등을 포함하여 정리했습니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아요.

1. 컨셉 : 수도승의 집. 건강한 손노동의 공간.

2. 지향점 : 낡고 오래된 것들도 최대한 보수하여 사용. 자연친화적 소재 사용.

3. 예산 : (시공 및 가구, 집기 구입, 인건비 등을 모두 포함) 최대 7천만 원 이내.

주택 외관 Before

마당에는 오랫동안 사람이 돌보지 않아 무성한 풀이 많았어요. 그런데 또 풀을 제거하고 보니 폐기물도 가득하더라고요.

또 본채 지붕 일부와 별채 지붕 전체가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소재로 되어 있었어요. (석면 슬레이트 지붕 철거는 지자체의 비용 지원을 받았습니다.) 위 사진은 석면 슬레이트를 철거하고 칼라강판으로 보강한 사진이에요.

외부 공사를 하면서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전체 단열과 지붕공사입니다. 특히 시간의 흔적이 간직한, 빨간 함석지붕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이제는 박공을 멋스럽게 잘라서 작업해 주시는 분들이 더 이상 현업에 남아있지 않으셔서, 이 지붕은 철거하는 순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녹 제거, 부분 정리와 보강, 코팅 및 도색과 같은 작업을 거쳐야 했지만 완성된 모습을 보니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택 외관 After

공사를 마친 후, 마당에는 잔디를 깔고 가운데에 감나무를 심었습니다. 본채 통창 밖으로는 사계절 내내 색을 바꿀 뿐 잎은 지지 않는 남천나무를 심었어요. 언젠가는 남천나무가 무성해지고, 마당 가운데 감나무에 감이 맺히는 날이 오겠지요.

복도 Before

복도의 리모델링 전 모습이에요. 주방을 포함한 세 개의 공간이 복도를 통해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각 방 앞에는 미닫이문이 있고, 살림살이도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일단 층고 확보와 단열을 위해 복도의 천장을 모두 철거했습니다.

철거하고 보니 아름다운 서까래와 대들보가 보여서 이 구조들을 그대로 노출시켜 작업했어요. 외부 쪽 미닫이문은 철거 후 보안과 단열을 위해 픽스창으로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공사를 하면서 철거, 목공 작업, 샷시 공사, 배관 작업 등 그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지만, 바닥 미장 당일엔 특히 몸이 고됐어요. 미장 시공인이 당일에 펑크(연락두절...)를 냈던 날은, 몸도 몸이지만 멘탈이 흔들리더라고요. 결국 미장도 직접 하게 되었습니다.

복도 After

완성된 복도의 모습입니다. 마당을 향해 나 있는 통창 덕분에 복도 전체에 채광이 좋아요. 마당을 내다볼 수도,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산의 풍경도 감상할 수 있어요. 실내에서도 자연과 언제나 함께하는 기분이 들도록 리모델링했습니다. 복도 쪽 방문들은 철거하지 않고 기존 문을 그대로 활용했습니다.

복도에 앉아 오래된 전축으로 LP를 듣거나 테이프를 듣는데요. 핸드폰으로 듣는 음악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전축은 이 집에 버려져 있던 것이에요. 발견 당시에는 고장 나 있어서, 서울의 LP 수리 장인을 찾아가 고쳤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주는 편안함이 있고 그것은 새롭고 멋진 물건으로 흉내 낼 수 없다고 믿어요.

주방 겸 거실 Before

공사 전 주방의 모습입니다. 천장이 낮아 답답해 보이더라고요. 공간감 개선을 위해 천장을 철거해 노출하기로 했어요. 또 언제나 자연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나무 합판문은 철거하고 터닝 도어를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복도에서 주방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은 아예 없애 개방감을 주면 좋을 것 같았고요.

주방의 인상을 결정하는 싱크대도 고민이 많았던 부분입니다. 제가 원하는 주방의 느낌을, 기존에 나와 있는 싱크대로는 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고민 끝에 싱크대를 직접 디자인하고, 합이 잘 맞는 목수님과 함께 제작했습니다.

안쪽으로는 세탁실로 사용했던 다용도실도 있었어요. 주방은 간결하게 만들되, 이 공간을 팬트리로 만들어 수납을 하면 좋겠더라고요.

주방 겸 거실 After

공사 후 주방의 모습입니다. 리모델링을 할 때 가장 많이 고민하고, 공을 들인 공간이 주방 겸 거실이에요. 거실이 따로 없는 시골집 구조 상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곳이니까요. 자연의 색깔과 소재를 최대한 활용하여, 자연스럽고 간결한 공간이 되도록 했어요.

벽면과 바닥 마감은 도배나 장판, 몰딩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주방뿐 아니라 집 전체 모두요. 대신 천연 석회를 주재료로 하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는 유럽 미장이라는 방식으로 내부 마감을 했습니다. 비용 부담이 있고 시공에도 손이 많이 갔지만, 건강하고 자연친화적인 자재라서 고민 끝에 결정했어요.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싱크대가 주방의 포인트입니다. 싱크대 역시 마감은 유럽 미장으로 진행했고, 그 위에 방수/코팅 작업을 추가로 진행했어요.

