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한 장면. 문동은(송혜교)이 모교에 찾아가 상을 받는 박연진(임지연)에게 한 마디를 남긴다. “멋지다 연진아!” 극중에서 분명 칭찬은 아니었지만, 문장만 놓고 본다면 뜻은 달라진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매 작품마다 정말 멋진 연기를 펼친 임지연에게 충분히 어울릴만한 대사일지도 모르겠다.
임지연은 <인간중독>에서 파격 연기를 선보이며 장편 영화에 데뷔했다. 이후 멜로부터 스릴러까지 여러 장르에서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준비된 배우다. 특히 <더 글로리>의 박연진처럼 캐릭터의 이름이 뇌리에 오래 남을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매 작품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낸 임지연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살펴본다.
인간중독 (2014) – 가흔 역

<인간중독>은 1969년 베트남전 종전 무렵을 배경으로,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베트남전에 참전해 큰 공을 세운 후 장군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는 교육대장 진평(송승헌). 어느 날 충성스러운 부하 우진(온주완)과 그의 아내 가흔(임지연)이 이사를 온다. 진평과 가흔은 첫 만남부터 걷잡을 수 없이 사랑에 빠지는데, 긴장감이 일촉즉발인 상황에서도 이를 끊을 수 없는 두 사람의 감정선이 인상적이다. 신인 배우였던 임지연은 이 영화로 부일영화상 신인여자연기자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 대종상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배우로 떠올랐다.
상류사회 (2015) - 지이 역

<상류사회>는 <인간중독>으로 눈도장을 찍은 임지연의 드라마 데뷔작이다. 재벌 딸과 그녀를 통해 권력을 잡으려는 두 남자의 로맨스를 그린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청년들이 취업과 사랑, 그리고 미래가 불투명한 2015년 한국의 사회상을 반영했다. 임지연이 맡은 이지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백화점 푸드마켓에서 일하며, 뜻하지 않게 재벌가 출신인 유창수(박형식)를 만난다. 언뜻 뻔한 로맨스처럼 보이지만, 드라마는 클리셰를 조금씩 비틀며, 두 인물이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를 향한 희망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 글로리 (2022) – 연진 역

<인간중독>이 임지연의 필모 첫 시작을 알린 작품이라면, <더 글로리>는 그녀의 연기 인생에 큰 전환점을 찍은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건 이야기를 다룬 시리즈로, 임지연은 작품의 메인 빌런 박연진 역을 맡았다. 고교 시절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문동은(송혜교)을 철저하게 괴롭히면서도 단 1%의 죄책감도 갖지 않은 악역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그의 필모 사상 첫 악역 연기라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지만, 캐릭터의 악마성을 완벽하게 극에 녹아내며 시청자의 분노를 유발했다. 작품에서 연진은 엄벌을 받았지만, 대단한 열연을 펼친 임지연은 제목답게 ‘영광’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연기 인생 최초 백상예술대상(TV부문 여자 조연상)을 수상했고, 청룡시리즈, 아시아콘텐츠어워즈&글로벌OTT어워즈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자신의 인생연기를 인정받았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 2 (2022) – 서울 역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통일을 앞둔 한반도를 배경으로 천재적 전략가와 각기 다른 개성 및 능력을 지닌 강도들이 조폐국을 점거하고 초유의 인질극을 벌이는 범죄 드라마다.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동명의 스페인 시리즈를 리메이크했는데, 분단국가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접목한 것이 특징이다. 임지연은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 서울 역을 맡았다. 서울은 베를린(박해수)가 이끄는 용병 조직의 중요 인물로, 조폐국 밖에서 위기에 빠진 강도단을 돕는다. 서울은 파트2에 등장하며, 임지연은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장미맨션 (2022) - 지나 역

<장미맨션>은 사라진 언니를 찾기 위해 1년 만에 집에 돌아온 지나(임지연)가 형사(윤균상)와 함께 수상한 이웃들을 추적하면서 예상치 못한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드라마다. 호텔의 계약직 직원인 지나는 언뜻 평탄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의뭉스러운 캐릭터들 사이에서 긴장감 있게 흘러가던 이야기는 후반부에 충격적인 반전을 드러낸다. 임지연은 탐문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과 미묘한 러브라인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극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마당이 있는 집 (2023) - 상은 역

<마당이 있는 집>은 뒷마당에서 나는 수상한 냄새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삶을 살던 두 여자가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텍스트로는 독자들이 미처 상상하기 어려웠던 후각의 불쾌함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임지연은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당하는 추상은 역을 맡았다. 상은은 남편을 갑작스럽게 잃고 장례식장에서 자신과 정반대의 삶을 사는 주란(김태희)을 만난다. 임지연은 이 작품에서 헝클어진 머리와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가난과 폭력에 시달려 무기력함과 공허함을 느끼며 피폐해진 인물을 실감 나게 그려냈다. 특히 남편의 죽음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중국집에서 허겁지겁 식사하는 장면이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리볼버 (2024) – 윤선 역

<리볼버>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갔던 전직 경찰 수영(전도연)이 출소 후 자신이 약속받았던 보상을 잊은 그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이야기다. 극중 임지연은 출소한 수영에게 다가가는 인물 정윤선을 맡았다. 겉으로 살갑게 수영을 대하지만 그 이면에는 큰 힘을 가진 앤디(지창욱)와 동호(김준한)의 지시 때문에 수영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캐릭터다. 하지만 수영의 과거와 목적을 알게 되면서 묘한 심정 변화를 보이고,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 놓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임지연은 마지막까지 수영의 조력자인지 적인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매력을 계속 발산하면서, 극의 재미와 긴장감을 동시에 잡는다. 여담으로 임지연은 <리볼버> 제작보고회 때 학창 시절 스스로 ‘한예종 전도연’이라고 고백하며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이 같은 마음으로 전도연과 좋은 케미를 빚어내며 영화의 완성도에 힘을 보탰다.
테일러콘텐츠 / Zapzee 에디터 서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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