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전세금 2000만원 보태줬는데.." 1년 뒤 사위가 보낸 문자에 손이 떨렸다

딸을 시집보낸 엄마의 마음은 늘 딸네 집 현관 앞을 서성입니다. 혹시 끼니는 거르지 않는지, 사위와 다투지는 않는지, 살림이 쪼들리지는 않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걱정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딸이 힘들다는 말을 꺼내면 엄마는 앞뒤 가리지 않고 지갑을 엽니다. 그런데 그 정성이 엉뚱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받아 낼 수 있는 돈'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엄마의 가슴은 무너집니다.

올해 예순넷이 된 한옥자 씨는 광주 양동시장 근처에서 30년 동안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다 지난해 문을 닫았습니다. 하루 열두 시간씩 서서 손님 머리를 만지느라 손목과 무릎이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혼자서 외동딸 지은이를 키워 낸 세월이었습니다.

옥자 씨에게 딸 지은이는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파마약 냄새가 밴 손으로 딸의 도시락을 싸고, 손님이 없는 날에는 미용실 의자에 앉아 딸의 숙제를 봐 주었습니다. 딸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던 날, 옥자 씨는 미용실 문을 닫고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비우며 울었습니다.

그런 딸이 4년 전, 회사에서 만난 강태민이라는 청년과 결혼했습니다. 사위는 서글서글한 말솜씨에 예의도 바른 편이었습니다. 처음 인사 오던 날 "장모님, 지은이 평생 고생 안 시키겠습니다"라며 큰절을 올리던 모습에 옥자 씨는 마음을 놓았습니다.

결혼식 날 옥자 씨는 혼주석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사돈댁은 양가 부모가 나란히 앉아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옥자 씨 곁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날 사위는 식이 끝나고 옥자 씨에게 다가와 손을 꼭 잡으며 "장모님 외롭지 않게 제가 아들 노릇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옥자 씨는 그 말 한마디에 혼자 딸을 키운 세월의 설움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작년 가을,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엄마, 우리 전세 계약이 끝나는데 집주인이 보증금을 2천만 원이나 올려 달래. 대출은 이미 꽉 차서 더는 안 되고... 이사 가려니 애 어린이집도 옮겨야 하고. 엄마, 미안한데 혹시 조금만 도와줄 수 있어?"

옥자 씨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미용실을 정리하며 받은 권리금과 그동안 모아 둔 돈을 합쳐 넣어 둔 정기예금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무릎 수술도 해야 하고, 혼자 살아갈 노후 자금이었지만 딸이 길바닥에 나앉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걱정 마라. 엄마가 보내 줄게. 대신 손주 어린이집은 옮기지 마라."

다음 날 옥자 씨는 은행에 가서 정기예금을 중도 해지했습니다. 이자 손해가 적지 않았지만 아깝지 않았습니다. 딸의 통장으로 2천만 원을 보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딸은 전화로 몇 번이나 "엄마, 고마워. 꼭 갚을게"라고 말했습니다. 옥자 씨는 "갚기는 무슨, 너 잘 살면 그게 갚는 거다"라고 웃어넘겼습니다. 그 말이 훗날 어떤 문자로 돌아올지, 그때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날 저녁 사위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장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꼭 효도로 갚겠습니다.] 옥자 씨는 그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그 뒤로 1년이 흘렀습니다. 옥자 씨는 혼자 사는 작은 아파트에서 연금과 남은 돈을 아껴 가며 살았습니다. 시장에 가면 떨이 채소만 골랐고, 겨울에도 보일러를 아껴 틀었습니다. 그래도 딸네가 무사히 전세를 지켰다는 사실 하나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사이 사위는 명절에 한 번, 어버이날에 한 번 얼굴을 비췄습니다. 올 때마다 손에는 홍삼 세트 같은 선물이 들려 있었고, 말끝마다 "장모님 덕분에 저희가 산다"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슬쩍슬쩍 "요즘 장모님은 연금이 얼마나 나오세요?", "미용실 정리하실 때 권리금은 꽤 받으셨죠?" 하고 묻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옥자 씨는 사위가 장모 살림을 걱정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올가을, 무릎 통증이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졌습니다. 병원에서는 양쪽 무릎 모두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술비와 입원비, 재활 비용까지 합치면 적지 않은 돈이 들었습니다. 옥자 씨는 딸에게 수술 날짜만 조심스럽게 알렸습니다.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습니다.

수술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옥자 씨의 휴대전화에 사위의 이름으로 긴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수술 잘 받으시라고 응원해 주려나 보다.' 옥자 씨는 돋보기를 쓰고 문자를 열었습니다.

[장모님, 지은이한테 수술하신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수술 잘 받으세요. 그런데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저희가 요즘 차가 너무 낡아서 이번에 바꾸려고 하거든요. 아이도 커서 큰 차가 필요하고요. 장모님 수술비는 실비보험에서 거의 나오실 테니 크게 부담 없으실 것 같은데요.]

