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문'에서 '월드컵 영웅'으로… 조용형은 그 마음안다 [나에게 월드컵이란④]

이재호 기자 2022. 11.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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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11월 21일(이하 한국시간) '세계인의 축제' 2022 카타르 FIFA 월드컵이 개막한다. 한국 대표팀은 11월 24일 우루과이와의 H조 1차전부터 월드컵을 시작한다.

스포츠한국은 월드컵을 앞두고 매주 '특집-나에게 월드컵이란'이라는 코너를 통해 월드컵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스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월드컵이 자신에게 가지는 의미와 월드컵을 앞둔 후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4편의 주인공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풀타임 주전으로 뛰며 한국 축구 역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을 이끈 수비수 조용형(39)이다.

1편 : 구자철, '응어리' 진 월드컵을 말하다 [나에게 월드컵이란①]
2편 : '이태리전 동점골 주인공' 설기현 "그때 먹은 욕 덕분에…" [나에게 월드컵이란②]
3편 : 이천수에게 월드컵은 '목숨'을 걸어야하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월드컵이란③]
4편 : '자동문'에서 '월드컵 영웅'으로… 조용형은 그 마음안다 [나에게 월드컵이란④]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조용형의 모습.ⓒAFPBBNews = News1

▶기쁨과 절망, 아쉬움이 공존한 월드컵

2005년 프로에 혜성같이 데뷔해 K리그 최고 신인으로 군림한 조용형은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4명으로 짜여지는 중 수비수 쿼터에서 순위 밖으로 밀려 아쉽게 월드컵 출전이 불발됐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에게는 '다음'이 더 기대됐고 그렇게 2010 남아공 월드컵이 찾아왔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제가 마지막까지 월드컵 주전으로 뛸지 몰랐다고 하시는분도 계시는데 솔직히 대표팀 내에서는 저를 중심으로 나머지 중앙 수비 조합을 찾는 작업을 월드컵 예선 내내 했었어요. 아마 경기 출전 기록을 찾아봐도 전 대부분 선발로 나왔어요(최종예선 8경기 중 6경기 선발). 선수들도 예선을 거치면서 뛰다보면 스스로 팀내 입지나 월드컵에서 얼마나 뛸지 자기가 먼저 알게 되죠. 김형일, 이정수, 곽태휘, 강민수 등 많은 선수들이 계속 저와 호흡을 맞추다 마지막에 이정수로 저와 중앙 수비 조합이 확정됐죠."

첫 경기는 그리스전이었다. 이정수와 박지성의 골로 2-0 승리. "그리스 공격수들이 체격과 몸싸움이 좋다보니 제가 못나올거라는 예상이 많았죠. 하지만 체격 큰 공격수를 상대할 때 오히려 편했어요. 제가 피지컬은 부족해도 세컨드볼 낙하지점을 잘 잡고 위치선정이 좋았거든요. 게다가 그리스는 강하지 않았어요. 많은 분들이 그날 보여준 저의 육탄방어와 수비에 찬사를 보내셨는데 정말 뿌듯했던 경기였죠"라고 밝힌 조용형은 1차전 승리 후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2차전은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이 이끌고 리오넬 메시가 최전성기였던 아르헨티나와 맞붙어 1-4 대패를 당한다. "아르헨티나는 정말 엄청났죠. 아직도 기억나는게 경기 후 라커룸에 왔는데 '난 정말 우물안 개구리였구나'하는 생각에 자괴감마저 들었죠. 아르헨티나는 수준이 달랐고 세계의 벽을 절감했죠. 그건 저만의 생각이 아니었어요.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고 패배 후 라커룸이 쥐죽은 듯 조용했던 기억이 잊히질 않네요"라고 아르헨티나전 대패를 떠올렸다.

아르헨전 '세계의 벽'을 절감했던 조용형. ⓒAFPBBNews = News1

1승1패인 상황. 한국은 이제 패배하며 16강 진출이 좌절되는 상황에서 3차전 나이지리아전에 나섰다. "나이지리아전은 기억나는게 경기장 입장전에 터널에서 나이지리아 선수들과 서는데 그쪽 수비수 한명(대니 시츄로 추정)이 정말 머리가 옆으로 하나 더 있는 크기에 발볼도 터질 듯이 엄청 큰 살아생전 보지 못한 피지컬이더라고요. 그래서 솔직히 잔뜩 긴장했는데 막상 해보니 축구는 해볼만했죠"라고 웃는 조용형은 "아프리카 선수들은 확실히 기세를 타면 위험하더라. 늘 아프리카팀은 어려웠다. 그때도 극적으로 비겨 16강을 갔고 세상 모든걸 얻은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3차전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2-2로 비기며 1승1무1패로 16강에 올랐다. 16강 상대는 이번 월드컵 한국의 첫 경기 상대이자 당시 떠오르던 루이스 수아레즈가 있던 우루과이. "솔직히 우루과이는 선제 실점을 했을 때도 '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모두가 갖고 뛰었어요. 그만큼 강하지 않았어요. 우루과이가 이후 4강까지 가는걸 보고 '이겼으면 우리가 4강 갔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라며 "상대적으로 수아레즈는 존재감이 없었어요. 근데 딱 두 장면, 골을 넣을 때 두 번 보이더라고요. 그게 스트라이커인거죠"라며 1-2 아쉬운 패배를 떠올렸다.

