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 창간 19주년 특별기획
팬데믹 기간에 폭증했던 유동성이 위축되며 기업들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더 이상의 무분별한 외형 확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SK를 필두로 전 산업계에 확산되는 '리밸런싱'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기업들의 생존전략을 분석합니다.

업황 부진으로 시름하던 효성화학이 특수가스사업부(현 네오켐)을 매각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이전까지는 유상증자와 채권 발행 같은 미봉책에 의존했지만, 사업부를 매각하면서 호흡기를 달게 된 셈이다.
해당 딜에서는 검토 단계부터 종결까지 극적인 전환이 이어졌다. 당초에는 기업공개(IPO)나 마이너리티 지분 매각으로 경영권은 효성이 유지하면서 자금만 조달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그러나 이후 외부에 경영권을 매각하는 쪽으로 선회했다가 결국 그룹 내 다른 계열사가 경영권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업부의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효성화학은 신속한 대처로 모범적인 인수합병(M&A) 사례를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극적 거래 구조전환…1년 만에 레이스 완주
2023년 효성화학은 500억원 규모의 유증에 나섰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자 곧바로 다른 재무구조 개선 카드를 물색했다. 마침 NF3가스 등 특수가스가 유일한 흑자사업으로 평가된 가운데 이를 전면에 내세운 리밸런싱에 착수했다.
초반에는 지분 일부만 넘겨 특수가스사업부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효성화학에 그대로 일임하되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안이 유력하게 떠올랐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사업부를 떼어내 별도의 독립회사를 세우는 스핀오프 작업이 선결돼야 했다. 또 단순매각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추후 안전하게 재무적투자자(FI)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했다. 효성화학 측은 IPO를 검토했다. 그러나 IPO에 성공한다 해도 시장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에 나서야 했다.
이러한 초안을 바탕으로 이듬해 3월 FI 유치를 본격화했다. NF3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물질을 세척하는 데 쓰이는 특수가스로, 양호한 전방시장의 전망과 더불어 잠재력이 높다고 평가됐다. 이에 따라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 여러 곳이 투자레터에 응했다.
쇼트리스트가 추려진 후 인수 후보자들이 제시한 기업가치를 따져보던 효성화학은 거래구조 변경을 시도했다. 지분 49% 매각을 고수하다 통매각 가능성도 열어두기로 한 것이다. 지분 49%를 매각할 경우 가치는 3000억~4000억원 수준이지만 경영권을 매각하면 프리미엄까지 얹어 최대 1조원 이상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원매자는 프리미엄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인수 직후 완벽하게 통제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거래구조 변화로 유연성을 확보한 효성화학은 쇼트리스트 선정 3개월 만에 IMM PE-스틱인베스먼트 컨소시엄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전략적 선회에도 거래는 비교적 매끄럽게 진행됐다.
IMM PE-스틱인베스먼트 컨소시엄은 곧바로 실사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양측의 이해관계에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특수가스사업부는 증설 투자를 추진 중이었기 때문에 원매자는 이에 따른 기대효과까지 꼼꼼하게 계산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양측은 특수가스사업의 현금창출력에 몇배수를 적용하느냐를 두고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결국에는 주식매매계약(SPA) 전 협상이 무산됐다.
협상 결렬 직후 효성화학은 두 번째 결단을 내렸다. 경영권 매각을 유지할지, 소수지분 매각으로 선회할지, 또는 외부 매각이나 다른 대안을 선택할지 등 여러 옵션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경영권 매각을 유지하되 효성그룹 내에 효성티앤씨에 넘기는 방안을 택했다. 결단이 지체됐다면 매각 대상의 가치가 떨어졌겠지만 효성화학은 해를 넘기지 않기 위해 신속히 결정했다.
효성티앤씨는 NF3 생산으로 판덱스 등 업황에 민감한 사업의 리스크를 보완할 수 있다고 판단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특수가스사업부 매각가는 9200억원으로 당초 희망가인 1조3000억원과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는 수준에서 협의됐다. 1차적으로 효성티앤씨가 효성네오켐을 설립하고 사업부를 양수한 뒤 최종적으로 투자법인인 효성네오켐홀딩스가 효성네오켐 지분을 인수하는 구조로 딜이 마무리됐다.

보릿고개에 추가 자산매각도 불사
지난해 말 기준 효성화학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였으나 올해 1분기 특수가스 매각차익 등이 손익에 반영되면서 기사회생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계약금을 제외한 양도대금 7836억원이 현금 및 현금성자산에, 유형자산처분이익 명목으로 약 6000억원이 영업외손익에 각각 계상됐다. 이를 감안하면 사업부 매각으로 효성화학이 거둔 회계상 이득은 총 1조3836억원인 셈이다. 직전 연도 회계에 반영된 계약금 1380억원까지 포함하면 약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에 유형자산처분이익에 따른 당기순손익 흑자전환으로 연결기준 결손금이 직전 분기보다 4000억원 줄어 자본잠식을 털어낼 수 있었다.
또 실질적 수익인 매각대금은 차입금 상환에 쓰였다. 이를 토대로 개별기준 1분기 부채비율을 400%대로 낮췄으며, 사채투자자와 약정한 최소 조건인 ‘부채비율 500%’를 넘기지 않는 수준까지 개선했다.
이밖에도 효성화학은 온산 탱크터미널사업부(1500억원), 효성화학 베트남법인 지분(3965억원) 등을 잇따라 현금화해 6월 말 기준 부채비율을 259%로 낮췄다.
효성화학은 기업어음(CP), 단기사채 등 한시적으로 빌려 쓰는 유동성 차입금을 활용해 운영자금 소요에 대응하는 한편, 재무비율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화 대출 등으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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