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 아침부터 차례상 차리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니 정오가 훌쩍 넘어 있었다. 이제 친정에 가려고 서두르는데 시어머니가 갑자기 걸음을 막아섰다. 아들은 회사 일로 피곤해서 뼈마디가 쑤신다는데 어딜 데려가려 하느냐고, 아들은 여기 두고 혼자 버스 타고 다녀오라는 말이었다.

남편에게 도움을 구하려 눈짓을 보냈지만, 남편은 어제 운전하느라 피곤하다며 엄마랑 집에서 쉬겠다고 했다. 장모님 댁에는 나 혼자 다녀오면 되지 않느냐는 말투였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태도를 마주하니 말문이 막혔다.

혼자 버스 타고 다녀오라는 말을 들었다
시어머니는 한 술 더 떠서 아들은 집에 끼고 있으면서 남의 귀한 딸은 일만 시켜놓고 혼자 버스나 태워 보내려 했다. 나는 억울한 마음에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그대로 전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친정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친정엄마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제 아들은 귀하게 끼고 있으면서 내 귀한 딸은 일 다 시켜놓고 그 집구석이 아주 내 딸을 식모 취급을 하는구나." 전화 너머로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내가 이 집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실감이 났다.

친정엄마가 전화로 직접 따졌다
시어머니는 물러서지 않았다. 정아가 연락이 안 된다며, 빨리 돌아와서 밥을 해줘야 하는데 아직도 거기 있는 거냐고 다그쳤다. 그 말에 친정엄마가 참았던 걸 터뜨렸다. "다음 설날에도 추석에도 내 딸 시댁 갈 일 절대 없으니까, 엄마랑 둘이 손잡고 굶든지 알아서 해요."
시어머니가 당황한 목소리로 무슨 소리냐고, 자기가 어떻게 밥을 해 먹느냐고 되물었다. 친정엄마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뻔뻔한 양반아. 당신은 아들 귀하다고 끼고 살았지. 내 딸은 당신 아들보다 천 배, 만 배 귀한 자식이야. 꿈도 꾸지 마."

그날 이후 명절 풍경이 달라졌다
전화를 끊고 나서 시댁 거실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남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눈치만 살폈고, 시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날 결국 짐을 챙겨 혼자 친정으로 향했다.

그 뒤로 명절마다 시댁에서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여전히 서운한 순간은 있지만, 적어도 혼자 버스 타고 다녀오라는 말은 다시 듣지 않았다. 가끔 그날 친정엄마의 목소리를 떠올리면, 누군가 내 편에서 그렇게 소리쳐준 게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새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