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굴려야 열심히 하는 건가요?" '나때는 말이야'에 던지는 의문 [K-야구 고정관념②]

신원철 기자 2023. 3. 28.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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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WBC 3연속 1라운드 탈락은 야구인들을 들끓게 만들었다. '훈련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여기에 등장하는 단골 주제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운동할 권리'는 최근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논쟁거리다.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이 아니라 운동부 선수들까지 수업을 강제하니 정작 훈련할 시간이 없다는 얘기다.

하다못해 야구 대표팀이 WBC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낸 뒤에도 같은 주장을 펴는 야구인들이 있다. 그런데 훈련 시간 단축이 WBC 등 국제대회 부진과 무관하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번 WBC 대표팀 평균 연령은 29.4세로, 절대다수가 '훈련시간을 늘려야 실력도 좋아진다'고 부르짖는 어른들 아래서 야구했다. 훈련은 훈련대로 한 선수들이 훈련 시간이 부족해서 국제대회를 망쳤다? 감정적 호소일 뿐 합리적인 의견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앞으로의 한국야구를 생각했을 때 훈련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요즘 애들'이 학교 수업을 받느라 야구할 시간이 줄어든 것은 맞다. 그런데 이 세대의 학생 선수들이 훈련을 못 해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합리적이지 않다.

최근 1, 2년새 조짐을 보이고 있는 'KBO판 구속 혁명'은 프로에서 구속을 끌어올린 경우보다 한화 문동주처럼 입단 때부터 특별했던 선수들이 이끌고 있다. 지금 시스템에서도 기량은 발전하고 있는데, 왜 과거로 돌아가야만 할까.

▲ 서울고 유정민 감독. ⓒ곽혜미 기자

▶ "오래 굴러야만 열심히 하는 건가."

서울고등학교 야구부는 꾸준히 많은 선수들을 프로에 보냈다. 지난 3년간 1차지명(안재석 이병헌 이재현)과 전면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김서현) 선수가 무려 4명이다. 대회 성적이 뒤따르지 않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시선도 있지만 선수들의 실력은 프로 지명이라는 결과물로 증명이 됐다. 그런데 서울고의 명성은 훈련의 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2015년 서울고 감독에 취임한 유정민 감독은 "훈련을 강하게 오래 해야한다는 얘기는 그분들이 생각하는 '열심히의 기준'이 그것 뿐이라는 거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래서 (선수가) 망가진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알고보면 유정민 감독도 이런 지도 방식을 택한 적이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감독할 때는 기본기를 엄청나게 강조하고 훈련도 많이 시켰다. 그런데 그게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180도 다른 사람이 됐다. 그때는 그렇게 하면 선수가 발전한다고 생각했는데, 길게 보면 그 선수는 성장이 정체됐다. 자기가 한 게 아니라 시키는 대로만 했기 때문이다. 코치가 바뀌고, 지도 방식이 바뀌면 또 자기 감각을 잃고 찾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성장하는 방법이 결국 훈련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야구가 결코 기능적인 메커니즘으로만 이뤄진 운동이 아니다. 그런데 운동을 적게 해서 문제다, 방망이를 뭘 써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그냥 과거로 돌아간다는 얘기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유정민 감독의 얘기가 이어졌다. "단체 훈련을 오래 하는 것으로 기량이 늘어난다면 미국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미국은 먼저 시행착오를 거쳐서 지금의 방식을 만든 것 아닌가. 시간을 써서 기량을 끌어올리는 것은 과거의 방식이다. 과학이 발달했고, 증명된 결과가 있는데 거꾸로 가는 분위기가 있다."

"좋은 컨디션으로 몸이 가벼운 상태에서 운동해야 좋은 기량이 나오는데 훈련하느라 몸이 무겁고 지쳐 있으면 어떡하나. 그보다는 동기부여가 더 중요하다. 선수가 스스로 열심히 집중해서 훈련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줘야 한다."