남아공 월드컵 당시 루이스 수아레즈를 막는 조용형. ⓒAFPBBNews = News1

▶4년반 뛰어본 카타르 1세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조용형은 카타르로 이적한다. 중동 진출 1세대격 선수. 조용형의 성실함에 반한 카타르는 지금까지도 한국 선수들을 꾸준히 영입해 활용하고 있다. 카타르에서 4년반이나 뛴 선수로서 카타르의 지금은 어떤 환경인지 궁금했다.

그는  "중동을 오해하시는데 이맘 때는 딱 한국의 지금 날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래바람이나 죽을 것 같은 온도는 상반기쯤의 얘기다. 6개월 죽을 듯이 덥고, 6개월 괜찮은 게 중동 날씨다"라며 "아마 선수들도 한국 날씨와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거다. 피파가 굳이 11월에 월드컵을 하는것도 이런 날씨 때문이다. 냉정하게 날씨는 핑계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한국 선수들이 제일 못하는게 바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다. 다른 나라, 다른 집단에 가면 잘 적응을 못한다. 지금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지만 전국 최고의 어린선수들이 와도 처음엔 서먹서먹해서 가진걸 반도 못 보여준다. 캠프가 끝날 때쯤 되면 실력을 보여주는데 이미 늦다"라며 "이제 적응할 것 같으면 대회는 끝나있다. 심지어 이번에는 카타르 도착 열흘도 안돼 곧바로 월드컵이 시작한다. 빨리 죽을힘을 다해 새로운 환경인 카타르, 월드컵에 빠르게 적응해야만 한다"고 충고했다.

ⓒAFPBBNews = News1

"2010 남아공 월드컵의 경우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같은 베테랑 선수들이 중심을 잡아줬어요. 영표형과 두리형은 긴장을 풀어주려하고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빨리 적응할 수 있게 해줬죠. 솔직히 주장이었던 지성이형은 별말이 없었어요. 허정무 감독님과 비슷한 스타일이었죠. 하지만 분명한건 지성이형은 경기장에서 모든 선수들 중에 가장 열심히 뛰었어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가 경기장에서 가장 열심히 뛰는데 우리가 뭐라고 안뛸수 있겠나요. 그게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었죠."

▶욕받이 타켓된 선수들의 마음 알아… 결국 보여줘야

사실 조용형은 월드컵 시즌이면 찾아오는 '욕받이' 중 한명이었다. 대회 전만 해도 그의 별명은 '자동문'이었다. 수비수가 자동으로 문을 열어주듯 실점한다는 악평이었다. 특히 평가전 등을 거치며 비난의 수위가 세졌다.

조용형은 "'자동문'이니 '허용형(허정무 감독의 아들이라는 오명)'이니 하는 말들이 저를 따라다니면서 월드컵을 준비할 때 제 마음속에는 딱 하나밖에 없었어요.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다짐뿐이었죠. 이를 갈고 준비했고 내가 그런 선수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내겠다는 다짐으로 월드컵을 보냈죠"라고 당시의 마음을 회상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육탄방어로 욕받이에서 영웅이 된 조용형. ⓒAFPBBNews = News1

"지금도 아무 이유없이 축구팬들과 여론의 타겟이 된 선수들이 있잖아요. 뭘 해도 욕먹고 똑같이 실수해도 더 비난받는 선수들 말이에요. 전 그 선수들이 더 눈에 밟히고 신경이 쓰여요. 제가 그랬잖아요. 솔직히 너무 힘들걸 아는데 또 경기하기 전까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해요. 냉혹하지만 선수들이 보여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한 댓글을 봤다는 조용형. '2018 김영권이랑 2010 조용형이 비슷하다'는 요지였다. 정말 그렇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김영권도 중국화 논란 등으로 큰 비난을 받았지만 월드컵 활약으로 영웅으로 거듭났고 '까방권(까임 방지권)'을 얻었다. 월드컵 전만해도 욕받이의 대상이었다가 영웅이 됐을 때의 마음은 어떨까.

"저 역시 월드컵을 마치고 귀국하니 지나가는 분들마다 알아봐주시고 '수고했다'며 악수를 건네시더라고요. 음식점에서는 밥도 공짜로 먹으라고 하시고. 살면서 언제 그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월드컵 전에 그렇게 욕했던 분들에 대한 원망보다 '다행이다'라는 마음으로 악수를 받게 되더라고요. 그게 월드컵에 나서는 선수들의 숙명이죠."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은퇴식을 가진 조용형. ⓒ프로축구연맹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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