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 7개로 7회 초 삭제
7회 초가 시작된다. 스코어는 같다. 2-2 동점이다. 기세는 원정 팀이 좋다. 뒤지던 게임을 직전(6회)에 따라붙었다. (5월 31일 한화생명 볼파크, SSG 랜더스 - 한화 이글스)
홈 팀 투수가 바뀐다. 선발(윌켈 에르난데스)은 책임을 마쳤다. 두 번째가 이어받는다. 우완 이상규(29)다.
첫 상대는 오태곤이다. 카운트가 1-2로 투수 편이다. 4구째로 끝낸다. 몸 쪽 스위퍼(128km)다. 움찔하면서 타자가 피한다. 볼인 것 같다. 그런데 ABS가 OK 한다. 스트라이크, 삼진이다.
다음은 한유섬이다. 2구째 커터(140km)로 배트를 끌어낸다. 1루수 옆 땅볼이다.
세 번째 김민식도 비슷하다. 오히려 더 간단하다. 초구 커터(140km)를 건드린다. 3루수 뜬 공으로 돌아선다.
공 7개로 끝이다. 시간을 따져도 그렇다. 5분도 안 걸린 것 같다. 7회 초가 너무 빨리 끝난다. 날도 뜨거운데…. 랜더스는 바쁘다. 부랴부랴 다시 장비를 챙긴다. 땡볕으로 나가야 한다. 또 수비다.
홈 팀은 반대다. 야수들이 콧노래를 부른다. 얼른 철수하자. 쿨러가 켜진 덕아웃으로 향한다. 시원한 음료도 한 잔씩 하자. 발걸음도 가볍다.
그래서 그런가. 고대하던 기회가 생긴다. 볼넷(이도윤)-안타(심우준)가 이어진다. 1사 1, 3루 찬스다. 이원석의 땅볼을 굴린다. 이도윤이 간단히 홈을 밟는다. 3-2로 기울기가 생긴다.

645일 만의 승리 투수
다시 공수가 바뀐다. 8회 초 원정 팀 공격이다. 막아야 할 투수는 그대로다. 하긴. 7회에 7개밖에 던지지 않았다. 힘은 충분하다.
그런데 슬슬 부담감이 생긴다. 리드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도 녹록지 않다. 상위 타선으로 연결된다. 거센 저항이 뻔하다.
하지만 웬걸. 원-투-쓰리. 속사포 같은 콤비 블로우가 터진다. 최지훈 중견수 플라이 - 박성한 유격수 땅볼 – 정준재 2루수 플라이 아웃이다. 순식간에 아웃 3개 불이 켜진다.
모두가 빠른 카운트 공략이다. 2구, 2구, 4구를 넘기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그렇다. 이 경기의 고비는 7~8회였다. 거기서 승부가 갈렸다. (최종 스코어 6-2)
그걸 막아낸 투수가 이상규다. 2이닝을 완벽하게 처리했다. 안타, 볼넷은 없다. 삼진만 1개를 빼냈다. 나머지는 모두 범타 처리다. 각각 5분 컷이다. 투구수도 15개로 충분했다.
딱히 엄청난 위력은 아니다. 최고 구속은 149km다. 포심은 단 2개만 던졌다. 대신 커터, 체인지업의 현란함이 춤을 춘다. 스위퍼도 곁들인다.
경쟁력은 정확성이다. 그리고 신속함과 대담함이다. 한결같이 스트라이크 존 근처다. 정교함, 예리함으로 타자를 무력하게 만든다.
급기야 훈장도 챙긴다. 뜻밖의 성과물이다. 경기 직후다. 동료들이 공 하나를 챙겨준다. 이날 승리의 기념구다.
맞다. 그의 시즌 첫 승리다. 2024년 8월 24일 이후 처음이다. 기념일은 날짜로 따져야 한다. 무려 645일 만이다.
2년 전에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때는 4년 만의 1승이었다. 이번에는 울지 않는다. 담담하게 주위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
“직구만 너무 믿지 말고, 변화구를 충분히 활용해라. 그런 조언을 주신 감독님과 코칭스태프의 도움이 컸다. 또 요즘 너무 잘하고 있는 동료들이 자랑스럽다.” (이상규, 경기 후 인터뷰)

