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의 정체는 뭘까?

이 사진을 보라. 1980~90년대 옛날 아파트나 구도심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의 정체 모를 구조물이다. 초대형 버섯 같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탑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유튜브 댓글로 “오래된 아파트 단지나 옛날 동네에 가면 보이는 UFO처럼 생긴 거대한 구조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 봤다.

거대한 크기에 비해 구동하는 모습도 안 보이고, 대부분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해서 이 구조물의 정체를 추측하는 인터넷 게시글도 여럿이다. 의견도 가지각색인데, 저격수가 숨어있는 아지트나 UFO 착륙장 아니냐는 유쾌한 추측부터 성화 봉송용 구조물이다, 중앙난방하던 시절의 굴뚝이다, 대형 물탱크다 라는 그럴싸한 의견도 있다.

서울에는 송파역 근처 가락시장 사거리에 비슷한 구조물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와 송파구청에 정체가 무엇인지 물어봤는데,

송파구청 관계자 1
“이거 말씀하시는 건 아마... 올림픽 기념하는 것 같긴 한데...”
송파구청 관계자 2
“(웃음) 제가 확인해보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저희 부서에서도 이걸 알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요.”

UFO같이 생긴 구조물의 정체를 진지하게 물어보니 장난 전화인 줄 아셨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는데, 구청에서도 정체를 아는 사람이 많진 않았다. 어렵사리 관련 내용을 아는 분과 연결되어 간단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는데.

송파구청 미래공간개발과 관계자
"이게 정수탑이라고 해가지고 지하수 저장용 수조로 사용됐던 거거든요.”

해당 구조물의 이름은 ‘가락시장 정수탑’으로 이런 UFO같이 생긴 구조물을 통칭해서 ‘고가수조’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가수조는 1980년대에 특히 많이 지어졌다고 하는데 저장된 물의 품질 저하, 높은 건설비용과 유지보수 비용 등으로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방식의 구조물이라고 한다. 고가수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전문가에게 들을 수 있었다.

문주현 한밭대 설비공학과 교수
"고가 수조입니다. 영어로는 Elevated storage tank라고 하고요. 각 지역마다 이런 UFO 형상같이 원뿔 2개를 마주 보고 겹쳐놓은 형태로 균일한 하중을 분산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력학적으로 구조적인 강도를 최대화할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UFO처럼 특이한 구조로 지어졌나 물어보니, 원뿔 모양이 물의 하중을 균일하게 분산하는데 효과적이고, 침전물이나 불순물이 수조 구석에 고여있지 않고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 내려가는 구조여서 배수에도 효율적이라고 한다.

고가수조가 옛날 아파트나 구도심에서 많이 보이는 이유는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높은 곳에 물을 저장했다가 위치에너지로 아래 세대에 물을 공급하는 방식이 널리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압직결급수 방식이라는 새로운 급수 방법이 도입됐는데, 부스터 펌프를 설치해 지하 상수도관에서 꼭대기 층까지 수돗물을 바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별도의 물탱크가 필요 없어서 수질이 나빠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문주현 한밭대 설비공학과 교수
"한국의 경우에는 도시의 개발이라든지 잦은 재개발이라든지 기존의 수도 인프라가 자주 변경되는 이런 상황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금은) 주로 지하수 저장 시설이라든지 펌프로 구동하는 경우들이 많고 고가수조를 활용해서 상수도를 이용하는 수요가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새로운 급수 방식이 도입되니, 고가수조들은 곳곳에 얼룩덜룩 때가 탄 채 사용하지도 않고 방치돼있는데, 왜 철거하지 않는 걸까? 지자체에 물어보니 현실적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송파구청 미래공간개발과 관계자
"이게 가까이서 보면 되게 구조물이 높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철거 비용만 거의 한 10억 가까이 든다는 추산이 나와 가지고....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 소유인데, 그쪽 공공기관에서도 어떻게 함부로 처리를 못하는 거예요. 철거 비용 자체가 너무 많이 드니까. 그래서 좀 되게 이도저도 못하는 사실...”

고가수조는 주로 지방의 지자체 소유거나, 옛날 아파트에 속해있다보니, 많게는 수십억 가까이 하는 철거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쉽게 철거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가락시장 정수탑 고가수조는 철거 대신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고 하는데, 올해 공공예술 작품 공모사업을 통해 대형 예술조형물로 탈바꿈하는 사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제 UFO 정류장처럼 생긴 이 고가수조들도 곧 전부 철거되고 추억 속에만 자리잡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