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차는 경제적이다. 작은 차체와 작은 엔진으로 높은 효율성을 뽐낸다.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운전자는 작은 엔진에서 나오는 불충분한 출력으로 인해 툭하면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야 하고, 작은 차체에서 탑승객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또한, 가벼운 몸무게에서 나오는 가벼운 승차감은 고속에서 탑승객의 불안감을 유발했다. 경제성이라는 장점마저 경차에 밀렸다. 소비자에게 소형차는 그저 불편함을 안고 타야 하는 차였다.
이에 한국의 소형차 시장은 일찌감치 소멸했다. 2016년 현대 엑센트가 단종되며 소형 세단 시장은 문을 닫았다. 국내 소비자에게 외면받던 소형차는 살아남기 위해 ‘SUV로의 진화’를 선택했다. 가격이 저렴하면서 공간활용도가 높다는 이유로 국내 소형 SUV 시장은 한때 국산차 제조사의 박 터지는 경쟁이 벌어졌다.
공간활용도가 좋아졌을 뿐 체급의 한계는 명확했다. 내연기관 시대에 소형차 진화의 최종형태가 현재의 소형 SUV다. 전동화 시대의 소형 SUV는 어떨까. 기아가 소형 전기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 세계적 전기차 캐즘 현상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기아는 ‘전기차 대중화’라는 부푼 꿈을 안고 EV3를 출시했다.

기아 EV3는 지난해 10월, 기아 EV 데이 행사에서 콘셉트카로 대중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콘셉트카로 등장했지만 중국에서 양산화를 마친 EV5보다 먼저 국내 시장 출시된다는 소식에 기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올해 5월 EV3를 마주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기아는 기존 공개한 콘셉트카를 그대로 양산했다.
기아 디자인 철학 오퍼짓 유나이티드를 적용한 EV3는 대담하고 강건한 외관 디자인을 갖췄다. 전면 디자인은 디지털 타이거 페이스가 눈에 띈다. EV9부터 적용된 실루엣이 한층 진화한 모습이다.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을 적용해 좌우를 가로지르는 수평적인 가니쉬, DRL과 세로로 이어진 헤드램프는 소형 SUV임에도 강인한 인상을 준다.

후면은 리어 글래스와 부드럽게 이어지는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을 차체 양 끝으로 배치했다. 이와 더불어 견고한 느낌의 C필러가 넓은 어깨 라인으로 이어지면서 당당한 자세를 완성했다. 외관 디자인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베이비 EV9’ 별명이 딱이겠다.
시승 차량은 EV3 GT-Line 롱레인지 트림이다. EV3 GT-Line은 외관 디자인에서 차별화를 두고 있다. 전·후면 범퍼 디자인에 수직 수평 그래픽이 더해져 스포티한 인상을 강해지고, 휠 아치, 도어 가니쉬 등에 블랙 파츠가 더해진 게 특징이다. 주로 블랙 컬러로 포인트를 주다 보니 외장 컬러 블랙을 적용한 차량에는 GT-Line 특유의 스포티한 감각은 무뎌진다. 대신 고급감이 더해진다.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대형 전기 SUV EV9에 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크기가 각각 12.3인치인 디지털 계기판과 센터 디스플레이 그리고 5인치 공조 디스플레이가 그사이를 채운 파노라믹 커브드 디스플레이가 그대로 적용돼서다.
여기에 12.3인치 윈드실드 타입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도 달려있다. EV9을 구매한 사람들이 아쉬운 소리를 해 마땅할 정도로 차급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새다.

EV3부터 벽돌깨기, 마블 미션, 틀린 그림 찾기 등 총 8종의 게임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스플레이 터치 기반의 비교적 간단한 게임이다. 기아 커넥트 스토어에서 6900원을 내고 아케이드 게임에 가입하면 평생 이용할 수 있다. 기존까지 기아는 스트리밍 플러스를 통해 OTT 서비스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만 제공했다.
OTT 서비스의 경우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콘텐츠를 소비해야 하지만 게임 서비스는 간단히 시간 떼우기 좋다. 특히 기아가 차량 실내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의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변화다.

