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혁 부상 안고 세계육상선수권 2위! 값진 은메달 획득!

부상을 안고도 2m34를 넘은 우상혁의 은메달은 기록보다 값진 이야기다. 그는 대회 한 달여 전 종아리 근막이 손상되는 진단을 받았고, 예선 뒤엔 발목까지 부어 올라 제대로 뛸 수 있을지조차 걱정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을 접고 재활과 컨디션 만들기에 올인했고, 도쿄 국립경기장에 섰다. 예선에서 2m16 첫 시기가 흔들렸지만 곧 감을 되찾아 2m25로 결선을 밟았고, 결선에서는 2m20·2m24를 첫 시도에 가볍게 넘겼다. 2m28에서 한 번 걸렸을 때도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2차에 바로 정리했고, 2m31 역시 2차에 유일하게 성공하며 순위를 끌어올렸다. 승부는 2m34부터였다. 1·2차를 놓친 뒤 마지막 3차에서 “가자”를 외치고 달려들어 바를 깨끗이 넘겼다.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왜 그가 ‘스마일 점퍼’인지, 왜 팬들이 그를 믿는지 설명이 됐다.

하지만 금메달을 향한 문은 끝내 해미시 커가 지켰다. 커는 같은 2m34를 통과한 뒤 2m36을 1차에 꽂아 넣었다. 우상혁은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높이를 2m38로 올려 대역전을 노렸다. 한국 신기록에 해당하는 높이, 두 번의 기회를 모두 걸었지만 이번에는 바가 흔들리지 않았다. 결과는 은메달. 숫자만 보면 2cm 모자랐지만, 경기를 따라온 사람이라면 안다. 이날 은메달은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는 부족한, 말 그대로 ‘버텨낸’ 메달이었다.

이 은메달이 더 특별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 그는 이미 2022년 유진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실외 세계선수권에서 두 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리 육상 역사에서 보기 드문 꾸준함과 재도전의 기록이다. 둘, 올 시즌 그의 흐름을 생각하면 이 결승은 ‘완성’에 가까웠다. 체코·슬로바키아 실내 대회, 난징 실내 세계선수권, 구미 아시아선수권, 로마·모나코 다이아몬드리그까지 나간 7개 국제대회에서 줄줄이 우승을 챙겼다. 파리 올림픽 7위의 아쉬움을 그렇게 씻어냈고, 도쿄에서는 부상 변수를 안고도 시즌 공동 세계 1위 높이(2m34)에 다시 올라섰다. 이건 단순한 컨디션 반등이 아니라, 큰 무대에서 스스로를 다루는 법을 배운 선수의 성장이다.

경기 운영에서도 그 답이 보였다. 초반 높이에서 쓸데없는 힘을 쓰지 않았고, 실패가 나왔을 때도 리듬을 잃지 않았다. 2m31에서 “여기서 앞서야 한다”는 판단이 정확했고, 2m36에서 뒤졌을 때 2m38로 승부수를 던진 선택도 명확했다. 이건 무모함이 아니라 ‘이겨 보려는’ 선수의 용기다. 성공했으면 금, 실패해도 은이었다. 한국 육상은 가끔 “안전한 선택”에 머물다 기회를 놓쳤다. 우상혁은 그 흐름을 바꿨다. 이 정도 자신감과 판단은 팀 전체의 기준을 끌어올린다.

우상혁을 이야기할 때 늘 따라붙는 말이 있다. “도쿄에서 31위로 출발해 2m35로 4위가 됐다”는 2021년의 반전 서사다. 그 뒤로 그는 반짝이 아니라 길게 지는 햇빛처럼 무대를 달궈 왔다. 식단과 체중을 극단적으로 관리했고, 기술 훈련을 쌓았고, 무엇보다 마음을 다듬었다. 그래서 그는 늘 웃는다. 웃는다고 해서 마음이 가벼운 건 아니다. 웃을 수 있을 만큼 준비했다는 뜻이다. 이번에도 그 웃음은 “후회 없다”는 말과 함께였다. 결선 직후 “훈련을 끝까지 못 했는데 메달을 딴 건 기적 같다”는 그의 인터뷰는 쇼맨십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의 은메달은 개인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 육상에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첫째, 부상 관리는 결과 그 자체다. 도쿄 전까지 40일 가까이 점프를 못 했다는 건 몸이 ‘멈춰 달라’고 낸 신호다. 그럼에도 컨디션을 다시 끌어올리고 경기 당일의 선택을 정확히 했기에 은메달이 가능했다. 우리 육상은 더 세밀한 의무·재활·피로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둘째, 큰 대회에서의 경기 운영을 데이터화해야 한다. 몇 차 시기에서 성공했을 때 순위가 어떻게 바뀌는지, 라이벌이 어느 높이에서 실패하는지, 다음 선택이 기대값을 얼마나 바꾸는지. 감각과 경험에 더해 숫자로 뒷받침될 때 우승 확률이 올라간다. 셋째, 라이벌리의 힘을 살리자. 우상혁과 커의 맞대결은 서로를 끌어올린다. 내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2027년 베이징 세계선수권, 2028년 LA 올림픽까지 이 스토리는 계속될 것이다. 연맹과 팀은 그 흐름을 국내 팬 경험으로 연결해야 한다. 중계의 디테일, 현장 이벤트, 키즈 육상 연계 프로그램까지 ‘보는 재미’를 넓혀야 이 성과가 다음 세대의 출발선이 된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은메달을 “또 은메달이네”가 아니라 “다시 여기까지 왔네”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2cm 차이는 아쉽지만, 2cm를 좁히는 길은 보였다. 부상을 치유하고, 시즌 피크를 조금만 더 뒤로 가져오고, 2m36에서 1차에 꽂을 확률을 10%만 올리면 된다. 그는 이미 방법을 아는 선수다. “오늘까지만 만족하고 내일부터 다시 달리겠다”는 말은 멋진 인사말이 아니다. 그가 늘 해오던 방식의 재확인이다.

우상혁은 다시 신발끈을 조여 맬 것이다. 아이치·나고야에서 태극기를 두르고 웃는 장면, 베이징에서 세계 챔피언을 노리는 장면, LA에서 마지막에 바를 흔드는 장면을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의 점프는 높이만 올리는 게 아니다. 한국 육상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기준선 자체를 올린다. 그래서 이번 은메달은 값지다. 기록표엔 2m34, 메달 색은 은이지만, 내용은 금처럼 빛난다. 팬들이 해 줄 일은 단순하다. 오늘의 박수를 아끼지 말고, 내일의 훈련을 믿어주는 것. 우상혁은 그 믿음을 결과로 갚아 온 선수다. 그리고 우리는 방금, 또 한 번 그 증거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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