33세에 첫 마무리 보직
또 한 명 있다. 이민우(33)다.
불과 열흘 전이다. 이글스에 짤막한 ‘사내 공지(?)’가 떴다. 인사발령이다. 빈자리였던 마무리 투수로 보임됐다.
그리고 첫 등판이다. 5월 22일 베어스 전에 모습을 드러낸다. 1.1이닝 동안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5-3 리드를 지킨다. 시즌 첫 세이브다.
이후 4경기의 9회를 책임졌다. 한결같이 안정적이다. 합계 4.2이닝을 무실점으로 통과했다. 4개의 승리를 지킨 수호신이다.
나이가 적지 않다. 벌써 30대 초중반이다. 마무리 경험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초보’라는 딱지에도 할 말은 없다.
그런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터뷰 때 하는 말이다.
“마무리로 준비하라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초반에는 실점도 있었다. 그래도 팀에서 믿어줬다. 감독님, 코치님이 계속 격려해 주셨다. ‘그냥 한 이닝만 막자(9회라는 걸 신경 쓰지 않고)’ 그런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른다.”
인사권자도 고개를 끄덕인다. 칭찬이 멈추지 않는다.
“항상 열심히 하는 선수다. 그런 보고가 늘 들어온다. 노력한 선수는 언제든지 기회를 받는다. 요즘은 너무 잘해주고 있다. 덕분에 어려운 상황을 잘 모면하고 있다.” (김경문 감독)

방황하던 1년 전
사실 한 달 전만 해도 달랐다. 이글스 불펜에 이들 자리는 없었다. 20대 초반이 대세였다. 김서현(22)과 정우주(20)다. 150~160km의 화끈한 파이어볼러들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들이 흔들린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러자 팀도 기우뚱거린다. 마치 난파선 같이 위태롭다.
난감한 일이다. 당장 대역을 찾기가 막막하다.
어쩔 수 없다. 서산으로 눈길을 돌린다. 긴급 처방이 필요하다. 아니다. 임시방편이라도 찾아야 한다. 그런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이상규, 이민우다.
사실 1군보다는 2군에 가까운 전력이다. 작년 (1군) 기록은 희미할 뿐이다.
이상규 = 5게임, 9이닝, ERA 8.00
이민우 = 1군 등판 없음
고민이 많은 1년을 보내야 했다.
“자비로 미국 연수(피칭 아카데미 트레드 애슬레틱)도 다녀왔다. 한 달 반을 배웠다. 그런데 잘 모르겠더라. ‘이게 맞나’ 하며 오래 방황했다.” (이상규)
“마무리 캠프 때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그런 얘기가 감독님 귀에 들어갔다고 하더라. 그 덕분에 (1군) 스프링캠프에 따라갈 수 있었다.” (이민우)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이상규는 2015년 2차 7라운드(전체 70위) 출신이다. 이민우는 대학(경성대)을 졸업하고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같은 2015년 1차 지명을 받았다.
속된 말로 ‘고인물’이다. 게다가 모두 이적생이다. LG 트윈스, KIA 타이거즈에서 오랜 기간 뛰었다.
개막 엔트리에 둘의 이름은 없었다. 퓨처스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29세, 33세 나이 아닌가.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자신들이 너무나 잘 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다행히 늦지 않게 전화가 왔다. 어렵게 얻은 자리다. 그래서 더 경기 하나가, 이닝 하나가, 공 하나가…. 귀하고, 소중하다.
이럴 때 떠오르는 말이 있다. 옛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다. 예전 기사에 가끔 등장하는 속담이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이런 뜻이다.
‘곧고 잘 생긴 나무는 일찍 베어진다. 대신 굽고, 볼품없는 나무가 끝까지 남는다. 그래서 조상들의 묘를 지켜준다.’
160km에 육박하는 폭발력은 없다. 신선함과 패기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팀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다. 그 시간을 지켜주는 존재다. 소중함, 각별함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