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가 이제 정말 ‘1등 팀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개막전 패배 뒤 7연승. 그것도 라이벌 현대건설을 상대로 세트 스코어 3-1 승리를 거두며 흐름을 완전히 자기 쪽으로 끌어왔다. 김천체육관을 가득 채운 분위기만 보면, 몇 년째 정상권을 지키던 팀처럼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번 시즌 도로공사가 왜 다른지, 왜 이 팀이 단순한 초반 반짝이 아니라는지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현대건설전 승리의 키워드는 결국 ‘삼각편대’와 ‘미들블로커 성장’이었다. 외국인 공격수 모마가 24득점, 강소휘가 14득점, 타나차가 12득점으로 50점을 합작했다. 단순히 공격 점수만 많이 낸 것이 아니라, 세트마다 득점 타이밍이 절묘했다. 1세트 초반에는 오히려 현대건설이 앞서 나갔지만, 중반 이후 모마의 백어택과 강소휘의 날카로운 오픈이 터지면서 흐름이 완전히 넘어갔다. 2세트 듀스 승부에서도 마무리는 항상 모마의 손에서 끝났다. 서브 리시브가 불안했던 순간에도, 김종민 감독은 라인업을 크게 건드리지 않고 삼각편대를 믿었고, 그 선택은 정확했다.
흥미로운 건 도로공사가 단지 ‘공격 위주의 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날 블로킹 숫자만 보더라도 12-5로 현대건설을 크게 앞섰다. 현대건설이 서브 8-1로 크게 앞섰음에도 세트를 내준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강한 서브로 흔들어놓고도 마지막에 걸리는 블로킹을 뚫지 못하니 흐름이 이어지지 않았다. 반대로 도로공사는 서브 에이스 숫자는 적어도, 네트 앞에서 한 번 꽉 걸어주는 장면으로 분위기를 여러 번 바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세빈과 이지윤이라는 두 미들블로커가 있다.

배유나가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만 해도, 도로공사의 가운데 라인은 불안 요소로 꼽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공백이 두 젊은 미들블로커의 성장 속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김세빈은 이미 세트당 블로킹 1개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하며 리그 블로킹 1위에 올라 있고, 현대건설전에서도 블로킹 2개, 서브 1개를 포함해 9득점을 올렸다. 단순한 지원 역할이 아니라, 세트의 분위기를 바꾸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이동 공격까지 과감하게 사용하면서 상대 중앙 블로커를 끌어내는 역할도 완수하고 있다.
신인 이지윤의 존재감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도 8득점에 블로킹 2개, 서브 에이스 2개를 기록했다. 특히 1세트 초반과 중반, 이지윤의 서브 타임이 바로 ‘흐름 전환 구간’이었다. 현대건설이 앞서가던 상황에서 이지윤의 서브 하나로 긴 랠리가 만들어지고, 그 랠리의 끝이 도로공사의 득점으로 끝났다. 강한 파워로 밀어붙이기보다는, 특정 리시버를 겨냥해 짧고 까다롭게 공을 떨어뜨리는 타입인데, 현대건설 리시브 라인이 여러 번 흔들리면서 세컨드 볼이 불안해졌다. 김종민 감독이 “짧게 잘 넣는다”고 말한 이유가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 두 미들블로커가 서로를 성장의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지윤은 “블로킹은 아직도 약점이지만, 블로킹 1위인 세빈 언니 플레이를 계속 보면서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김세빈은 “지윤이가 침착하게 2단 연결과 서브를 잘해서, 내가 다이렉트 득점을 내는 경우도 많다”고 웃는다. 단순한 선후배 관계를 넘어, 같이 배우고 주고받는 파트너에 가깝다. 그 사이에서 김종민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디테일한 피드백이 더해지며, 도로공사의 중앙 라인은 눈앞에서 성장하는 중이다.
이런 구조적인 변화는 도로공사의 경기 운영을 훨씬 유연하게 만들고 있다. 예전에는 모마 한 명에게 공격 비중이 과하게 쏠리면서, 리시브가 흔들리거나 모마가 막히는 순간 팀 전체가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모마가 후위에 있을 때는 강소휘와 타나차가 측면에서 확실하게 책임지고, 랠리가 길어질 땐 김세빈과 이지윤이 중앙에서 한 번씩 정리해 준다. 세터 이윤정, 김다은 또한 경기 흐름에 따라 배분을 유연하게 조절하며, ‘누가 뜨거운지’를 향해 공을 몰아주는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현대건설은 이날 경기에서 ‘외국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카리가 24점, 자스티스가 17점을 올리며 41점을 합작했지만,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국내 선수는 없었다. 블로킹에서 앞서고 서브 득점에서도 크게 우위를 점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부처마다 필요한 한 방은 도로공사 쪽에서 나왔다. 특히 2세트 듀스 상황에서 모마와 강소휘가 연속 득점을 해내는 동안, 현대건설은 잦은 범실과 세밀하지 못한 마무리로 기회를 날렸다. 결국 현대건설의 3연패는 스코어 이상으로 내용에서 차이를 드러낸 결과였다.
7연승이라는 숫자만 놓고 보면, 도로공사는 이미 ‘우승후보 1순위’답다. 승점 19점으로 2위 페퍼저축은행과의 격차는 6점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이 팀의 진짜 강점은 성적이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곡선’이 모두 위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마는 여전히 리그 최고의 아포짓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강소휘는 KGC를 떠난 뒤 도로공사에서 완전히 중추로 자리 잡았다. 타나차는 시즌이 진행될수록 한국 배구에 적응하며 공격·수비 모두에서 비중을 키우는 중이다. 여기에 김세빈과 이지윤이라는 젊은 미들블로커 듀오까지 폭풍 성장하며 팀의 중심축이 넓어졌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지윤과 김세빈은 입을 모아 “목표는 통합 우승”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립서비스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이 팀이 보여주는 경기력과 성장 속도가 이미 그 목표를 향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막전 패배 뒤 7연승, 그리고 내용까지 함께 좋아지고 있는 팀이라면, 시즌 막판 더 큰 무대를 꿈꿔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의 도로공사는 단순히 ‘잘 나가는 팀’이 아니라, ‘강해지는 중인 팀’이다. 그리고 그런 팀은 시즌이 길어질수록 더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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