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티모어의 강력계 형사였던 에드 번즈와 범죄 전문 기자였던 데이비드 사이먼이 작가로 참여하여 TV 시리즈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의 리얼리즘을 보여준 <더 와이어>는 벌써 첫 방영이 된지 22년이나 지나 슬슬 고전의 반열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미국 사회의 암면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더 와이어>의 영상은 여전히 충격적이고, 안타깝지만 여전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더 와이어>는 허구의 인물들과 스토리를 다루는 명백한 '픽션'이지만 그 화법은 논픽션에 가깝다. 극본부터가 번즈와 사이먼의 실제 경험이 상당수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논픽션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적인 톤 앤 매너가 비슷한 장르의 TV 시리즈(예를 들어 나 <하와이 파이브 오> 같은 범죄수사물)들과는 다르게 시종일관 상당히 건조하고 절제되어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심지어 장면에 스코어를 덧씌우지 않고 장면 내에 라디오 같은 음악 소스를 넣어 일상적으로 들리도록 하는 '소스 큐' 방식만 사용하는 등,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감정을 극적 연출을 통해 함부로 조작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더 와이어>의 배경이 되는 미국의 항구 도시 볼티모어는 드라마에 묘사된 것처럼 실제로도 절망적인 치안 상태를 보여주는 곳이다. 드라마 특성 상 볼티모어를 가능한 한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고, 실제로도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가급적 인위적인 세트 사용을 배제하고 볼티모어 로케이션 촬영을 주로 했는데, 조명 역시 우리 생활에 있을법한 가로등이나 방 안의 전등처럼 그 배경에 어울리는 일상 조명을 최대한 활용했다. 덕분에 과하게 오버라이팅하거나 언더라이팅하여 극렬한 명암 대비를 보여주는 극적인 샷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처럼 일상적인 톤을 드라마 내내 유지하고 있어서 TV 유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시청자와 드라마 배경 사이의 공간을 최대한 좁혔다.
또한 대부분의 극영상 매체에서의 카메라는 미리 그 자리에서 상황을 기다렸던 것처럼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더 와이어>의 카메라는 갑자기 발생한 상황을 '발견'한 듯한 현장성을 담는다. 예를 들어 조용하던 거리에서 갑자기 갱들 간에 총격전이 발생하는 장면을 보면, 카메라는 우연히 일어난 총격전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듯이 한 템포 느리게 움직인다. 그리고 총격전을 비현실적인 시점의 샷이 아닌 주로 도망치는 사람의 눈높이나 건물 안뜰, 혹은 창문에서 지켜보는 샷으로 찍은 덕에 시청자로 하여금 그 상황을 실제 목격한 듯한 인상을 준다.
볼티모어를 촬영할 때도 주로 초점 거리가 긴 렌즈를 주로 사용하여 거리 구석구석의 시각적인 디테일을 모조리 긁어모은 것이 인상적이다. 평범하게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구석에서는 약에 취해 뻗어있는 사람이 있고, 그리고 또 그 근처에서는 그 사람에게 약을 판 마약상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몽타주되어 볼티모어의 모습 전체를 완성한다. 이런 식으로 거리의 모습 하나 하나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엄연히 극의 주제를 완결시켜주는 요소로서 취급하면서, 드라마의 주제와 문제 의식을 볼티모어라는 사회 시스템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짓는다.

이렇듯 <더 와이어>는 볼티모어 경찰들이 범죄 집단을 잡기 위해 뛰는 메인 내러티브와 볼티모어라는 배경이 보여주는 또 다른 내러티브가 동시에 기능하는 셈이다. 극에 등장하는 경찰 캐릭터들과 갱단 캐릭터, 길거리의 군상들 하나하나가 나름의 목적과 성격을 지니며 분투하는, 어찌보면 전형적인 범죄 느와르에 가까운 내러티브도 나름 흥미롭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더 와이어>를 정말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은 바로 날것 그대로 보여지는 볼티모어의 암면이라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범죄 드라마로서 기본적인 재미를 놓치고 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리얼리즘 화법을 선택했다는 것이 꼭 극적 재미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직 경찰과 범죄 전문 기자가 각본에 참여한 덕에 디테일이 가히 변태적인 수준으로 살아있고, 이는 경찰들이 범죄 조직을 추적하는 과정 전반에 엄청난 현장감을 부여했다. 때문에 겉으로는 내용 상 큰 동요가 없어 보이더라도 속에서는 길고 집요한 추적 과정에서의 들끓음이 감정적으로 확실히 느껴진다. 그렇기에 길고 긴 추적 끝에 이어지는 공허함과 좌절감이 더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LISTEN CAREFULLY
정해진 각본대로 연출하는 영화나 TV 시리즈는 장르상으로는 당연히 픽션에 해당되지만 실제로는 논픽션인 언론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간혹 너무 고루하고 심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다큐멘터리나 뉴스에 비해, 픽션 본연의 극적 재미를 보장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고심과 비판도 수반하는 리얼리즘 픽션은 가장 대중 친화적으로 사회 문제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디어에서 리얼리즘은 음지의 사회 문제를 객관화하여 사회적 담론으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좋은 수단이 되어왔다.
그리고 <더 와이어>가 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리얼리즘을 차용한 대표적인 예시이다. 때로는 선인이 악한 행동을 하거나 악인이 선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대체 누가 선이고 악인지도 알아볼 수 없는 지옥같은 볼티모어를 내러티브에 그대로 녹여내서 계층, 인종, 마약, 부패한 공권력 등 그간 잘 다뤄지지 않았던 사회 문제들에 대한 수많은 토론과 연구를 촉발시켰다. 배경이 시즌 내내 볼티모어로 한정되어 있음에도 <더 와이어>의 주제가 지구 전체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드라마가 볼티모어 속에서 다루는 것들이 결국은 모든 인간 사회가 공유하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 의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여전히 명작 드라마를 논할 때 항상 언급되는 드라마지만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적이었던 <더 소프라노스>에 비하면 방영 동안의 주목도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선과 악의 구분이 미미하고, 내내 과장없는 건조한 연출이 이어지며, 기승전결의 통쾌함이 약한 <더 와이어>의 리얼리즘은 아무래도 주류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다른 주류 드라마들이 영웅과 승리에 대한 판타지로 현실에 대한 당장의 갈증만 채워주는 대신, <더 와이어>는 더 깊고 현실적인 공간으로 들어가서는 변화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의 연쇄적인 실패에 대한 이야기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때로는 호소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썩어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해답을 찾기 시작할 때 이 드라마의 진짜 가치가 밝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