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희망은 다음 페이지에 있다. 그러니 결코 책을 덮지 말라"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6. 1. 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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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이야기는 인물과 사건의 궤적을 따른다.

이 책에서 인물의 이름이나 사건의 발생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책이다.

"희망은 다음 페이지에 있다. 책을 덮지 말라. 나는 책의 모든 페이지를 넘겨 보았지만 희망을 만나지는 못했다. 희망은, 어쩌면 책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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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 이어지는 질문으로 세계를 바라본 유대인 자베스

대개 이야기는 인물과 사건의 궤적을 따른다. 그게 서사의 고전적 질서이자 전통이었다. 그러나 에드몽 자베스의 '질문의 책'은 이 질서를 근원적으로 전복한다. 이 책에서 인물의 이름이나 사건의 발생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대신 무수한 문장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흩어져 빛나기에, 하나의 완결된 사유를 이루는 각 문장을 음미만 하면 된다. 애서가라면 한 문장씩 숨 고르며 읽을 만한 아포리즘이랄까.

자베스에게 글쓰기 행위는 '기원(起源)에 대한 정열'로 이해된다. "글쓰기는 바닥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다. 바닥은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다. 쓴다는 것은, 목적지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목적지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정지하지 않고 초월하기, 즉 종결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곧 책이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어떤 책도 완결되지 않는다"는 주제로 이어진다. 질문과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질 뿐이다. 질문에 해당하는 답을 제시하고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형성한다. 그게 책이다.

질문은 새로운 질문에 대한 '약속'이며, 이 약속은 희망과 유관하다. "희망이란 곧 앎이다. 안다는 것은 질문하는 것이다. 질문으로부터 우리는 새로운 질문에 대한 약속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추론의 끝에는 하나의 결정적인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이 희망에도 종결은 없다고 자베스는 말한다. 먼 곳의 자유, 이것은 가까이 있지만 동시에 가닿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희망은 다음 페이지에 있다. 책을 덮지 말라. 나는 책의 모든 페이지를 넘겨 보았지만 희망을 만나지는 못했다. 희망은, 어쩌면 책 자체다."

독자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자베스에 따르면 작품 생존을 결정하는 자는 작가가 아닌 독자다. "한 문장이, 한 소절이 작품에서 살아남는다고 할 때, 다른 것들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특별한 기회를 부여한 이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다. 작가는 작품 앞에서 지워지고, 작품은 독자에게 종속된다."

1912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난 유대인 자베스는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박해받았다. 하지만 그는 유대인을 '민족적 차원의 피해자'로만 환원하는 시선을 이 책에서 거부하고 있다. 그에게 '유대인'이란 민족 이상의 개념이다. 유대인은 "타자를 완전히 지워도 된다고 믿게 되는 순간을 드러내는 역사적 증거"였다. 이때, 타자와의 '차이'는 책을 통해 줄어든다. 책 읽기는 '타자를 지우는 폭력'에 저항하는 일이다.

"과거가 반짝인다. 경험도 미래도 반짝이리라. 모든 별들을 품은 하늘은 과거의 책이다"와 "나는 확신한다. 죽음 이후에, 나는 읽히기 위해 거기 있으리라. 내 이름은 책 속에 있으며 죽음은 가장 찬란하게 꽃 핀 이름이다"란 문장은 자베스의 심적 깊이를 일러준다. 그는 세계가 끝내 '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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