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먼 귀성길<상>] "고속버스도 없고…" 명절 이동 포기하는 장애인들
2019년 휠체어 고속버스 시범사업 시행됐지만
4년 만에 전노선 폐지
"명절 고향집 방문은 포기…자가용 없이 시외 이동 어려워"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A씨는 명절에 고향을 찾지 못한 게 수년째다. 사람 많은 귀성길에 휠체어를 탄 채 대중교통으로 시외를 이동하기란 쉽지 않다. 휠체어도 탑승할 수 있는 고속버스가 서울과 몇몇 도시를 잇는 노선에 배치됐지만 이마저도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다. 최대 5일까지 쉴 수 있는 황금연휴지만 A씨는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전남 곡성이 고향인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도 수도권에 올라온 지 40년이 돼가지만 명절에 고향을 찾은 적은 손에 꼽는다. KTX를 타고 광주에 내리는데 역에서 곡성 고향집까지도 거리가 멀어 이동이 쉽지 않다. 기차 한편에 전동휠체어석도 두 석 정도에 불과해 예매가 힘들 때가 있어 명절이 지나서야 KTX를 타거나 지인의 차를 얻어 타고 방문한다.
명절마다 자유로운 이동에 대한 장애인들의 마음은 더욱 간절해진다. 몇몇 장애인들이 해마다 명절 때면 서울역과 용산역 등을 찾아 시위를 하는 것도 이동권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다. 이들의 오랜 염원에 힘입어 국토교통부는 2019년 10월 휠체어도 탑승할 수 있는 고속버스 서비스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서울-부산(3대), 서울-강릉(2대), 서울-전주(2대), 서울-당진(3대) 등 4개 구간에 총 10대의 고속버스가 휠체어 탑승이 가능하도록 개조돼 운행을 시작했으나 지난해 4월을 끝으로 현재는 모두 운행이 중단됐다. 저조한 이용률이 이유였다.
서울과 부산, 강릉, 전주의 3개 노선에는 이미 KTX가 운행되고 있었기에 장애인들 입장에서도 시간이 더 소요되는 버스를 이용할 필요성이 부족했다. 버스 개조 비용도 들고, 또 휠체어석이 생기면 일반석 숫자가 줄어들어 운영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어 버스회사의 참여도 저조했다고 한다. 비행기도 장애인들이 탑승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이지만 이용이 쉽지만은 않다. 공항이 있는 도시여야 이용할 수 있는 데다 비행기 통로가 좁아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기내용 휠체어로 옮겨타야 할 때가 있고, 전동휠체어의 배터리가 종종 문제 되기도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장애인들에게 기차는 가장 현실적 이동 수단이다. 코레일은 설이나 추석 승차권을 판매할 때 교통약자들이 우선 예매할 수 있도록 일반석에 앞서 별도 예매를 우선 진행한다. 올해 추석 승차권은 8월 19~22일 나흘간 진행됐는데 교통약자는 19~20일 이틀간 별도로 실시됐고, 21~22일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했다. 다만 KTX에는 열차 한 편당 전동휠체어 2석, 휠체어 3석을 운영 중이어서 인기 노선의 경우 명절 예매가 쉽지 않을 때가 있고, 역에서 고향집까지 이동도 쉽지 않다고 몇몇 장애인들은 토로했다.
게다가 출발 15분 전에는 승강장에 도착해 휠체어 리프트 신청을 해야만 탑승할 수 있는 것도 애로사항으로 꼽힌다. 정다운 전장연 정책실장은 "15분 전에 도착해서 리프트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승차를 거부하는 사례가 있다. 이 또한 차별에 해당한다"며 "역무원 인력이 적으니 리프르 지원을 위해 승강장으로 이동하는 업무가 번거롭거나 추가 업무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실제 리프트를 이용해 탑승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는데 15분 전 미리 신청하지 않으면 못 탄다고 승차를 거부하거나 꾸짓듯 혼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고 설명했다.
장애인 콜택시가 지난해 12월부터 광역 운행을 시작했으나 수도권 내에 한정된 이야기고, 대기 시간도 길뿐더러 야간에는 이용이 어렵다고 한다. 권달주 대표는 "충청도를 예로 들어 세종이나 대전은 지역에 사는 지인이 역으로 와서 픽업을 해주거나 하는데 태안 이런 곳을 가려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번은 군산을 갔는데 KTX 타고 천안 아산에서 환승해서야 도착할 수 있더라. 시간도 엄청 걸리고 환승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많이 불편했다. 시간대도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당장의 불편함보다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차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휠체어 버스가 폐지된 것과 관련해서 정 실장은 "전 노선에 대한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시외로 이동할 수 있다는 생각할 수 없는 삶"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자가용 없이는 시외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포기를 한다. 권리가 보편화되지 않았다"라고 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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