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림이 끝나고 프로야구가 다시 시작됐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다고 해도, 아무리 많은 경기를 뛰었다고 해도 개막전은 쉽지 않다.
일단 캠프 연습경기와 시범경기를 치렀지만 본 경기의 긴장감은 다르다.
잊고 있던 팬들의 함성에 진짜 시작임을 알리는 폭죽도 터지니 심박수가 치솟는다.
긴장감에 기대감에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면서 선수들은 개막임을 실감한다.
그게 인생 첫 개막전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지난 3월 28일 SSG 랜더스를 상대로 시즌을 연 KIA 타이거즈에서는 4명의 선수가 ‘첫 개막전 선발’을 경험했다.
“라인업 사진을 찍더라”는 주장 나성범의 웃음 속 박민, 윤도현, 오선우는 개막전 선발이라는 꿈같은 순간을 맞았다. 새 외국인 타자 해럴드 카스트로에게도 첫 개막전 선발.
경기 전 덕아웃에서 제법 의연한 모습으로 “괜찮다”던 이들이었지만 누가 봐도 그라운드 위 그들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긴장하지 않을 것 같던 박민도 평소와는 다른 움직임으로 호된 개막전을 치렀다.
오선우도 개막전 다음날 “긴장했다. 인정한다”며 긴장됐던 첫 순간을 이야기했다.
긴장감에 들뜬 마음이 더해지면서 공이 수박처럼 보였다는 박민과 오선우. 그래서 방망이가 춤을 췄다. 나중에 보니 가만있었으면 볼넷이었을 것이라는 두 사람의 고백.

한국시리즈와 WBC 경기도 뛰어본,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자 팀을 책임지고 있는 ‘주장’ 나성범에게도 개막전은 특별하다.
“까마득해서 몇 번째 시즌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웃던 나성범은 “부상 없이 개막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당연하게 맞았던 개막전이지만 그는 2023·2024시즌 부상으로 뒤늦게 시즌을 시작해야 했었다.
감사함으로 맞은 시즌, 긴장감도 당연했다.
나성범은 “나도 긴장된다. 매년 개막전을 하지만 (최)형우 형도 아마 긴장될 것이다. 모든 선수는 다 그런 것 같다. 최고의 선수인 오타니도 긴장할 것이다”며 “투수도 긴장할 것이다. 살짝의 긴장감은 좋은 것 같다.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가지고 시합에 임하는 게 좋은 것 같다. 긴장 하나도 안 되면 집중도 덜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성범의 이야기처럼 누구나 긴장한 채로 개막전을 치른다. 남들과의 싸움이지만 개막전은 자신과의 싸움이 우선이기도 하다.
누구나 다 긴장하는 만큼, 누가 더 빨리 침착하게 자신의 흐름을 찾느냐가 승부의 키가 되는 것이다.
나와도 싸워야 하고 다른 이들과도 싸워야 하는 그라운드의 삶이다.
요즘 선수들은 또 다른 싸움을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실체와의 싸움.
개막전 라인업을 짜면서 이범호 감독은 마지막까지 유격수 자리를 놓고 고민을 했다.
박찬호의 FA 이적으로 생긴 공백을 채우기 위해 고심을 했던 자리다.
KIA가 지난해 11월 울산 리그에서부터 눈여겨봤던 제리드 데일을 우선 생각했지만 여러 변수가 있었다.
새로운 리그에서 새로 시작하는 선수인 데다, 개막을 앞두고 이런저런 상황이 좋지 못했다.

데일은 호주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나선 WBC에서 결정적인 실책을 기록했다. 본선 티켓의 향방을 가른 실책이었던 만큼 데일의 충격은 컸다.
WBC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맞이한 KBO 시범경기에서는 좀처럼 타석에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야구 자체로도 부담감이 많았던 데일은 시즌 시작 전부터 악플에 시달렸다. 욕설 문자들을 확인한 데일은 SNS 메시지를 닫았다.
심적으로 힘든 상황인 만큼 이범호 감독은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 데일을 넣지 않았다.
낯선 리그의 긴장감 가득한 첫 경기, 혹시라도 실수가 나오면 그 후유증을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
개막전을 벤치에서 지켜봤던 데일은 리그 두 번째 날 KBO리그 선수로 마침내 그라운드에 올랐다.
누구보다 애를 태우면서 지켜봐야 했던 데일은 볼넷을 하나 골라냈고, 2루타도 만들었다.
2일 LG전까지 4경기에서 물론 삼진도 당하고 실책도 했다. 144경기를 하는 야구에서 매번 완벽한 하루를 보내는 선수는 없다.
10번의 타석에서 7번 실패해도, 3할 타자다.
선수들은 매일 자신과 그리고 상대와 싸우면서 기록을 만들어 간다.
시즌 시작과 함께 김호령은 2026시즌 KBO 1호 볼넷을 만들었고, 카스트로와 나성범은 팀의 첫 2루타의 첫 타점을 장식했다. 첫 개막전 스타팅에서 윤도현은 올 시즌 리그 1호 도루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실패와 성공의 기록이 쌓이고 쌓여서 선수의 시즌 기록이 만들어진다.
소위 말하는 주전 선수는 아무리 부진한 봄날을 보내도 자신의 평균에 수렴해 시즌을 마무리하곤 한다.
기록의 스포츠 야구다. 결국 기록으로 선수들은 평가받을 것이다.
하루하루의 결과가 아니라 시즌 결과로 선수들은 다음해를 기약하게 된다. 생사가 걸린 기록이다.
야구는 고된 스포츠다.
144경기가 진행되면서 매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역전이 되고, 어제의 역적이 영웅이 되는 곳.
당장 1회 죽을 실수를 했어도 9회 끝내기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게 야구이기도 하다.
공 하나하나에 선수들은 울고 웃는다.
모든 순간순간이 전쟁인 이들의 뒤에는 쉽게 내뱉는 못된 말들이 있다.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 선수는 없다. 실력이 부족하든, 노력이 부족하든 시즌이 끝나는 날 쌓인 기록은 결국 그들의 삶을 좌우할 것이다.
하지만 악플러들은 순간순간 혹독하게 선수들을 평가한다.
일단 내뱉고 본다. 바로 다음 이닝에서 자신이 내뱉은 욕이 무안해지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쉽게 내뱉은 악플에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는다. 당사자가 아니라도 말이다.
무엇을 내뱉었는지 기억도 못하는 이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록이다.
선수들이 공 하나에 기록을 남기듯 악플도 기록으로 남는다. 누군가의 눈에, 마음에 기록된다.
그리고 정말 기록으로도 남는다. 버튼 하나면 쉽게 글을 캡처할 수 있고 로그가 남는다.
일희일비로 표현할 수 있는 야구. 시즌 5번째 경기가 끝난 오늘, 우리는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