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 “입 열면 세상 뒤집혀”…대통령실 “윤, 조언 들을 이유 없어”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가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여러 차례 만나 정치적 조언을 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분의 조언을 들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8일 공식적으로 반박했다. 명씨가 ‘검찰이 나를 구속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한달 안에 탄핵된다’고 할 때만 해도 “신빙성이 없다”, “대응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던 태도를 바꿔 적극적인 해명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거짓이 다시 나오면 가진 모든 수단을 통해 거짓을 입증하겠다”고 대통령실의 ‘거짓 해명’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하는 등 파문이 더욱 확산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실은 이날 밤 대변인실 명의의 언론 공지를 내어,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정치인들을 통해 명씨를 만나게 됐다”며 “2021년 7월 초, 자택을 찾아온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가 명씨를 데리고 와 처음으로 보게 됐다. 얼마 후 역시 자택을 방문한 국민의힘 정치인이 명씨를 데려와 두번째 만남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명씨를 사저에서 만난 이유는 “당시 두 정치인이 보안을 요구했기 때문이며, 명씨가 대통령과 별도의 친분이 있어서 오게 된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실은 또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막바지쯤 명씨가 대통령의 지역 유세장에 찾아온 것을 본 국민의힘 정치인이 명씨와 거리를 두도록 조언했고, 이후 대통령은 명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기억한다”며 “당시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많은 분들로부터 대선 관련 조언을 듣고 있었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분의 조언을 들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앞서 명씨는 7일 나온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서울 서초동 사저를 여러 차례 방문해 정치적 조언을 했고, 자신이 2021년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 당선에 큰 역할을 해 윤 대통령이 사람을 보내 만나게 됐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자신이 윤 대통령과 안철수 의원의 단일화를 성사시켰다는 주장도 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명씨를 사저에서 만난 것은 인정하면서도 횟수나 이유, 경위는 확인해주지 않았었다.
그랬던 대통령실이 태도를 바꿔 적극적으로 ‘방어막 치기’에 나선 건, 명씨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내가 구속되면 대통령이 탄핵될 만한 내용을 폭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명씨는 8일 나온 제이티비시(JTBC) 인터뷰에서도 “아직 내가 했던 일의 20분의 1도 나오지 않았다. 입을 열면 세상이 뒤집힌다”며 “(윤 대통령 취임 뒤에도) 통화와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이어갔다”고 주장했다. 또 “대선 때 내가 한 일을 알면 모두 자빠질 것”이라며 “내가 들어가면(구속되면) 한달 안에 정권이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명씨는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창원지검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명씨가 구속을 피하려고 윤 대통령 부부와 관련한 어떤 의혹이든 제기하는 ‘벼랑 끝 전술’을 펴고 있다고 본다.
명씨는 8일 방송된 채널에이 인터뷰에서 전날의 ‘탄핵’ 언급이 “농담이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발언의 여파가 커지자 서둘러 수습에 나섰거나, 자신의 발언이 겨냥했던 상대의 반응을 지켜보며 ‘치고 빠지기’ 전략을 펼치는 것으로 풀이될 만한 행동이다.
대통령실은 창원지검이 진행 중인 명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 수사에도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창원지검은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이 공천 대가로 명씨에게 9천여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지난달 30일 명씨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해 명씨의 휴대전화와 태블릿피시 등 6대가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이 휴대전화 등이 공천 개입 의혹 등을 보여줄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한 의원은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섣불리 대응하기가 어렵다. 일단 지켜보는 거 말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동훈 대표는 페이스북에 명씨를 “정치브로커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인물로 표현하면서 “이런 구태정치를 극복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정치의 출발”이라고 적었다.
대통령실의 해명에도 파장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준석 의원은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발로 윤 대통령과 명씨의 연결고리가 자신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고위 관계자로 인용하는 사람이면 정진석 비서실장쯤 될 텐데 말조심하라”고 반발했다. 윤 대통령이 명씨를 경선 때 만난 뒤 바로 소통을 끊었다고 설명한 대목을 두고는 “이후 소통을 끊어요? 이것도 확인해 볼까요?”라며 사실이 아니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윤 대통령과 안철수 의원의 단일화 과정에서 명씨의 역할을 두고는 “명 사장이 어느 쪽의 요청으로 그런 일을 했는지 잘 알면서 장난치지 말라”며 “추후 거짓이 다시 나오면 가진 모든 수단을 통해 거짓을 입증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경선 이후 윤 대통령이 명씨와 연락을 끊었다고 했지만, 명씨가 윤 대통령 당선 뒤인 2022년 9월 김 여사와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라며 갈무리(캡처)본을 공개한 내용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경선 이후 명씨와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고 “기억한다”는 대목도 찜찜함을 남긴다.
야당 쪽에선 명씨가 ‘제2의 최순실’이 될 수도 있다고 보고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 명씨가 인사 추천이나 정책 건의 등의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명백한 국정농단”이라며 “명씨의 주장이 허풍인지 사실인지, 뭔가 증거가 있는 것인지 등을 검찰이 빨리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2024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2022년 김영선 전 의원의 재보선 공천이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에게 무상으로 여론조사를 제공한 대가’라는 김 전 의원의 측근 강혜경씨의 증언을 거론하며 “사실이라면 현직 대통령 부부가 공천 장사를 했다는 거고, 명태균이 윤 대통령에게 여론조사를 무상 제공했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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