[혹시 차 계약금으로 500만 원만 더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작년에 주신 2천은 그냥 결혼 선물 늦게 주신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어차피 나중에 장모님 노후는 저희가 모실 거니까, 미리 조금 당겨 쓴다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자를 읽어 내려가던 옥자 씨의 손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휴대전화가 손에서 미끄러져 방바닥에 툭 떨어졌습니다.

'작년에 준 2천은 결혼 선물 늦게 준 걸로 생각하겠다...?'

'수술비는 보험에서 나올 테니 부담 없을 것 같다...?'

'노후는 우리가 모실 거니까 미리 당겨 쓴다고 생각해 달라...?'

옥자 씨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30년 동안 남의 머리를 만지며 손목이 휘도록 번 돈이었습니다. 무릎이 망가지도록 서서 일해 모은 돈이었습니다. 그 돈을 1년 만에 '늦게 준 결혼 선물'이라고 정리해 버리고, 수술을 앞둔 장모에게 차 계약금을 내놓으라는 사위의 문자가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습니다.

"평생 고생 안 시키겠다"며 큰절을 올리던 그 사위가 맞나 싶었습니다. "은혜 평생 잊지 않겠다"던 문자는 고작 1년짜리 약속이었던 걸까. 무엇보다 옥자 씨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문자를 딸도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호가 몇 번 가더니 딸이 받았습니다. 옥자 씨가 사위의 문자 이야기를 꺼내자, 딸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엄마... 미안해. 나는 그 사람이 엄마한테 그런 문자 보낸 줄 몰랐어. 차 바꾸자는 얘기는 했는데 내가 안 된다고 했거든. 엄마 수술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정말 미안해, 엄마."

딸의 울음소리를 듣자 옥자 씨의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습니다. 적어도 딸은 엄마를 이용하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했습니다.

옥자 씨는 거울 앞에 섰습니다. 30년 동안 남의 머리를 매만지던 자신의 손등에는 굵은 주름과 파마약에 그을린 얼룩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 손으로 번 돈을 이 손으로 지키지 못한다면, 앞으로 남은 노후는 누구에게도 떳떳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옥자 씨는 눈물을 닦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습니다.

옥자 씨는 휴대전화를 다시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위에게 답장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욕설 한마디 없이, 그러나 단 한 글자도 흔들리지 않는 문장이었습니다.

[태민 서방. 문자 잘 받았네. 작년에 보낸 2천만 원은 결혼 선물이 아니라 내 무릎 수술비와 노후 자금을 헐어서 보낸 돈이네. 그러니 오늘부터 그 돈은 빌려준 돈으로 하겠네. 다음 달부터 매달 30만 원씩 내 통장으로 갚아 주게. 차용증은 지은이 편에 보내겠네.]

[그리고 내 노후는 내가 알아서 하겠네. 자네가 모시겠다는 말은 고맙지만, 장모 수술 앞에서 차 계약금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내 노후를 맡길 생각은 없네. 앞으로 우리 집 통장 이야기는 꺼내지 말게. 지은이와 손주는 언제든 환영이지만, 내 지갑은 오늘로 닫혔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자 가슴속에 얹혀 있던 무거운 돌이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몇 분 뒤 사위에게서 전화가 연달아 걸려 왔지만 옥자 씨는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은행에 전화를 걸어 남은 예금의 비밀번호를 바꾸고, 수술비를 자신의 이름으로 따로 묶어 두었습니다.

그날 밤 늦게 사위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장모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매달 꼭 갚겠습니다.] 옥자 씨는 짧게 답했습니다. [말보다 통장으로 보여 주게.]

다음 날 아침, 딸 지은이가 손주의 손을 잡고 광주까지 내려왔습니다. 손에는 직접 끓인 호박죽이 담긴 보온 통이 들려 있었습니다. 딸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엄마, 수술할 때 내가 옆에 있을게. 병원비는 내가 모아 둔 돈으로 조금이라도 보탤게. 그리고 그 사람 갚는 거, 내가 매달 꼭 확인할게."

옥자 씨는 딸의 등을 쓰다듬으며 웃었습니다. "됐다. 너는 그냥 엄마 딸이면 된다. 엄마 돈은 엄마가 지킬 테니, 너는 너희 살림이나 잘 지켜라."

세 사람은 작은 식탁에 둘러앉아 따뜻한 호박죽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손주가 숟가락을 들고 "할머니, 맛있어요" 하며 웃자, 옥자 씨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이어령 선생은 먼저 떠난 딸을 그리며 쓴 책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에서 딸을 향한 끝없는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부모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랑을 이용하려는 사람 앞에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주는 돈은 주는 순간 고마움이 되기도 하고, 당연함이 되기도 합니다. 고마움을 당연함으로 바꾸려는 사람에게까지 지갑을 열어 줄 필요는 없습니다. 내 노후를 내가 지킬 때, 자식과의 관계도 오히려 건강하게 지켜집니다.

일주일 뒤 옥자 씨는 딸의 손을 잡고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고, 회복실 창밖으로는 늦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다음 달 1일, 옥자 씨의 통장에는 사위의 이름으로 첫 번째 30만 원이 찍혀 있었습니다.

출처 :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Copyright © 책뭉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