지금 선수들이 하루 1~2시간만 훈련하는 것도 아니다. 유정민 감독은 "몇 년 전에는 1시에 시작해서 9시쯤 끝났다. 지금은 4~5시간 정도"라고 얘기했다. 이것도 부족하다면 주어진 시간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아닐까. 혹은 효율성을 재고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그런 방법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거나.

▲ 요즘 아마추어 선수들은 야구도 사교육을 받는다. ⓒ곽혜미 기자

▶ 야구 학원 '레슨장' 어떻게 봐야할까

이제는 학생 선수도 사교육을 받는다. '레슨장' 혹은 '아카데미'라 불리는 야구교습소에서 따로 비용을 들여 야구를 배우는 학생 선수들이 적지 않다. 강남구 소재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K코치는 "내 경우 수강생의 70% 정도는 고등학생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개인 레슨이 보편화했지만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야구인들이 많다. 먼저 돈이 '많이' 든다. 야구부에도, 아카데미에도 돈을 들여야 하니 학부모에게는 이중고다. 한편으로는 학교에서 배우는 야구 이론과 배치되는 방식을 가르친다며 '아카데미 금지령'을 내리는 지도자도 있다.

그러나 과외금지법 같이 선수들의 아카데미 출입을 원천봉쇄할 수 없다면 현실을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선수들이 스스로 원해서 사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이들에게 학교 야구부가 채워주지 못하는 욕구가 있다는 뜻도 된다. 아카데미는 이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아카데미의 성업이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들에게 자극제가 돼야 하는데, 지금은 통제만 생각한다.

서울에서 아카데미를 운영 중인 A코치는 "학교에서 안 좋게 보신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아카데미도 살아남으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게 강의의 퀄리티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최근 KBO리그 구속이 많이 오르는 추세인데 그것도 레슨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고 얘기했다.

K코치는 "학교에서 (레슨장에) 못 가게 하는 경우는 꽤 많다. 걸리면 경기 못 뛰게 한다고 하는 얘기도 들었다. 아카데미 쪽도 다 옳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 미숙한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꿈만 심어주는 경우도 있다. 학교와 아카데미 모두 서로 문제점을 인정하고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공동구매' 형식의 소규모 그룹 레슨으로 비용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선수들이 왜 아카데미를 찾는지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K코치는 단체훈련보다 특타가 좋았던 과거 경험을 떠올렸다. 그는 "훈련할 시간이 없다고 할 게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효율을 내는 쪽으로 가야한다"며 "나는 특타가 좋았다. 그 시간은 온전히 내 시간이니까. 단체 훈련보다 특타로 실력이 많이 늘었다. 단체 훈련 4시간을 한다고 치면 진짜 내 시간은 20분 정도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체훈련에서 놓친 효율성, 빼앗긴 시간을 파는 사업이 지금의 야구 아카데미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강압적인 훈련 방식에 대한 불만도 아카데미를 찾는 이유가 될 수 있다. A코치는 "감독, 코치님만 결과에 영향을 받고 책임을 지는 게 아니다. 선수도 영향을 받는데 한국은 어른들 지도 방식에 무조건 따르지 않으면 경기에 못 나가기도 하고, 예전에는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구타는 과거의 얘기가 됐지만 지도자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악습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K코치는 "선수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선배 지도자들 중에는 선수를 '쪼는' 방식을 쓰는 분들이 많았다. 나는 풀어준다. 그래야 창의력이 생기고, 적극성이 생긴다"고 얘기했다. 아카데미의 성업은 고정관념에 멈춰 발전을 포기한 이들이 만든 결과물은 아닐까.

▶한국야구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집니다.

욕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따른다…야구하는 아이들을 지키려면 ①

"오래 굴려야 열심히 하는 건가요?" '나때는 말이야'에 던지는 의문 ②

"요즘 애들 기본기가 없다" 그런데 10년 넘게 그대로, 기본기가 뭐길래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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