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SK하닉 줄줄이 "성과급·격려금 지급" 약속...이유 있었네

마이크론 韓 'HBM 인재' 채용에 안간힘..."10~20% 임금인상·거주비 지원"
HBM 경쟁력 확대·실적 개선 전략…국내 업체 '인력 유출' 비상

미국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업종과 경력을 가리지 않고 한국인 엔지니어 유치에 나섰다.

이달 초중순 국내 주요 대학에서 '당일 채용(사전 지원자 대상)'이라는 파격 조건까지 내걸고 채용 설명회를 진행한 데 이어 경력직으로 영입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

반도체 업계는 범용 D램 제품의 실적 부진이 예상되는 마이크론이 경쟁사 인력까지 끌어와서라도 인공지능(AI) 필수 반도체 '고대역폭 메모리(HBM)'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마이크론의 공격적인 사람 빼가기에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마이크론 대만공장. / EPA 연합

22일 반도체 관련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대만 타이중 지역의 팹(공장)에서 일할 인력 채용을 위해 최근 몇 주간 경기도 판교 일대 호텔 등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국내 반도체 경력직 엔지니어들의 면접을 진행하고 있다.

대만 공장은 마이크론의 D램 생산기지 중 가장 크다. 마이크론의 HBM도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마이크론 대만 매니저는 지원자가 1:1 방식으로 영어, 피티(PT) 면접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마이크론 본사. / 야후파이낸스

실제 면접을 본 한 반도체 업체 직원은 "서류를 내고 한 일주일 만에 면접 연락을 받았다"며 "면접 장소(호텔) 미팅룸에서 영어로 30분 정도 면접을 봤다"고 했다.

마이크론은 HBM 위주의 경력직 채용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대만 헤드허터가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킹 플랫폼 '링크드인'을 통해 한국 엔지니어들에게 제안(오퍼)한 포지션 '직무기술서(JD)'에는 HBM과 패키징 내용이 다수였다.

연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원천징수 기준 10∼20% 임금 인상, 거주비 및 비자 프로세스 지원 등을 이직 조건으로 내걸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엔지니어 뿐만 한국에 지사를 둔 외국계 반도체 장비업체, 디스플레이 업계 직원들에게도 이직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차도 주니어부터 팀장급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자는 빠르면 당일 또는 1∼2일 만에 합격 통보를 받거나 대만이 아닌 미국, 싱가포르 팹 근무를 제안받은 지원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업계는 마이크론이 이처럼 적극적인 인력확보에 나선 것에 대해 D램에서 우위에 선 한국 업체들 소속 엔지니어를 확보해 HBM 경쟁력을 확보하고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의도로 해석했다.

마이크론은 'AI 큰손' 엔비디아에 HBM3E(5세대) 8단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SK하이닉스에 이어 두 번째다. 12단 제품은 샘플링 중이며 HBM4(6세대) 제품 양산도 2년 내 이루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마이크론이 4세대 제품인 HBM3 양산을 건너 뛰고 HBM3E 생산을 시작한 만큼, 후속 제품 개발과 공급 물량 확대 등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역량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미 SK하이닉스는 시장 주류인 HBM3E 12단 제품을 사실상 전량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고, 내년 상반기 중 HBM3E 16단 공급, 내년 하반기 HBM4 12단 출시도 예정돼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CEO. / 블룸버그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회계연도 1분기(9∼11월)에 HBM은 전분기 대비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하며 실적에 기여하고 있고, HBM은 내년에도 여전히 공급이 부족하다"며 "2025 회계연도의 자본 투자의 대다수는 HBM, 시설, 연구개발(R&D) 등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마이크론의 공격적인 사람 빼가기 시도가 대규모 인력 유출과 이로 인한 HBM 경쟁력 저하 등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어 우려하는 분위기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이미 마이크론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지만 회사 고위급의 핵심 인력을 제외하고는 이직이나 면접을 보는 개별 인원을 모두 관리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기존 인력을 지키기 위해 기업 문화를 개선하거나 PS, PI와 같은 성과급, 특별 격려금 등을 확대 지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작년 HBM 시장에서 마이크론의 점유율은 9%로 SK하이닉스 53%, 삼성전자 38% 등에 이어 3위다.

앞서 지난 19일 발표된 마이크론의 2025 회계연도 2분기(12∼2월) 매출(79억달러)은 월가 전망치(89억9000만달러)를 10% 이상 밑돌고, 주당 순이익(1.53달러)은 전망치(1.92달러)보다 약 25%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