센터콘솔은 EV3 실내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이다. 앞뒤로 움직이는 슬라이딩 콘솔 테이블이다. 필요할 때 늘리고, 필요 없을 때 수납하는 형태다. 슬라이딩 테이블은 차량에서 간단한 업무를 볼 때 활용하기 딱이다.
14인치 노트북을 올리면 딱 맞다. 전기차 충전을 하면서 간단히 끼니를 때울 때도 테이블로 활용하기 좋겠다. 오토 홀드, 360도 서라운드 뷰 등 자주 사용하는 버튼을 마련해 운전 중 불편함도 크게 덜었다. 슬라이딩 테이블을 탑재하면서 밀폐형 콘솔박스를 잃었다.
슬라이딩 테이블 하단에 별도의 수납공간이 마련돼 있지만 개방형이다. 물건을 담아놓기보다는 올려둔다는 성격이다. 큰 물건 위주의 수납에 용이하다. 작은 물건을 수납할 때는 별도의 파우치를 챙기는 편이 좋겠다.

시승할 때, 2열 레그룸을 살피는 경우는 있어도 1열 레그룸을 살피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EV3 실내 공간에서 가장 크게 체감된 부분은 조수석 레그룸 공간감이다. 부피를 대폭 줄인 공조장치 'THIN HVAC'가 적용되면서 조수석 탑승객의 발 자유도가 대폭 향상됐다.
레그룸이 넓어지면서 조수석 시트를 기존보다 앞으로 더 당길 수 있게 됐다. 추가로 2열 레그룸 공간 확보에도 이점으로 작용한다. 실내 소재 대부분은 친환경차답게 재활용 소재를 대거 활용했다. 손이 잘 닿는 부분은 패브릭 소재로, 손이 잘 닿지 않는 부분은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마감했다.


기아 EV3는 전장 4300mm, 전폭 1850mm, 전고 1560mm, 휠베이스 2680mm다. 니로 EV와 비교했을 때 실내 공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전장과 휠베이스는 각각 120mm, 40mm 짧다. 전기차 전용 E-GMP 기반으로 전반적인 차체 길이는 짧지만 실내 공간 손해를 최소화했다.
키 176cm 기자가 2열에 앉았을 때, 무릎 공간과 머리 공간에 각각 주먹 한 개씩 들어갔다. 특히 2열 시트는 리클라이닝을 지원해 괘 큰 각도로 눕혀진다. 2열에 성인 2명, 어린이 1명이 타면 장거리 여행에도 부담을 느끼기 어려울 수준이다.



트렁크 용량은 460L다. 하만카돈 프리미엄 사운드 옵션을 적용하면 트렁크 우측 공간에 우퍼가 탑재되면서 트렁크 용량이 소폭 준다. 2열 시트를 접으면 더 넓은 트렁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완전한 평탄화를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소형차라 차박은 불가능하다. 트렁크 밖으로 발이 나온다.
전기차의 덕목 중 하나인 프렁크 공간도 확보했다. 용량은 25L다. 전륜에 전기 모터를 탑재하면서 비교적 아담한 크기일 수밖에 없다. 꼼꼼한 패키징으로 전기 케이블 등 부품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는다. 사용자가 프렁크 공간에 물건을 수납할 때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충분히 배려했다.

내·외관을 꼼꼼히 살펴봤으니 이제 시승에 나설 차례다. 시승 코스는 서울 성수동에서 속초까지다. 출발 전 차량의 전원을 켜야 한다. 브레이크를 밟고 스티어링 휠 우측 하단에 위치한 전원 버튼을 누르면 계기판에 READY 아이콘이 켜진다.
EV3부터 전기차 전용 전원 제어가 적용되면서 'OFF-POWER ON-READY'로 단순화됐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전원 버튼만 누르면 POWER ON이 활성화된다. 정차 상태에서도 배터리 전력을 이용해 공조 및 오디오 등 전기장치를 사용할 수 있다.

