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의 기다림 끝에, 한 무대에 선 모녀
12월, 도쿄 힐튼호텔에서 열린 정재은 디너쇼. 이 공연은 정재은에게 있어 단순한 25주년 기념 무대가 아니었다.

어릴 적 이혼 후 단 세 번밖에 만나지 못했던 어머니, 가수 이미자와의 첫 합동 무대였던 것이다.
“오늘 제 기분은 눈부시고 따뜻한 봄날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정재은의 이 말 속에는, 어린 시절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수십 년간 말하지 못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날 무대 위엔 가수로서도, 딸로서도 오랜 기다림 끝에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이 있었다.

관객을 향해 “나의 대선배이자 엄마, 이미자를 무대로 모시겠습니다”라는 멘트를 전하던 정재은의 목소리는 떨렸고, 이미자가 등장하자 객석은 환호로 가득 찼다.
“딸 앞에서 노래하는 게 처음이라 더 떨립니다.”
이미자도 감정을 억누르며 무대에 섰다. 서로에게 처음 부르는 노래, 처음 건네는 시선. 수많은 음표와 박수 소리 속에서도 모녀의 말 없는 대화로 가득 찼다. 이들의 기구한 사연은 이랬다.
'비정한 모성'이라는 말, 그 너머의 이야기
정재은이 두 살 때, 이미자는 남편인 정진흡의 폭력으로 인해 이혼하고 말았다.

그리고 1970년, KBS 방송위원이자 PD였던 김창수와 재혼해 전처소생의 두 딸을 거두고 아들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첫째 딸인 정재은에게는 오랜 세월 무정한 어머니로 남아 있었다.
이후 딸과는 왕래가 거의 없었고, 오랜 시간 서로를 그저 '기억 속 존재'로만 남겨둔 채 살아야 했다.

시간이 흐르고, 정재은이 가수로 자리 잡은 후에도 여전히 어머니 이야기는 쉽지 않았다.
“유명한 어머니가 부담스러웠고, 나로 인해 상처 받을까 두려웠다.”
그녀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엄마의 그림자를 멀찍이 두고 살아왔다. 2000년 초반까지 이미자와 정재은은 3번밖에 마주치지 못했을 정도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

유명한 일화가있다.
정재은이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이혼했던 상태였는데 이미자를 공항에서 마주쳤다.
이미자는 그런 딸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잘 살지 그랬니...”라는 말을 남겼고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둘을 그렇게 또다시 헤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2019년 이미자의 60주년 콘서트에 정재은이 찾아가면서, 모녀는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에서의 듀엣 무대는, 단순한 협연이 아닌 오랜 세월을 비워낸 자리였다. 이미자는 “외롭게 살게 한 세월,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마지막 무대, 끝이 아닌 전통의 바통

이미자는 최근 ‘은퇴’라는 단어 대신 ‘마지막 무대’라는 표현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공연을 마무리했다.
'전통 가요 헌정 공연 – 맥(脈)을 이음'이라는 이름처럼, 자신의 노래 인생을 정리하면서도 그 의미를 후배 가수들에게 넘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 무대엔 주현미, 조항조, 김용빈 등 후배들이 함께했고, 마지막 곡으로는 평생을 함께했던 ‘동백 아가씨’가 울려 퍼졌다.
관객들과 함께 부르는 ‘섬마을 선생님’, ‘내 삶에 이유 있음은’은 단지 추억의 노래가 아닌, 전통 가요에 담긴 정서와 삶의 무게를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딸 정재은도 엄마의 마지막 무대에 서서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의 공연은 분명 ‘마지막’이었지만, 이미자와 정재은 두 사람이 나눈 손끝의 울림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건 어쩌면, 멀고도 가까웠던 두 사람의 인생을 위로하는 단 하나의 무대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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