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구석구석 누비며 탐험가 된 아이들 "또 가고 싶어요"
학생들은 학교에서만 배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배움을 바탕으로 학교 밖으로 향합니다. 이 과정에서 평소 집과 학교를 오가며 알아차리지 못했던 마을을 발견합니다. 새로운 세계는 가까이 있다는 것, 내가 사는 세상이 다양한 사람의 관계로 형성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경남교육청은 2017년부터 도내 시군과 함께 운영해온 행복교육지구를 올해부터 '미래교육지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미래교육지구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미래를 지향하며 지역 교육공동체 구축을 위해 협력하는 곳입니다. 이에 학교의 마을 연계 교육과정 운영을 지원하고, 학생들이 마을에서 지역 문제를 발굴해 해결하는 프로젝트 또한 돕습니다. '마을 연계 교육과정' 운영 학교만 초등학교 129곳·중학교 40곳·고등학교 8곳, 운영 학급은 초교 179학급·중학교 21학급·고교 10학급(올 5월 기준)입니다. 이 같은 교육 현장과 그 의미를 다섯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양산 증산초등학교(교장 김대현)는 경남형 혁신학교인 행복학교의 가치, 즉 배움과 협력을 토대로 성찰, 소통, 공감 등을 전파하는 '행복나눔학교'다. 올 7월 학교 콘퍼런스를 열어 교육과정을 학부모, 다른 학교 교사와 공유했는데, 2학년 1학기 '마을 돋보기 프로젝트 학습'이 교육공동체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증산초교에서 2학년 조화영 부장교사와 박성영 프로젝트 담당 교사를 만났다.
◇우리 동네 재발견 = 증산초교 마을 탐방 프로젝트는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매년 제목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며 배우고 느낀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수업 동기는 명확하다. "아이들이 근처에 살지만, 차를 타고 지나가거나 학교와 집만 오가면서 실제로 안 걸어다녀 봤거든요." (조화영)
마을을 좀 더 들여다보는 '마을 돋보기 프로젝트'는 지난 5월 한 달 동안 28차례 수업으로 진행됐다. 2학년 270여 명이 10개 학급별로 프로젝트 학습 단계를 밟았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프로젝트 수업 열기 △우리 마을 이곳저곳 △마을 탐험을 떠나요 △우리 마을 탐험하기 △(국어) 자신의 생각을 담은 일기 쓰기 △마을 모습을 담아요 △(수학) 우리 마을 분류하기 △마을 사람들을 만나요 △직업을 체험해요(제과제빵사 체험) △배달 놀이 △다양한 직업의 소중함 알기 △마음을 담아 만들어요(우리 마을 캐릭터 그리기·그립톡 만들기) △마을 소식을 전해요 △프로젝트 학습 마무리(스스로 평가하기)다.
'마을 탐험'은 학생들이 실제 걸어서 학교 주변 동네 2㎞ 남짓을 사각형 모양을 그리며 걷는 과정이었다. 성인 걸음으로 30여 분이지만 아이들은 꼬박 1시간이 걸렸다. 신도시여서 명소는 많지 많지만, 꼬불꼬불한 길 없이 평지에 보행로가 넓어 걷기 좋은 환경이었다. 특히 학급당 학부모 1명이 안전 지도를 도왔다.
학생들은 주변 아파트 단지를 보며 "우리 집이다"라고 외쳤다. 메기들공원, 야리공원 등 몰랐던 공원 이름도 알게 되고 중간에 도착한 수학체험공원에서는 잠시 숨을 돌렸다. 영화관, 마트, 양산유치원, 탕후루 가게, 잡화점 위치도 확인했고, 양산타워, 양산부산대병원, 오봉산, 금정산, 지하철 역, 거북산 등도 멀리서나마 바라봤다.
◇교육과정 재구성 덕분 = 이 같은 프로젝트 학습은 교육과정 재구성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 2학년 교사들은 개학 전 2월에 닷새간 워크숍을 했는데, 사흘 남짓 이 프로젝트 학습을 짜는 데 공을 들였다. '아홉 살의 배움, 놀이, 삶'이 교육과정 핵심 표어가 됐다.
올해부터 새 교육과정에 따라 초교 2학년은 1학기 <나>, <마을>, <세계>, <자연> 교과서를 배웠다. 이 중 <마을>이 5월 순서였다. 마을 돋보기 프로젝트에서는 <국어> '겪은 일을 나타내요(일기 쓰기)', <수학> '분류하기', <마을> '우리 마을·마을 탐험·직업 체험·마을 소식지' 등이 결합했다.
