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T로스만스가 지난해 11월 한국에 첫 선보인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가 경고 문구와 유해성 표시 없이 일부 온라인 쇼핑몰에서 버젓이 판매돼 논란이 일고 있다. 회사는 출시 당시 ‘청소년 흡연 예방’을 경영 철학으로 내세웠지만 액상형 전자담배를 통한 미성년자 흡연 유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 약속은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다국적 담배기업 BAT로스만스가 지난해 11월 국내에 출시한 합성니코틴 담배 ‘노마드 싱크 5000’은 여전히 각종 온라인몰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쇼핑몰은 ‘온라인 판매 금지 상품’이라는 안내 문구와 '국내외 공급처를 통한 100% 정품 액상' 임을 강조하며 판매하고 있었다.
노마드는 BAT그룹이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공식 출시한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다. 전세계 175개국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BAT그룹은 한국 법인 BAT로스만스를 통해 담배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연초 잎을 원료로 한 제품만 담배로 규정해 합성니코틴 액상은 법적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청소년에게 판매해도 처벌 규정이 없고 세금과 부담금도 부과되지 않으며, 온라인 판매·유통사별 할인도 가능하다. BAT가 세계 최초로 ‘노마드’를 한국에 출시한 것도 이러한 규제 사각지대를 겨냥한 결과다. 미국, 호주, 유럽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35개국은 합성니코틴 액상 전자담배를 담배에 준해 규제하고 있다.
이 같은 소식에 국내에서 미성년자 노출 우려 및 유해성 논란이 불거지자 BAT는 ‘청소년 보호 원칙’을 내세우며 자율 규제안을 발표했다. △온라인 판매 중단 △천연니코틴 담배 수준의 경고 문구·그림 부착 △제품명이 청소년에게 어필되지 않도록 관리 등을 약속했다. 합성니코틴 업계의 일반적 관행을 뛰어넘어 국내 담배 규제를 자율 준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제품이 경고 문구와 그림도 없이 온라인에서 유통되면서 BAT의 약속은 공염불에 그쳤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중소 소매업체가 온라인 판매할 경우 '회사가 청소년 보호 마케팅 원칙을 지키도록 하겠다'는 방침도 사실상 지켜지지 않았다. 담배업계 한 관계자는 “소매업체 개별 유통까지 모두 통제하기는 어렵지만, 본사의 강력한 대응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것은 청소년 보호 책임을 소홀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BAT가 경영 철학으로 내세운 ‘청소년 건강 보호와 흡연 예방’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회사는 미성년자의 니코틴 제품 접근 차단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업 전반에서 책임 있는 운영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평해왔다. 그러나 합성니코틴은 오히려 청소년의 담배 진입 장벽을 낮추는 만큼, 온라인에서 무분별하게 유통될 경우 흡연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 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2019~2023년 담배 제품 중복 사용 경험이 있는 청소년의 32%가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합성니코틴의 유해성까지 확인되면서 BAT를 향한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연구에서 합성니코틴 원액에서 발암성과 생식독성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물질이 다수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담배사업법 개정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제도 공백이 이어지는 만큼, BAT가 약속한 자율 규제를 스스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소년 보호를 강조해온 BAT가 정작 무분별 담배 온라인 유통에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관계자는 “합성니코틴 전자담배 업계는 그동안 원액이 덜 해롭다고 주장했지만 연구 결과는 이를 정면으로 뒤집었다”며 “법적 규제가 미비한 상황일수록 BAT 같은 대기업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청소년 보호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리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