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업체들의 '월간 흑자'에 숨겨진 속 뜻

김아름 2024. 2. 2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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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유통]11번가, 지난해 4개월 흑자
컬리도 지난해 12월 월간 흑자 공개
향후 영업이익 가능성 강조 위한 수단
그래픽=비즈워치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실적 발표

기업들이 가장 긴장하는 시기가 언제일까요. 아마 실적 발표 시즌일 겁니다. 벌써 2024년도 2월 말이 되면서 주요 기업들이 2023년 연간 실적을 차례대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실적이 좋으면야 걱정이 없지만, 실적이 썩 좋지 않거나 애매할 때는 어떻게 발표해야 할까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실적 발표 때마다 잘 한 부분은 최대한 강조하고, 부진했던 부분은 적당히 넘어가는 등 좋은 점을 부각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안정은 11번가 사장이 지난 11일 11번가 본사에서 열린 새해 첫 전사 구성원 대상 타운홀미팅에서 새해 경영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11번가

최근 이커머스 기업들의 실적 발표에서 간간이 볼 수 있는 "월간 흑자" 역시 이런 고민의 산물입니다. 적자 성적표 내에서 좋은 시그널을 찾다 보니 실적을 월간 단위로 쪼개 '흑자달'을 만들어 내는 거죠.

11번가가 대표적입니다. 11번가는 지난해 영업손실 1258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대비 257억원이 줄어들었습니다. 안정은 대표가 강조했던 "실적 반등 원년" 목표에 미치지 못한 수치였습니다.

11번가의 '월간' 흑자

그래서 선택한 문구가 바로 '월간 흑자'입니다. 11번가는 지난해 5월, 6월, 7월과 12월까지 4개 달에 오픈마켓 사업 기준 월간 EBITDA(상각전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에도 흑자를 이어가면서 1분기 내에는 오픈마켓 사업이 수익 기조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도 내놨습니다. 

이 이야기만 보면 11번가가 당장 내일부터라도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이번 흑자는 '오픈마켓 사업' 기준입니다. 11번가는 오픈마켓 사업과 직매입 사업을 운영 중인데요. 거래액 기준으로는 오픈마켓 사업이 90% 가까운 비중이지만 이쪽은 수수료 모델이기 때문에 매출에서의 비중은 이보다 한참 낮습니다. 

그래픽=비즈워치

11번가 역시 올해엔 오픈마켓 사업이 연중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연간 흑자' 목표는 오는 2025년으로 잡고 있습니다. 직매입 사업의 적자폭이 오픈마켓 사업의 흑자 규모를 크게 웃돌 것이기 때문이죠.

하나 더. 이번 흑자는 'EBITDA' 흑자입니다. EBITDA는 'Earnings Before Interest, Taxes, Depreciation and Amortization'의 약자인데요. 말 그대로 이자비용(Interest), 세금(Taxes), 감가상각비용(Depreciation&Amortization)을 계산하기 전의 영업이익입니다. 

EBITDA는 기업의 순수한 수익창출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다만 이 경우엔 이자비용과 감가상각비를 밑도는 수준의 이익을 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매정한 표현으로는 '간신히 손익분기를 맞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커머스와 '월간 흑자'

EBITDA 흑자가 곧 영업이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티몬의 사례를 볼까요. 티몬은 지난 2020년 3월 EBITDA 흑자 1억6000만원을 냈다고 밝히면서 '소셜커머스 3사' 중 처음으로 흑자 소식을 알렸습니다. 당시 이진원 대표는 연간 흑자 전환 가능성까지 언급했죠. 하지만 티몬은 그 해 631억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이 대표는 이듬해 5월 사임했습니다.

최근에는 컬리도 지난해 12월 EBITDA 흑자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컬리와 11번가, 티몬 모두 매각이나 상장, 투자 이슈가 있는 기업이죠. 결국 월간 EBITDA 흑자를 강조하는 건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업'이라는 점을 어필하는, 일종의 마케팅인 셈입니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그래픽=비즈워치

'좋은 예'도 있습니다. 쿠팡은 지난 2022년 2분기에 제품 커머스 부문의 조정 EBITDA가 36억원 흑자를 냈다고 밝혔습니다. 수 년간 수조원의 적자를 내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까지 듣던 쿠팡에 대한 시선이 바뀌는 순간이었죠.

'흑자'를 외치는 다른 기업들도 쿠팡의 길을 걷기 위한 의지를 보인 것일 겁니다. 하지만 쿠팡은 EBITDA 흑자 소식을 알리며 13% 늘어난 활성고객 수, 8% 늘어난 1인당 매출 등 명확한 성장 지표를 공개했습니다. 실제로 쿠팡은 바로 다음 분기부터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11번가와 컬리가 1분기 혹은 2분기부터 흑자전환에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납득시키려면 이런저런 조건을 달고 '흑자'라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들의 다음 실적 발표를 기다려 봅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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