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감사원, ‘MBC 방만 경영 방치’ 확인하고도 방문진에 ‘주의’만

김경필 기자 2024. 9. 1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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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처분·징계 추진했으나 막판 심의서 빠져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전경. /연합뉴스

최승호·박성제 사장 시절 MBC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부동산 개발 펀드에 투자했다가 투자금 105억원을 모두 날린 것으로 드러났다. MBC 자회사는 전남 여수에 테마파크를 만드는 사업을 파산 직전인 회사에 투자해 70억원 넘게 손실을 봤다. MBC 최대 주주이자 관리·감독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이런 사실을 뒤늦게 보고받고도 책임자에 대해 문책을 요구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방문진이 MBC의 방만 경영을 방치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감사원은 방문진에 대해 ‘주의’만 줬는데, 감사원 사무처가 방문진에 대한 강제성 있는 처분을 건의했으나 감사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방문진 “MBC 관리·감독 자료 없다” 제출 거부

감사원이 11일 공개한 방문진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방문진은 국가로부터 MBC 주식 70%를 출연받은 기관으로서 감사원법에 따라 감사원 감사 대상에 해당한다. 반면 MBC는 ‘국가 출연 기관인 방문진이 출자한 기관’에 해당돼 감사원 감사 대상이 아니다. MBC의 궁극적인 대주주는 국가지만, 그 사이에 방문진이 끼어 있어 감사원 감사를 피할 수 있는 구조다.

이번 감사는 보수 성향 시민단체 등이 2022년 11월 ‘방문진이 최승호·박성제 사장 시절 MBC의 방만 경영을 보고받고도 별다른 관리·감독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감사를 청구해 시작됐다. 감사원은 제기된 의혹 9가지 가운데 6가지에 대해 감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의혹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해 3월 방문진에 MBC 관리·감독 활동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감사원이 요구한 것은 방문진이 MBC로부터 보고받은 MBC 내부 감사 자료, MBC 사규 등이었다.

그러나 방문진은 ‘MBC로부터 보고받은 자료 대부분은 MBC가 보안 등의 이유로 보고 당일 회수해갔거나, 우리가 직접 폐기해 갖고 있지 않다’며 제출하지 않았다. MBC 사규 등 MBC를 제대로 관리·감독하기 위해 당연히 갖고 있었어야 할 자료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MBC 자료는 MBC에 직접 요구해 받으라’고 했다. 방문진은 자체 회의에서 “MBC가 감사원에 제출할 자료를 MBC를 대신해 감사원에 전달할 권한도 책임도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것을 자료 제출 거부 이유로 들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감사원은 지난해 5월 방문진으로부터 받지 못한 자료를 달라고 MBC에 요구했다. MBC는 감사의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더라도 자료를 내야 했다. 감사원법에는 ‘감사원은 필요한 경우 감사 대상 기관이 아닌 자에 대해서도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요구를 받은 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그 요구에 따라야 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MBC는 감사원이 별도로 보낸 질문서에 대한 답변서를 내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일부 자료만 제출하고, 감사원이 요구한 나머지 자료는 제출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결국 감사원은 MBC의 답변서와 일부 제출 자료, 방문진 이사회 회의록·속기록·회의자료 일부, 고용노동부 등 다른 기관으로부터 수집한 자료 등 제한적인 자료만을 갖고 감사 결과를 낼 수밖에 없었다. 감사원은 방문진과 MBC 임원들에 대해 감사 방해 혐의가 있다고 보고, 지난해 8월 검찰에 수사 참고 자료를 보냈다.

MBC, 이사회 승인 없이 1900억원 부동산 투자했다 손실

감사원이 제한된 자료만으로도 방문진이 MBC 방만 경영을 방치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MBC가 경영을 잘못하고 있다고 방문진이 판단할 만한 상황이 수차례 발생했는데도 방문진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MBC는 2018년 서울 여의도 사옥을 매각해 얻은 대금 4849억원 중 1905억원을 국내·외의 부동산 관련 상품에 투자했다. 이 가운데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리조트 건설 사업 관련 펀드 투자도 있었다. MBC가 체결한 계약에는 리조트 개발 업체가 선순위 채권자인 JP모건에 자산을 양도할 경우 나머지 채무는 갚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중순위 채권자였던 MBC에는 투자금 전액을 날릴 수 있는 초고위험 투자 상품이었던 것이다. MBC는 이런 투자를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진행했고, 2020년 리조트 개발 업체가 사업을 포기하고 JP모건이 자산을 넘겨받으면서 투자금을 전액 손실했다.

방문진은 이때까지도 MBC로부터 아무 보고를 받지 못했고, 방문진 한 이사가 2021년 3월 “기사에서 봤다”며 MBC에 투자 사실이 있느냐고 질의한 뒤에야 MBC로부터 “부동산 투자가 20여건 있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나 그 뒤로 방문진은 MBC로부터 추가 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수차례 받고, 이와 관련한 MBC의 조치 사항이 불충분했는데도 MBC에 투자 관련 제도 개선을 요구하거나 관련자 문책을 요구하지 않았다.

MBC 자회사 MBC플러스는 2018년 5월 전남 여수에 실내 스포츠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사업에 참여했는데, 공동 사업자가 시설물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테마파크가 개장되지 못했다. 임대료로 매년 10억원이 나가는 상황에서도 MBC플러스는 공동 사업자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MBC플러스의 사업 담당자는 서울 강남 유흥주점에서 공동 사업자 측과 여러 차례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업은 이후 중단됐고 MBC플러스에 최소 74억원에서 최대 88억원의 손실을 안겼다.

감사원이 확인해보니, 이 사업은 방문진과의 사전 협의를 거쳐 추진했어야 하는 사업이었다. 방문진은 MBC 감사로부터 MBC플러스의 사업 실패에 관한 문제점을 뒤늦게 보고받고도, MBC플러스 임원들에게 경고를 줬다는 보고만 받고 이 사안을 넘겼다.

감사원, 방문진에 ‘강제 처분’ 추진했으나 무산

그런데도 감사원은 방문진에 “앞으로 MBC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를 철저히 하라”며 주의만 줬다. 방문진이 감사원의 이런 주의 요구를 받고 실질적으로 해야 하는 조치는 없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방문진을 감사한 감사원 사무처는 지난달 감사위원회의에 ‘방문진에 대해 강제성 있는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가운데에는 이번 감사에서 확인된 MBC의 방만 경영 사례 각각에 대해, 방문진에 MBC를 관리·감독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또 방문진 일부 임직원에 대해 징계 등의 조치를 요구하는 내용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건의대로 처분이 내려졌다면, 감사원은 방문진이 MBC의 방만 경영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는지를 후속 점검하고, 방문진이 방만 경영을 계속 방치할 경우엔 방문진을 추가로 제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문진에 대한 강제 처분 방안은 감사위원회의에서 모두 부결됐다고 한다. 감사위원 7인 중 4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최대 3인의 찬성밖에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재해 감사원장을 제외한 감사위원 6인 가운데 3인은 이전 정부가, 3인은 현 정부가 임명했다. 현 정부가 임명한 위원 중 1인은 이 감사 결과 심의에서 제척돼 심의에 참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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