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제강의 재무·지배구조 등에 대해 심층적으로 살펴봅니다.

고려제강은 1990년대부터 현지에 생산·유통 법인을 설립하는 직진출 방식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왔다. 현지 법인과 국내 제조 라인을 수직계열화로 강하게 엮은 구조 역시 당시 해외 진출의 정석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중국산 저가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 대거 유입되면서 이 같은 구조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5년 3분기 말 기준 고려제강 전체 매출의 약 86%가 수출에서 발생했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이 핵심 거래 국가로 꼽힌다.
높은 수출 의존도는 1990년대 현지 법인을 두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됐다.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국 △독일 △스위스 △체코 △헝가리 등 여러 곳에 법인을 설치했지만 이는 사실상 미주와 유럽 시장 침투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행보였다. 예컨대 1989년 설립된 말레이시아 법인은 당시 선진국의 수출 규제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유럽 판매 우회로로 활용됐고 현재까지 이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생산 법인과 현지 유통 법인, 현지 생산 법인과 유통 법인이 거래 관계로 촘촘히 얽힌 수직계열화 구조는 고려제강 수출 실적의 핵심 기반이 됐다.
실제로 고려제강은 2024년 스위스 합작사 베로페(VEROPE) AG에 제품을 공급해 542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작년에도 3분기 누적 기준 480억원 규모의 매출 거래를 했다. 또한 지난해 3분기 일본 법인(키스와이어 재팬)으로부터 214억원 규모의 매출이 발생했다. 고려제강 단독 기준 매출 대비 이들과의 거래 비중은 약 16%로 적지 않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그룹 전체로 보면 계열사끼리 더욱 긴밀하게 엮여 있다. 비드와이어 등을 제조하는 홍덕산업은 고려제강의 관계기업이자 키스와이어홀딩스, 홍영철 회장 등 오너일가가 상당 수준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홍덕산업의 주요 수출 경로는 키스와이어 재팬(일본)과 키스와이어 트레이딩(미국)이다. 2024년 홍덕산업이 각 법인과 거래에서 발생한 매출은 총 300억원으로 전체의 10% 수준이었다.
또한 2024년 고려제강의 연결 자회사들은 홍덕산업의 체코법인(키스와이어 코드 체코)과 헝가리법인(키스와이어 센트고트하르드)에서 각각 657억원, 620억원 규모의 제품을 매입했다. 해당 수치가 같은 해 두 현지 법인의 매출 규모와 거의 일치하는 점을 고려하면 그룹 내부 수요에 의존하는 구조로 해석된다.
또 다른 자회사인 고려강선의 핵심 매출처는 키스와이어 인터내셔널이다. 2024년 해당 법인과 내부거래로 509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이는 동기간 고려강선 전체 매출의 3분의 1 수준에 해당하는 규모다.
주목할 점은 고려강선과 키스와이어 인터내셔널의 지배구조적 관계다. 키스와이어 인터내셔널은 아르셀로 미탈의 룩셈부르크 소재 회사였다가 2014년 고려제강에 인수됐다. 이 과정에서 고려강선은 고려제강과 외국인 주주 간 공동 출자로 설립된 합작법인(JV)에서 벗어나 고려제강의 지배 아래에 완전히 편입됐다. 이러한 지배구조 변화와 고려강선이 캡티브 수요에 집중하기 시작한 시점 역시 맞물린다. 고려강선은 키스와이어 인터내셔널을 활용해 유럽으로 스틸코드와 호스보강용 강선을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제강은 안정적인 수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국내외 계열사를 캡티브 수요로 촘촘히 엮어 왔다. 이처럼 외형상 안정적인 거래망처럼 보이지만 변수가 발생할 경우 리스크가 빠르게 전이되는 취약점이 있다.
예컨대 중국산 저가 물량이 전 세계 시장에 난립하는 현재의 환경에서는 오히려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고려강선은 키스와이어 인터내셔널의 소비 물량 감소가 곧바로 매출 타격으로 이어졌다. 2023년 키스와이어 인터내셔널과 거래 규모는 517억원으로 전년 대비 30% 가까이 줄었고 그 결과 고려강선의 전체 매출도 18% 감소했다. 당시 내수 침체로 어려움을 겪던 중국 기업들이 저가 제품을 전세계로 대거 공급하던 시기다. 키스와이어 인터내셔널이 먼저 타격을 입었고 연쇄적으로 고려강선까지 영향이 전이된 것으로 풀이된다.
가격 조정 여력 또한 외부로 판매하는 것 보다 제한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계열사간 거래 구조는 결과적으로 상호 간 마진 압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고려제강 측은 저렴한 인건비와 각종 세제 혜택으로 원가 부담이 크지 않은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구조적인 어려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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