"교과서도 바뀌어서 2학년 1학기 과정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샅샅이 뒤지고 모두 공부해서 2월에 만났었어요. 이후 각 교과 단원 순서를 조정하며 기본 교과 시수를 침범하지 않게 계획을 짰어요." (박성영)
마을을 다녀온 학생들은 일기를 쓰고, 마을 지도가 그려진 걸개그림에 건물과 직업(예를 들면 병원-의사) 등을 붙여 넣어 완성했다. '직업 체험'으로 제과제빵 체험도 해봤다.
"한 달 동안 수업한 날마다 어땠는지 기록을 해나가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배우는지 계속 상기할 수 있도록 했어요. 공부 게시판을 만들어 이번에는 뭘 배운다고 알려줬고, 가기 전에 마을에 뭐가 있는지 스티커를 붙여보면서 알아보고 안전 교육도 하고요." (박성영)
◇'마을 탐험가' 된 학생들 = 학생들은 체력적으로 힘들어했다. 하지만 탐험 이후 '증산초등학교 마을 탐험가'라는 배지를 선생님에게 받고서는 뿌듯해했다. 이 배지는 거의 모든 학생 가방에 달렸다.
학생들이 교재에 남긴 메모와 일기를 보면 재미와 뿌듯함이 느껴진다. 김가연(가명) 학생은 마을 탐험 규칙을 살펴보고 '예의를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적었다. 박정환(가명) 학생은 마을 내 직업 종류를 알고 마을 지도에 직업을 추가로 붙이면서 '여러 가지 직업이 소중하다는 걸 알았다'고 남겼다.
'5월 13일 월요일/ 날씨: 해와 바람이 사이 좋은 날/ 제목: 수업! 마을 탐험대! /마을 탐험 때문에 수업 시간 나가서 동네를 둘러보는 시간이 1~3교시까지 있는 날! (중략) 스승의 날, 저번에 어버이날, 어린이날까지! 그리고 마을 탐험과 부처님 오시는 날. 5월은 정말 좋은 달이다. 학교에선 더 좋으면 좋겠다. 다음에도 오늘처럼 수업 대신 야외활동 더더더 해주세요. 선생님!'
'5월 14일 화요일/ 날씨: 해가 쨍쨍/ 제목: 신나는 마을 탐험/ 우리는 횡단보도를 5번쯤 건넜다. 또 가다 보니 수학체험공원도 보았다. (중략) 나는 집라인, 그네를 탔다. 놀다 보니 너무 지쳐서 의자에 앉아서 쉬었다. 학교로 돌아갈 땐 가는 것보다 훨씬 가까웠다. 나는 오늘이 가장 즐거웠다. 다음에 또 가고 싶다!'
◇"아이들의 생각·영역 확장" = 학부모들도 평가 결과지에 격려 글을 남겼다. '마을 돋보기 프로젝트를 통해 은서(가명)가 동네에 관심을 가지고 구석구석 무슨 가게가 있는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하더라고요. 학교에서 배운 마을의 소식을 알려주기도 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해 배우면서 은서가 자기 영역을 더 확장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책상 앞이 아닌 신선한 경험을 해서 오래 기억 속에 각인될 것 같아요! 우리 마을에 대해 확장하여 생각해보고 직접 그 기록들을 남기는 모습을 보니 뿌듯합니다.'
마을 탐험 이후 학생들은 학교에서 직업에 맞는 물건(미용사-가위·드라어 등)을 찾아 바구니에 넣는 '배달 놀이', 이마에 다양한 직업을 붙여놓고 설명을 듣고 맞히는 놀이도 했다.
"국어·수학 교과와 함께 놀이 중점 활동도 연계했어요. 따로따로 하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프로젝트 안에 교과와 놀이가 모두 들어간 형식이지요." (조화영)
아이스크림 가게, 태권도학원 등 마을 곳곳을 소개하는 마을 소식지도 반마다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포송이·거양이·양산이 등 저마다 이름을 붙여 캐릭터도 직접 그렸고 담임교사는 이를 그립톡(스마트기기 원형 거치대)으로 만들어줬다.
증산초교 2학년 담임 3년째인 조화영 교사는 마을 탐방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이유를 말했다.
"삶과 동떨어진 내용이 아니잖아요. 아이들에게도 내가 사는 곳이고 나의 생활 터전이잖아요. 아이들이 조금 더 깊이 배우고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었어요. 실제 다니면서 보여주고 싶었고 그게 가능한 환경이었어요."
/이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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