싱크대 맞은편으로 식사와 작업을 할 수 있는 테이블을 마련해 두었어요. 테이블은 원목과 유럽 미장을 활용해 직접 만들었고, 의자 역시 부스석으로 디자인해 시공했습니다. 저는 벽 쪽 부스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 작업을 하는데요. 중간중간 마당을 내다보면 마음이 평안해져요.

계획했던 대로 출입문은 없애고 바로 복도와 통하는 공간이 되도록 시공했어요.

저는 이곳에서 요리해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업무도 하고, 책이나 영화를 보며 여가 시간을 보내요. 사실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창밖의 자연을 바라보는 일이고요.

팬트리

리모델링 전에는 세탁기가 있던 공간을 팬트리로 개조했어요. 주방 겸 거실 간결하고 깔끔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납공간이 필요하니까요.

냉장고, 큐커, 그릇과 소모품 수납, 재활용 공간 등이 모두 이 공간으로 들어와서 주방과 거실은 간결한 디자인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간에 어울리는 수납장 역시 모두 직접 제작했습니다.

침실 Before

역시 천장이 낮은 정사각 구조의 방이라 답답한 느낌이 들었어요. 천장은 철거하고 바닥과 벽면은 유럽 미장으로 마감하여 단정하고 아늑한 침실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침실 After

공사 후 침실입니다. 침대에 누워서도 창밖 자연을 바라볼 수 있도록 큰 창을 냈어요. 아침에 잠에서 깰 때, 잠자리에 들 때, 언제나 창밖 풍경을 바라볼 수 있어 좋아요. 보안, 단열, 환기를 위해 2단으로 창을 구분하고, 하단은 고정창, 상단은 열고 닫는 게 가능한 프로젝트 창으로 만들었어요.

침실은 잠과 휴식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래서 가구와 집기를 최소화했어요.

창쪽으론 스툴 겸 협탁을 두고 벽 조명 하나만 설치했습니다.

복도 문 쪽으론 벽걸이 행거와 수납장만 두었고요.

집기류는 최소화했지만, 집에 어울리는 소소한 포인트들을 두었어요. 사진 속 스위치처럼요.

서재 Before

천장이 낮은 정사각 형태의 방이 하나 더 있었어요. 어떤 방으로 리모델링하면 좋을까 하다가 서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서재 After

저는 이 방을 '묵상의 방'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오롯이 사색과 묵상을 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만든 독서 의자와 책 선반만 배치했어요

구옥 철거 시 수거한 고재로 만든 책 선반입니다. 공간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저는 이 방 창가에 앉아, 멀리의 숲과 나무들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요.

이 자리에 앉아 아침 일기를 쓰기도 해요. 창가 선반을 조금 길게 시공해서 책상처럼 활용할 수 있거든요.

직접 만든 독서 의자를 중앙에 두었어요. 체리목에 먹으로 마감한 독서 의자입니다. 저녁이 되면 저는 이 독서 의자에 앉아 책을 읽어요.

욕실 Before

리모델링 전에는 실내에 욕실이 없었고, 외부에 푸세식 화장실만 있어요. 그래서 욕실은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주방 옆쪽으로 창고처럼 활용하던 공간을 욕실로 만들기로 했어요.

욕실 신설의 경우, 수도와 배관 작업도 함께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어요. '배수설비 설치 신고서'를 작성하고, 설비와 공사 내용을 군청에 신고하는 일도 해야 했고요.

샤워기와 변기가 놓인 공간은 습식으로, 세면대와 파우더룸은 건식으로 구분해서 만들었어요.

욕실 After

목재 슬라이딩 도어를 열고 들어가면 욕실이 나옵니다. 역시 간결함을 잃지 않으면서 편리한 공간이 되도록 신경을 썼어요. 소품과 화장실 액세서리들도 하나하나 마음 써서 골랐답니다.

전체적인 마감은 다른 공간과 동일하게 유럽 미장으로 진행했고 곳곳에 매트블랙으로 포인트를 줬어요. 문고리, 수전, 거울, 샤워기 등등 모두 심플한 매트블랙 색상을 사용해서요.

벽돌 파티션 한 쪽에는 변기를 설치했고요.

한 쪽에는 샤워기를 설치했습니다. 매립형으로 간결함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욕실이 큰 편이라 혹시 추울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단열에 여러 번 신경 쓰기는 했지만, 단독주택 화장실은 춥다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복합 환풍기도 추가로 설치했어요. 환풍, 온풍, 제습, 바디드라이 기능이 있는 제품입니다.

마치며

집을 고치는 내내 느꼈습니다. 오래된 공간을 고쳐 산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요.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 다시 맨끝집을 만나던 날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망설임 없이 이 집을 선택할 것 같아요.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존재들은 언제나 따뜻하니까요. 새롭고 반짝이는 것들이 주지 못하는 편안함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 집에서 잘 자고, 잘 먹고, 잘 쉽니다. 또 한 주를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어요. 길고 긴 저의 집들이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들이를 읽으시는 분들도 각자의 공간에서 크고 작은 평화를 느끼시기를요!

제 주말 시골살이와 평일 도시살이가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에도 놀러와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