컬럼식 기어를 앞으로 비틀어 D에 두고 가속 페달을 밟으면 매끄럽게 차체가 움직인다. 전륜 기반 E-GMP 기반으로 앞에서 전기모터가 차체를 끌어당기는 감각이 전해진다. 전기차 특유의 압도적 토크와 부드러운 움직임이 놀라울 때는 지났다. EV3의 진가는 고속 주행에서 드러난다.
EV3는 최고출력 150kW, 최대토크 28.8kg.m를 발휘하는 전기모터를 전륜에 탑재하고 있다. 고속도로에 올라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속도는 금세 170km/h까지 치솟는다. 170km/h에 다다르면 최대치로 치솟았던 Power 게이지가 자동으로 힘을 푼다. 놀라운 건 고속안정성과 정숙성이다. 전기차는 엔진 소음이 없는 대신 타이어 및 노면 소음과 풍절음에 부각되기 마련이다.
기존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는 노면 소음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EV3는 사이드 실 언더커버를 비롯해 총 8종의 언더커버 부품을 장착해 커버링 면적을 79.1%까지 늘렸다. 공기저항 계수 향상뿐 아니라, 노면 소음도 일부 억제하는 효과를 냈다. 차체 바닥에 깔린 무거운 배터리는 고속 안정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전반적인 승차감은 부드럽지만 결코 고속에서 불안하지 않다. 소형차급을 뛰어넘는 정숙성과 고속안정성이다.

EV3 테크 데이에서 연구진은 아이 페달(i-Pedal) 3.0과 스마트 회생 시스템 3.0을 강조했다. 좌측 패들 쉬프트를 1초 이상 당기면 아이 페달 3.0, 우측 패들 쉬프트를 1초 이상 당기면 스마트 회생 시스템 3.0이 활성화된다. 스마트 회생 시스템 3.0은 내비게이션 기반 정보를 활용해 과속 카메라, 좌/우회전, 커브길, 속도제한, 방지턱, 회전교차로 등 여러 상황에서 자동으로 감속한다.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일을 줄여준다는 게 핵심이다. 고속도로에서도 커브길을 만나면 자동으로 회생제동이 활성화돼 안전한 속도로 코너를 돌아나가게 한다. 다만, 스마트 회생 시스템 3.0에 익숙지 않은 운전자라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감속이 된다고 느끼고 당황할 수 있겠다.
현재 차량이 어떤 이유로 회생제동에 돌입했는지 운전자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계기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현재 회생 제동량 정보뿐이다. 과속 카메라를 인식해서 회생 제동을 활성화했는지, 커브길을 인식해 회생 제동을 활성화했는지를 운전자에게 아이콘 등으로 친절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시승 차량은 기아 EV3 GT-Line 롱레인지 사양으로 81.4kWh 용량의 NCM 배터리 팩을 탑재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주행 가능 거리는 배터리 99%에서 482km를 띄웠다. 주행 환경은 영상 31도에 습했던 날씨 탓에 에어컨을 잠시라도 끌 수 없었다. 또한, 130km/h 이상의 고속 항속 상황이 잦았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193km가량이 전기차에 가혹한 조건으로 주행했다.
속초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잔여 배터리는 54%, 주행 가능 거리는 282km가 남았다. 전비는 5.9km/kWh로 공인 복합 전비 5.1km/kWh(19인치 기준)를 상회했다. 일반적인 주행 환경에서 19인치 휠을 장착한 EV3도 500km 이상의 1회 충전 항속 거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현대차그룹의 전기차에서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들어온 제조사다운 '고집'이 묻어 있었다. 그런 고집은 소비자로 하여금 "전기차인데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지?"라는 의문을 던지게 했다. 전기차로써 갖춰야 할 디테일 부족이 눈에 들어왔다는 말이다.
EV3는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전기차 가운데 가장 '전기차'다운 면모를 보인다. OTT 및 오디오 스트리밍 지원은 물론 아케이드 게임 기능을 더한 것은 물론, 배터리 전력을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게 한 전기차 전용 전원 제어는 사용자의 전기차 이용 환경에 완벽히 대응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동화의 이점이 소형차의 단점을 완벽히 커버했다. EV3가 보여주는 가속성·정숙성·고속안정성·승차감은 소형차 체급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올려놨다. 지금까지 소비자는 소형차가 머금고 있는 단점을 피하고자 준중형차 이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기차 시대의 소형차는 더 이상 그런 불편함을 탑승객에게 전하지 않는다. 적어도 EV3만큼은 말이다. 하반기 전기차 시장에서 돌풍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한 줄 평
장 점: 소형차급을 뛰어넘은 정숙성·고속안정성·승차감..전동화 이점 다 누렸다
단 점: 이 옵션, 저 옵션 붙이다 보면 가격도 소형차급을 뛰어넘는다
속초=서동민 에디터 dm.seo@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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