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뇌관 떠오른 가계파산…“채무조정제도 실효성 개선 시급”
“1억 빌리면 이자만 5천”…고금리·고물가에 연체 급증, 채무조정 실효율 높아
최근 서민들의 대출 연체율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가계파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기불황에 고금리·고물가까지 겹치면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가계부채가 우리나라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으로 지목되는 만큼 개인채무자가 도덕적 해이 없이 신용회복을 통해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채무조정제도를 실효성있게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무조정제도는 실직이나 휴·폐업, 소득 감소 등으로 인해 당장 채무상환이 어려운 채무자를 지원하는 제도다. 상환기간을 늘려주거나 분할상환, 이자율 조정, 연체이자 경감 등을 통해 채무상환 부담을 덜어줘 채무자가 장기 연체로 인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걸 막고 경제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최근 경제여건이 악화되면서 채무조정제도 신청자 역시 급증하고 있지만 오히려 실효(효력상실)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어려운 금융상황에 직면한 자영업자, 중·저신용자, 사회취약계층의 경제적 재건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출이자 부담에 연체율 급증…채무조정제도 접수도 ‘껑충’
최근 은행권에선 가계대출 연체율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1개월 이상 연체된 가계대출 연체율은 0.40%다. 전월 대비 무려 0.03%p 오른 수치다. 연체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서민들의 이자부담 여력이 한계로 치닫고 있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가계 연체율 상승이 꾸준히 이어질 거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채무상환 부담이 커질수록 상환능력이 부족한 개인채무자의 연체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가계부채가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으로 지목되는 만큼 가계 연체율 관리를 위해서라도 채무조정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무조정제도는 법원에서 결정하는 공적 채무조정과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에서 하는 사적 채무조정으로 구분된다. 공적 채무조정에는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이 있다. 개인파산은 채무 상환능력이 없는 한계채무자에 대해 파산면책 결정을 통해 채무상환 책임을 면제해준다. 개인회생의 경우 상환은 어렵지만 고정소득이 있을 때 가용소득 내에서 일정기간(3~5년) 최저 생계비를 제외한 소득으로 변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신복위의 채무조정제도는 연체일수에 따라 신속채무조정, 사전채무조정, 개인워크아웃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신복위와 신용회복지원협약을 체결한 금융회사와 채무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은행권과 저축은행권만 협약을 맺고 있다보니 대부업 등에 채무를 갖고 있는 서민은 이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늘어난 연체율 만큼 채무조정제도를 이용하려는 이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1년까지만 해도 8만1030건이던 법원 개인회생 접수는 지난해 12만1017명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개인파산은 4만9063건에서 4만1239건으로 줄었지만 법원에서의 인용률은 개인회생보다 개인파산이 높았다.
마찬가지로 신복위의 신속채무조정 접수건수는 2021년 1만1849건에서 지난해 4만5925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사전채무조정은 1만8784건에서 3만9512건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고, 개인워크아웃은 9만6514건에서 9만9706건으로 규모면에선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사전, 신속채무조정제도의 경우 단기 연체자들이 장기 연체로 이어지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도입된 만큼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할 수 없지만 연체기간별로 지원책이 달라지다 보니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현재 사전채무조정과 신속채무조정, 개인워크아웃 등을 나뉘는 기준은 연체일수다. 연체기간이 30일 미만이면서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는 신속채무조정 대상이고, 연체기간 30~90일 사이 채무자는 사전채무조정 대상이다. 90일 이상 연체자는 개인워크아웃 대상으로 분류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원 대상을 점 더 확대하고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신용평점뿐 아니라 DTI나 DSR 등을 기준으로 지원대상을 포함해 통합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성실상환자에 한해 이자율 감면 폭을 지금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사전채무조정의 이자율 감면은 약정이자율의 30~70% 범위 내에서 인하한다. 최저수준은 3.25%, 최고 수준은 8.0%로 제한하고 있다. 이자율 감면이 사전채무조정제도의 유효성을 어느 정도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현재와 같은 이자율 감면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채무조정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이자율 감면 수준을 30~90%까지 확대하고, 최저수준도 2%까지 인하하고, 최고 수준은 5%까지 인하하는 등 금리 수준을 조정하는 게 유리하단 분석이다. 성실상환자가 건강한 생활상환 습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보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성실상환자에 한해 채무변제기간을 지금보다 줄이고 부채감면율을 높여주는 방안도 거론된다. 국내 채무조정제도의 채무변제기간은 8~10년이다. 미국을 비롯해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변제기간이 5년 내외다. 채무변제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보니 채무상환자가 신용을 회복하기까지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변제기간을 단축하되 무리한 월채무상환 금액의 상승을 방지하기 위해 감면율 산정 방식 개선이 지목된다. 채무자의 미래소득과 순자산, 소비억제 계획 등을 감안해 감면율 산정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전‧신속 채무조정제도는 잠재 및 단기 연체자들의 장기 연체자로의 전락을 예방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며 “어려운 금융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자영업자, 중·저신용자, 사회취약계 층의 경제적 재건을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