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많고 탈많은 도쿄 여행 마지막 날이다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도쿄역에 들러 넥스 열차 지정석 표를 끊고
근처 마루노우치 빌딩 스타벅스에 앉아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 마시던 중 이대로 시간을 보내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도쿄 전철 패스와 전날 몸살나서 닛코를 못감으로써 반쪽짜리 호구인증권이 되어버린 jr 도쿄 와이드패스가 있었다
이걸로 뭘 할수 있을까 한참 생각하다가
뜬금없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 야스쿠니나 가보자'
오전 열시 쯤의 야스쿠니 신사는 그래도 한산했다
언젠가 지나가면서 거대한 도리이를 보고서 저게 그 메이지 신궁인가 하고 갔다가 코마이누 뒷면에 세워진 '정국 신사' 라 새겨진 그 비석을 보고 뭔가에 덴 것처럼 호다닥 발걸음을 옮긴 적이 있었다
쥬고엔&@고짓센을 발음하라느니
일본 군가를 부르라느니
인터넷에 야스쿠니를 쳐보면 허다하게 나오는 드립이 무색하리만큼 신사는 고요했다
작년 3월까지는 코마이누와 비석 앞에는 접근이 가능했는데 따거햄이 저따가 낙서하고 오줌 싸지른 뒤로는 저 앞에 휀스를 쳐 못들어가게 해놨다
신사에 제주로 봉납하는 술의 독들을 전시해 놓았다
일본 자살 특공대의 군가에서 비롯된 '동기의 벚꽃(도키노 사쿠라)'라는 상표가 눈에 띈다
패전 8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욱일은 양양하게 비쳐나가는 모습을 보고 실소가 나왔다
저 술독을 보고 나니 저 아래 태평양이라는 상표도 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정전 앞 분위기들은 신관이 아닌 경찰관(경비원인가?)이 빠따를 들고 서있더라는 점만 빼면 일반 신사와 다를게 없었다
5엔 1엔 다 섞어 13엔 남았길래 돈 통에 좌르륵 붓고 참배는 하지않고 발길을 돌렸다
작년 3월엔 2천엔이었는데
코인이 달달한갑다
사실 정전보다도 우취관이 궁금해서 이곳을 찾았다
유슈칸
우리 발음으로 치면 유취관이라 불리는 이곳은 일본입장에서 그들의 군사사에 대해 전시해 둔 야스쿠니 내 부속 전시관이다
전시관 1층 메인홀에는 우리에겐 제로센으로 유명한 일본의 영식함상전투기와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죽음의 철도'에서 운행했던 기관차를 전시해 두었다
티켓은 발매기로 뽑을수 있게 되어있으며, 게이트에 QR코드를 찍고 들어가게 되어있어 직원과 마주칠 일은 없다
게이트를 나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전시실이 나온다
전시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원칙상 사진촬영 금지라서 찍지 않았다
그저 일본인의, 그 중에서도 소수들의 입장에서 본 군사사를 다뤘다
명치 이전 군사사를 다룬 구역에서는 헤이안시대부터 막말까지의 무기와 갑옷들을 볼수 있었는데
예전엔 조선시대 갑옷 어디서 주워다 적국을 굴복시켰다는 뉘앙스로 전시를 한게 일부 관광객들을 통해 이슈화 되면서 어디 갖다 리뉴얼이라도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국인들의 일본 방문이 늘면서 나처럼 호기심 겸 관음 겸 찾는 이들을 의식해서 치운듯 하다
료마로 유명한 무진 전쟁 세이난 전쟁도 꽤 넓은 공간을 할애해 전시해 두었다
막말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한번 둘러볼 만 하다(그렇다고 시간내서 가라고 추천하는 건 아니고)
임오군란 당시 처우에 불만을 품고 봉기한 구식군인들이 일본 공사관을 소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하나부사 일본 공사 일행이 철수하면서 게양대에서 내린 일장기도 전시되어 있었다
어느나라건 국기나 군기가 탈취당하는 것은 불명예로 여겨 지양하고 있다
다만 임오군란이 일어났던 현장에 사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그걸 보니 복잡미묘할 수밖에....
그렇게 전시장은 패전까지 쭉쭉쭉 이어진다
명치 대정 소화 천황의 예복과 태평양전쟁이 파국으로 치달아가며 특공에 내몰린 이들의 유품도 볼수 있었다
전시실을 나오면 또 다른 홀 하나를 비워 태평양전쟁 당시 무기와 장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일본군 전차 하면 떠오르는 치하
자폭용 잠수정 카이텐
소형 자폭정 신요우를 실물로 볼 수 있었다
발길을 멈추게 한 것들은 일본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전사한 자들의 유류품이었다
동₩%남아와 태평양일대에서 발굴된 유류품들인데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죽어갔을까 하는 같잖은 감상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전시관한쪽 방에는 야스쿠니에 군신으로 합사된 이들의 영정사진들이 작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중에는 조%선@인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에겐 조@선&인 출신 가미카제 대원으로 영화 "호타루"로 알려진 탁경현씨와 궁금한 이야기 Y에서 그의 일생이 조명 되었던 특공대원 박동훈 씨, 남방작전 당시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에서 전사한 최명하 씨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의 발자취가 혹시나 남아있는지 싶어 그들의 창씨명으로 한번 명부를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내가 못 찾은건지...
허탈한 시선을 당시 사망자들의 사진이 빨아당긴다
합사된 이들은 앳되어 보이는 얼굴을 한,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나이에 세상을 버린 젊은이들이었다
일부는 입대전 민간인으로 생활할 때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들에게도 분명 개인으로서의 생활을 하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저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살아가던 이들이다"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군에 대해 내세우는 주장 중 가장 위험하면서도 뜨거운 감자같은 논리이다
그들의 생애가 어떠했든, 그들이 맞은 죽음이 얼마나 비참하든간에 일제의 행동은 용납할수 없는것이고
일제가 폭주하지 않았더라면 저들의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
앳된 얼굴의 '신'앞에서 한참을 서있다 문득 든 생각을 결론삼아 발걸음을 돌렸다
저들은 왜 죽어야 했나?
끝
이 콘텐츠가 마음에 드셨다면?